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로, 또 폭로' 전명규와 빙상연맹은 왜 침묵하나

한국 빙상계에 대한 문화체육관광부의 특정감사가 진행 중인 가운데 최근 쏟아지는 작심 비판 보도에도 전명규 한체대 교수(왼쪽)와 그가 부회장직을 맡고 있는 대한빙상경기연맹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자료사진=노컷뉴스)
빙상계의 갈등과 의혹에 대한 일부 매체들의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비판의 대상은 '한국 빙상의 대부'로 불리는 전명규 한체대 교수(55)와 그가 부회장 직을 맡고 있는 대한빙상경기연맹으로 집중된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는 지난 7일 '겨울왕국의 그늘-논란의 빙상연맹'이라는 제목의 방송을 내보냈다. 지난 2월 19일 평창동계올림픽 여자 팀추월 준준결승에서 펼쳐진 이른바 '왕따 주행'을 둘러싼 진실과 고질적으로 반복되는 빙상연맹을 둘러싼 논란을 파헤친다는 것이었다.

이날 방송의 화살은 전 부회장을 향했다. 짬짜미 의혹, 선수 폭행과 귀화 파문 등 이른바 동계올림픽마다 논란이 됐던 빙상계 문제의 원인이 연맹의 실세로 알려진 전 부회장이라는 것이다. 평창올림픽 당시 여자 팀추월에서 가장 뒤처졌던 노선영도 연맹과 전 부회장의 눈밖에 나서 "나만 모르는 작전이 있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증언했다.

이와 함께 A 인터넷 매체는 전 부회장을 표적으로 삼아 연일 폭로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전 부회장이 대표팀 코치에 욕설과 협박을 하면서 국가대표 유니폼 교체 등 연맹에 전횡을 휘두르고 있다는 내용은 물론 지인에 대한 취업 청탁을 했다는 개인적 의혹 등을 전했다.

연맹 역시 이들 매체의 비판 대상이다. '그것이 알고 싶다'는 연맹이 전 부회장의 뜻에 의해 좌우되는 단체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앞서 언급한 A 매체는 "연맹이 무자격자를 코치로 선임하는 등 심각한 문제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7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는 전명규 부회장을 표적으로 날선 비판 방송을 전했다.(사진=방송 캡처)
하지만 정작 논란의 중심에 선 당사자들은 입을 다물고 있다. 전 부회장과 연맹은 최근 잇딴 비판 보도에도 이렇다 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일단 연맹은 방송 등 보도에 대해 사실과 다르다는 의견을 내비치긴 했다. 연맹 관계자는 "방송 내용이 현재 연맹의 상황과는 맞지 않다"면서 "연맹은 전 부회장 한 사람의 의지대로 움직이는 조직이 아니다"고 해명했다. 이어 A 매체의 보도에 대해서는 "행정 상의 실수가 있었지만 부풀려진 측면이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기자회견이나 보도자료 배포 등 공식적인 해명은 당분간 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현재 연맹에 대한 문화체육관광부의 특정감사 중이기 때문이다. 문체부는 왕따 주행과 연맹 적폐에 대한 진실을 밝혀달라는 국민들의 청와대 청원에 따라 지난달 26일부터 3주 동안 감사를 진행 중이다. 연맹 관계자는 "방송이 나간 뒤 연맹 이사들이 모여 논의를 했다"면서 "당장 해명을 할 수도 있지만 현재 진행 중인 문체부 감사가 끝난 뒤 대응에 나서기로 했다"고 밝혔다.


전 부회장은 아예 잠적한 상황이다. CBS노컷뉴스는 SBS 등의 기사에 대한 전 부회장의 입장을 듣기 위해 수 차례 전화하고 메시지를 남겼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일련의 보도들에 대해 전 부회장 역시 문체부 감사가 진행 중이라 조심스러운 입장일 수 있다. 그러나 침묵으로 일관하는 것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해당 보도들은 전 부회장 개인 의혹은 물론 전 쇼트트랙 대표 고(故) 노진규 사망을 둘러싼 의혹 등 매우 민감한 사안까지도 포함하고 있다. 어쩌면 한국 빙상계 전체가 걸린 매우 중요한 상황이다. 청와대 청원에 역대 최다인 61만 명이 넘는 국민들이 동참한 사안이다.

그렇다면 전 부회장이 일련의 의혹들을 명확하게 밝힐 책임이 있다. 잘못이 있다면 시인하고 사과와 함께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한다. 만약 아니라면 떳떳하게 진실을 밝히고 결백을 주장하면 될 일이다. 피해다니는 게 능사가 아니다. 한국 빙상을 이끌어왔고, 또 현재 연맹의 고위직을 맡고 있다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전 부회장은 앞서 자신과 관련한 논란이 불거졌을 때도 침묵하며 지금과 비슷한 방식을 취했다. 2014년 소치올림픽 당시 안현수(빅토르 안)의 러시아 귀화 배경이 빙상계 파벌 싸움이고 그 중심에 전 부회장이 있다는 지적이 일자 대회 이후 대외적으로 자신의 입장을 밝히지 않은 채 연맹을 떠났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전 부회장이 입을 열어야 한다. 해당 보도들은 매우 구체적이고 치명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비단 전 부회장 개인뿐 아니라 연맹과 나아가 한국 빙상계에도 중요한 문제다. 동계올림픽마다 반복되는 빙상계 논란을 차제에 종식시킬 좋은 기회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지난달 26일부터 평창올림픽 왕따 주행 논란과 빙상연맹 적폐를 놓고 감사를 진행 중인 문체부 특정감사단.(자료사진=노컷뉴스)
전 부회장이 입을 다물고 있다 보니 확인되지 않은 뉴스까지 확산되고 있다. 실제와 다른데도 마치 사실인 것처럼 보도돼 또 다른 피해를 낳고 있다.

'그것이 알고 싶다'는 전 부회장이 측근에게 "언론에 유리한 내용의 기사 청탁을 의뢰하라"고 전한 녹취와 함께 그것이 실제로 이뤄진 듯 보도했다. "그래서일까 아니면 공교로운 걸까, 우리가 빙상연맹과 전명규 교수에게 인터뷰 요청을 한 후 포털사이트에는 노선영 선수와 SBS에 대한 보도가 나옵니다"는 진행자의 멘트와 함께 CBS노컷뉴스의 기사와 또 다른 매체의 기사를 화면에 띄웠다.

A 매체는 전 부회장이 언론 보도의 내용과 방향까지 직접 기획하고 설계했다고 폭로했다. 보도지침까지 담긴 문건을 만들어 언론과 정치인에게 배포하고 이게 실제로 이뤄졌다는 것이다. 해당 기사에도 역시 CBS노컷뉴스의 기사 내용과 또 다른 매체의 기명 칼럼, 여기에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의 인터뷰 내용이 예시로 들어가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기사의 기본인 사실 확인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그것이 알고 싶다'는 자신들의 취재 요청 이후 전 부회장의 청탁으로 기사가 나간 것처럼 보도했지만 해당 뉴스는 '그것이 알고 싶다'의 취재와 관계 없이 CBS 라디오 아침뉴스 개편에 따라 새로 시작된 <기자의 창>의 첫 꼭지로 나간 것이다. CBS노컷뉴스는 '그것이 알고 싶다'의 취재 사실을 알 수도 없었고 알 필요도 없었다.

또한 CBS노컷뉴스 역시 <기자의 창> 기사에 전 부회장의 입장을 반영하고자 했으나 '그것이 알고 싶다'가 실패한 것처럼 전 부회장은 물론 측근과도 연락이 되지 않았다. 수많은 의혹이 쏟아지고 있는 현재까지도 마찬가지다.

A 매체 보도는 더 심각한 수준이다. 해당 매체는 "언론과 정치인, 전명규 언론플레이에 적극적으로 놀아났다"며 전 부회장의 보도지침 문건이 실제로 기사와 인터뷰에 반영됐다고 전했다.

하지만 문제의 문건은 CBS노컷뉴스에 전해지지 않았다. 기명 칼럼을 쓴 언론사의 기자는 "이미 4년 전 소치올림픽 당시 안현수 사태 당시 빙상계와 관련해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기사를 썼다"고 밝혔다. 안민석 의원도 "문건은 뜬금없다"는 입장이다. 문건이 있다는 것 자체를 해당 기사가 나와서야 알게 된 상황이다. 해당 매체는 문건의 예시로 든 언론사와 의원 측 어디에도 연락 한번 취하지 않았다.

한 인터넷 매체가 전명규 부회장이 측근에게 지시해 만들어 언론과 정치인에게 전달했다고 전한 언론 보도 지침 문건.(사진=A 매체 기사)
팩트에 대한 최소한의 확인 작업도 하지 않고 쓴 추측성 기사인 셈이다. A 매체는 지난해 소속 기자가 한 유명 온라인 스포츠 커뮤니티에 마치 팬인 것처럼 익명 댓글을 올려 여론을 조작하려 했던 사실이 밝혀져 파문을 안긴 바 있다. 해당 기자는 물론 A 매체의 선임 기자까지 공식 사과문을 띄웠다.

안 의원은 CBS노컷뉴스와 통화에서 "해당 기사에는 내가 '친 전명규 정치인'으로 꼽힌다는데 어이가 없더라"고 헛웃음을 지었다. 해당 매체가 자신의 라디오 인터뷰만 꼼꼼히 확인했어도 나오지 않을 내용이라는 것이다. 안 의원은 "내가 인터뷰에서 전 부회장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또 최근에는 연맹에서 전횡을 휘두르고 있다고 지적했는데 어떻게 '친 전명규 정치인'이냐"고 반문하면서 "해당 매체에 정중히 항의의 뜻을 전했다"고 말했다.

CBS노컷뉴스는 연맹 전직 회장이 받아온 특혜와 빙상계 파벌 싸움 양상 등에 대해 2014년 설치된 문화체육관광부의 스포츠4대악신고센터가 정리한 내용 등을 바탕으로 기사를 작성했다. 특정인이 작성한 사적인 문건이 아니라 정부 차원에서 사실에 근거해 조사, 정리한 공적 자료들이다.

안민석 의원은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으로 최순실의 체육계 장악과 관련한 국정감사 자료까지 확보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앞서 언급한 기명 칼럼의 기자는 최순실 사태를 최초 보도했고, 안 의원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를 파헤쳤던 인물이다. 물론 전 부회장 측이 문건을 만들었을 수는 있다. 그러나 CBS노컷뉴스에는 그 어떤 문건도 전달되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CBS노컷뉴스는 기사를 쓴 A 매체 측에 공식적으로 항의했고 기사를 수정하겠다는 뜻을 전달받았다. 이어 A 매체 기자를 통해 "전 부회장의 문건이 언론과 정치인에게 전달됐다"고 증언한 빙상인에게 도대체 어떤 기자와 정치인에게 전해졌는지, 특히 CBS노컷뉴스에 전달이 됐는지 확인을 위해 연락을 요청했지만 응답은 없었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도 CBS노컷뉴스의 공식 항의에 대해 입장을 전해왔다. "귀 매체가 빙상연맹 전 부회장의 청탁을 받고 기사를 쓴 것처럼 적시한 바 없고 둘 사이 인과 관계가 있는 것처럼 보도한 바도 없다"면서 "청탁 관련 내용이 나오는 녹취 공개는 그 뒤 별개의 내용으로 구분하고 별도의 상황으로 설명을 시작했다"고 해명했다.

이어 "본 취재진이 전 부회장에 취재를 요청하고 질문을 전달한 이후 이 시기에 나온 '노선영 선수의 배후' '노선영 선수와 SBS'와 관련된 두 기사를 인용했다"면서 "매체와 기자는 가리고 제목 위주로 인용했고, 명예훼손할 의도가 없었다"고 덧붙였다. 청탁 관련 녹취와 기사의 예를 방송해놓고도 의도는 없었다는 사뭇 이해하기 어려운 답변이었다.

결국 각종 논란의 중심에 선 전 부회장이 나서서 각종 의혹들에 대해 해명하지 않으면 한국 빙상과 체육계는 이같은 혼돈 상황에서 헤어나올 수 없다. 평창올림픽 매스스타트 금메달을 따낸 이승훈(대한항공)은 전 부회장의 특혜를 받은 인물로 지목돼 일부 국민들로부터 비난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왕따 주행 논란에 과도한 비난을 받아 정신과 치료까지 받은 김보름(강원도청)처럼 '마녀사냥'이 재현될 수 있다.

전 부회장은 4년 전에는 침묵으로 넘어갔을지 모르지만 이번만큼은 안 된다. 4년마다 되풀이되는 한국 빙상의 고질적인 병폐를 논란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기회다. 전 부회장에게는 그래야 할 책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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