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는 문재인 대통령이 김 전 원장의 사임을 수리하기로 했다는 발표를 하면서도 왜 민정수석실에서 김 전 원장의 위법 의혹을 판단하지 못했냐는 질문에 답하지 않다가, "민정수석실의 검증 항목에 없었다"는 다소 궁색한 답을 내놨다.
◇ 민정수석실이 놓친 김 전 원장의 '셀프후원' 논란
결국 김 전 원장의 발목을 잡은 것은 '5000만원 후원' 논란이었다. 청와대의 요청을 받아 김 전 원장에 대한 일련의 의혹들을 검토한 선관위는 김 전 원장이 지난 2016년 '더좋은미래' 연구소에 5000만원을 기부한 것이 공직선거법 위반이라고 결론냈다.
앞서 자유한국당은 김 전 원장이 19대 국회의원으로 재직할 당시 위법 소지가 있다는 선관위의 답변을 듣고도 더좋은연구소에 해당 금액을 '셀프' 기부했다며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김 전 원장은 더좋은미래 창립 당시 1000만원을 내고, 이후 매달 20만원 씩의 회비를 냈었다. 그런데 16년 5월에는 한 번에 5000만원의 돈을 더좋은미래 측에 제공했다.
이에 선관위는 "국회의원이 시민단체 등의 구성원으로서 종전의 범위 안에서 회비를 납부하는 것은 공직선거법에 위반되지 않지만, 그 범위를 벗어나 특별회비 등의 명목으로 금전을 제공하는 것은 같은 법 113조에 위반된다"고 밝혔다.
지난 13일 문재인 대통령이 김 전 원장에 대해 "어느 하나라도 위법이라면 사임토록 하겠다"고 밝힌 만큼 선관위의 판단이 나오자마자 김 전 원장은 금감원 공보실을 통해 사임 의사를 밝혔다.
사태가 커지자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오후 늦게 기자들과 만나 문 대통령이 김 전 원장의 사표를 수리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해당 의혹에 대해서는 "저희가 (김 전 원장을) 검증할 때는 후원금에 대한 내용 자체가 포함돼있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 전 원장에 대한 여러 의혹 중 피감기관 해외 출장 의혹에 대해서만 민정수석실에서 검증했다는 것이다.
이후 이 관계자는 "민정수석실 측을 통해 (해당 의혹이 빠진 이유를) 확인했다"며 "잔여 정치자금 처리에 대한 항목이 민정수석실의 설문지에는 없었기 때문에 김 전 원장이 따로 신고를 하지 않았다"는 취지로 답했다.
그는 "2016년 김 전 원장이 선관위 측에 잔여 정치자금과 관련한 질문을 했는데, 선관위에는 '종전의 관례상...'이라는 취지로 답을 했고 이 때문에 김 전 원장은 해당 사안이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고도 덧붙였다.
◇ 선관위 불러들이며 김기식 감쌌던 靑의 악수
청와대는 지난달 30일 김 전 원장을 내정한 직후 피감기관 해외 출장 의혹과 후원금 의혹 등이 잇달아 제기됐음에도 김 전 원장을 감싸는 행보를 보여왔다. 김 전 원장의 거취와 관련해 "입장 변화가 없다"고 거듭 밝히다가 지난 9일에는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나서 공개 발언을 했다.
당시 김 대변인은 조국 민정수석을 언급하며 "조 수석은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의 지시에 따라 김 원장을 둘러싼 언론의 의혹제기에 대해 그 내용을 확인했다. 의혹을 검증한 결과, 해외 출장 건들은 모두 공적인 목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며 적법하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김 전 원장의 낙마가 '선관위의 유권해석'이라는 이례적인 방식을 띈 것도 청와대의 판단 때문이었다. 김 전 원장에 대한 의혹이 가라앉지 않자 김 대변인은 12일 '청와대의 판단에는 변함이 없지만 객관적인 판단을 기다리겠다'는 취지로 김 전 원장과 관련한 일련의 의혹들에 대해 선관위의 판단을 의뢰했고, 선관위는 '문제 없다'는 청와대의 의견과 달리 위법 소지가 있다는 결론을 내린 것.
당장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등 야권에서는 청와대의 인사검증 부실론을 들고 나섰다. 한국당 전희경 대변인은 "조국 민정수석은 더 이상 그 자리에 있어서는 안 되는 부적격자임이 판명됐다"고 밝혔다. 청와대의 인사·민정 라인의 총사퇴가 없을 경우 국회 차원의 국정조사를 추진하겠다는 의견도 나왔다.
청와대는 곤혹스러워 하는 기색이다. 민정라인의 책임론이 대두되는 데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제가 언급할 부분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 김기식 사태가 남긴 교훈…청와대, 전면에 나서면서 사퇴시점 실기
김 전 원장에 대한 비판 여론은 지난주 후반에 최고조에 달했다. 보수야당은 물론 정의당마저 등을 돌렸고 민주당 내부에서도 금감원장직 수행이 어려울 정도로 상처를 입었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여의도 정가에서는 인사실패의 전례를 볼 때 13일 금요일이나 주말인 14일이 김 원장 사퇴 시점으로 거론되기 시작했다. 김 원장이 버틸 경우 여론에 역행하고 대통령에게도 부담을 줄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하지만 청와대는 사태를 마무리지어야 할 12일~13일에 선관위에 김 원장 관련 논란에 대해 질의를 하고, 문 대통령까지 나서서 위법 사항이 하나라도 나오면 사임하도록 하겠다고 밝히는 등 김 원장을 두둔하는 모습을 보였다.
문 대통령과 청와대가 이런 상황에 이르렀을 때 김 원장이 스스로 자리에서 내려오는 모양새를 취해야 했지만, 이마저도 없이 김 원장은 선관위로부터 위법하다는 판결을 받고서야 사퇴의사를 밝힘으로써 인사실패의 최종 책임이 문 대통령에게 지워지게 됐다.
◇ '개혁인사' 카드 꺼내는 데 신중해질듯 … 민주당은 여당 역할 못해
앞으로 청와대의 인사는 더욱 신중해져서 '개혁'을 위한 인사(人事)나, 개혁성향 인사(人士)를 기용하는데 신중할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여당인 민주당도 지방선거에서 야당에 비판의 소재를 하나 더 제공하는데 힘을 보탠 꼴이 됐다. 여론이 급격히 악화될 때 김기식 전 원장을 적극 보호하거나 청와대에 부정적인 여론을 전달하지도 못했다.
과거 9년의 보수정권에서 여당이었던 한나라당과 새누리당이 보였던 청와대 눈치보기에 급급한 모습을 닮아가고 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