"20만원에 산 그림 지금은 가치 못매겨"…덕수궁관에 근대 걸작 한자리에

아왕가미술관으로 시작한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개관 20주년 특별전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개관 기념전 '내가 사랑하는 미술관:근대의 걸작' (사진=조은정 기자)
1938년 일제 강점기 말에 일본 건축가 나카무라 요시헤이는 덕수궁에 '이왕가미술관'이라는 한국 최초의 근대미술관을 세웠다. '이왕가미술관'은 개관 직후 경성의 핫플레이스가 됐다. 일본인 등 많은 관광객들이 진귀한 공예품이 전시돼 있는 미술관을 찾았다. 이왕가미술관은 바로 덕수궁 한켠에 자리잡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의 시초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이 덕수궁관 개관 20주년, 이왕가미술관 80주년을 기념해 <내가 사랑한 미술관:근대의 걸작>전을 오는 3일부터 10월14일까지 개최한다.

국립현대미술관이 보유한 주요 근대미술 작품을 한 자리에서 전시하는 것은 물론 건물의 설계도면과 당시 사진 등을 함께 선보여 미술관의 역사와 의미를 재조명한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개관 기념전 '내가 사랑하는 미술관:근대의 걸작' (사진=조은정 기자)
이번 기념전에서는 그림 뿐 아니라 건물 자체가 하나의 전시가 된다. 설립 당시 원형 그대로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존하고 있는 회전계단이 대중들에게 최초로 공개된다. 또한 무늬벽과 조명 등도 과거의 모습을 복원해 시간여행을 하는 듯한 근대 건축의 빈티지한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전시 작품도 화려하다. 1969년 국립현대미술관이 설립된 후 실질적인 개관전이었던 1972년 <한국근대미술 60년전>에 출품됐던 주옥같은 근대미술 작품들이 전시된다. 70년대 국립현대미술관이 20만원~100만원에 구매하거나 작가들에게 기증받은 작품들은 지금은 값을 매길 수 없을 정도의 대작이 됐다.

한국 최초의 서양화가로 알려진 고희동의 희귀한 유화인 <자화상>은 며느리가 이삿짐 꾸러미 속에서 발견해 국립현대미술관이 어렵게 복원했다. 이왕가미술관에서 매입한 뒤 창덕궁의 한 창고에 보관돼 오다가 뒤늦게 발굴된 이영일의 <시골소녀> 등 여러 작품도 소개된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개관 기념전 '내가 사랑하는 미술관:근대의 걸자' (사진=조은정 기자)
시인 이상을 그린 구본웅의 <친구의 초상>과 72년 당시 현대미술관이 100만원이라는 거액에 구입한 박수근의 <할아버지와 손자>, 김종태의 <노란저고리>, 이중섭의 <투계> 등 주요 소장화들이 한자리에 전시된다.

추상화의 대부로 미술품 경매 최고가 기록을 세우고 있는 김환기의 <론도>를 비롯해 유족으로부터 기증받은 <달 두개>, <여름달밤> 등의 작품도 공개된다.

이밖에 오지호의 풍경화인 <남향집>, 이쾌대의 <여인초상>, 장운상 <미인>등을 비롯해 권진규의 조각 <지원의 얼굴> 등 진귀한 근대 미술품이 관객을 기다리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개관 기념전 '내가 사랑하는 미술관:근대의 걸자' (사진=조은정 기자)
이번 전시에서는 관객들이 미술관 자체의 건축 미학을 음미할 수 있도록 '덕수궁관 팔경'을 선정했다. 8곳에서 바라본 미술관의 모습은 현대 건축가들도 감탄할 정도의 완벽한 구조미를 자랑하고 있다.

근대미술은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대부분이 유실됐지만, 국립현대미술관이 우여곡절 끝에 확보한 작품들은 후세에 물려줄 국가적 재산이 됐다.

김인혜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사는 "한국전쟁을 거치며 근대미술품이 많이 소멸됐는데 작품들이 남아있는 것도 기적이고, 특히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하게 된 것은 기적 중의 기적"이라며 남다른 의미를 설명했다.

바르토메우 마리 국립현대미술관장은 "한국 근대사의 격동기를 거쳐 지금까지 전해지면서 모두의 자산이 된 '근대의 걸작'을 감상하며 한국 근대미술의 진면목을 발견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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