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행 : 박민 참여미디어연구소장
■ 대담 : 정찬대 커버리지 기자
- 정치권 4.3 관련 특별법 추진 약속 관련 시민 압박 필요
- 군경 피해 폐광굴 숨어있던 임실 주민 7백여 명 집단 학살 당해
- '4.3 좌익 폭동' 홍준표 발언에 "이런 인식으로 과거사 규명 어려워"
오늘은 제주 4.3사건 70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미 군정기 공권력에 의해 좌우 이념 대립이 낳은 민간인 집단 학살 사건인데요. 이러한 민간인들의 무고한 희생은 이후에 일어난 한국전쟁 때도 계속됐습니다. 어둡고 아픈 과거이긴 하지만, 우리는 제대로 조명하고 또 마주하는 일에 주저하고 있는 것도 사실인데요. 제주 4·3사건은 제주지역에 국한된 일이 아니고요. 다른 지역, 우리 지역에도 여러 가지 의미를 남기곤 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한국전쟁 중에 민간인 학살 사건만을 탐사 취재하고 있는 분을 연결하려고 합니다. 2015년부터 현재까지도 관련 기사를 연재하고 있는 분입니다. 커버리지, 정찬대 기자 전화 연결합니다. 기자님 안녕하세요?
◇ 박민> 오전에 제주 4·3사건 70주년 행사가 진행됐고요. 여기에 모처럼 대통령과 여야 지도부가 참석했는데 예년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어요. 어떻게 보셨습니까?
◆ 정찬대> 그렇습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 대표들이 대거 참석했는데요. 이전 정부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였습니다. 여야 정치권이 관련 특별법 개정안 추진을 약속했는데 우리 모두가 지켜보고 때로는 압박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사실 특별법 제정 이후에도 왜곡하려는 시도가 있지 않았습니까. 그런 것들을 시민들이 반추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 박민> 정권에 따라서 다른 모습을 보이는 것도 안타깝기는 하네요.
◆ 정찬대> 네, 그렇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추념식에 참석했는데 노무현 전 대통령 이후 12년 만이었죠. 그리고 제주 4.3 추념식이 2014년 박근혜 정부 하에서 지정됐는데 박 전 대통령은 찾지 않았습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마찬가지였고요. 이명박 정부 시기인 2010년에는 규명 작업이 중단되기도 했습니다. 역사적으로 분명한 사실도 정권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는 점이 우려스럽죠.
◇ 박민> 사실 이러한 사건이 우리 현대사에 굉장히 많잖아요. 정찬대 기자는 민간인 학살 취재하기 위해 지금까지 전국에 안 가보신 데가 없죠?
◆ 정찬대> 지금까지 알려진 학살 사건은 빙산의 일각이라고 봅니다. 여전히 알려지지 않은 학살지가 많습니다.
◇ 박민> 전라북도에도 자주 오셨잖아요. 그중에서 대표적으로 어떤 사건이 기억에 남으세요?
◆ 정찬대> 작년에 제가 <민간인 학살의 기록, 호남·제주편>을 출간했습니다. 그중 가장 공을 많이 들인 지역이 순창이었습니다. 순창은 전북도당 사령부가 있었던 지역입니다. 빨치산들의 이야기가 주를 이룹니다. 그렇지만 빨치산으로 분류된 사람 중에는 비무장한 민간인들이 대다수이었어요. 군경의 학살을 피해서 산으로 도망갔는데 빨치산으로 찍혀서 학살당했고요. 또 임실 폐광굴 사건도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임실호국원 인근에 폐광굴이 있었는데요. 거기에 7백여 명의 주민들이 군경을 피해서 숨었다가 연기로 인해서 집단 질식사한 사건입니다. 동굴 앞에서 불을 피웠던 청년 단원을 인터뷰했는데요. 그분은 자신의 친척이 동굴 안에 있는 걸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불을 피웠던 분입니다. 뒤에서 군인들이 총을 겨누고 있기 때문에 자신도 죽음을 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불을 피워야만 했던 분이세요. 이런 분들을 보면서 가해자들도 또 다른 피해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박민> 이념 대결의 현장에서 인간들이 보인 광기의 현장이었던 거 같은데요. 죽인 뒤에 빨갱이였다고 하면 그만이던 시절이었는데 어느 동네에 가면 제삿날이 옆집 앞집 뒷집이 전부 다 똑같은 적도 있었다면서요?
◆ 정찬대> 그렇습니다. 제주 북촌 마을은 주민 4백여 명이 하루 동안 집단 학살된 곳입니다. <순이 삼촌>이란 소설의 배경지이기도 한데요. 부녀자나 노인 할 것 없이 무차별적으로 학살당했습니다.
◇ 박민>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러한 현대사를 제대로 마주하고 조명하는 일에 주저했던 것 같아요 조금 불편했다고 할까요. 왜 그랬다고 보세요?
◆ 정찬대> 조금 조심스러운 부분인데요. 지금 자유한국당의 경우만 하더라도 제주 4.3사건 등 민간인 학살을 주도한 이승만 정권의 적통을 이어받고 있지 않습니까. 자유당의 후신인데요. 그런 상황에서 현대사를 규명하는 일은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당장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4·.3을 두고 제주 양민이 무고한 죽음을 당한 일과는 관련이 없다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제1야당 대표가 이런 인식을 갖는 상태에서 과거사 규명도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겠죠.
◇ 박민> 대표적으로 전남 여수 순천 사건도 그렇고요. 오늘 70주년 행사가 진행된 제주 4·3사건도 그렇고, 이들 사건이야 진실을 규명하고자 하는 노력들이 여전히 진행 중이지 않습니까. 문제는 그렇지 못한 사건들이 더 많다는 겁니다.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세요?
◆ 정찬대> 제주 4.3이 발생하자 폭도들을 진압한다는 이유로 여수 14연대를 파견하려고 했는데 이들이 같은 민족끼리 총을 겨눌 수 없다고 해서 거부한 게 여순 사건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여순 사건 이후 국가보안법이 만들어지고 정치범이나 좌익사상범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이 이뤄졌습니다. 현재 진실화해위원회 2기 출범에 대한 논의들이 오가고 있는데요. 과거사 규명 같은 경우는 정부나 정치권의 의지 없이는 이뤄질 수 없는 영역입니다. 자료 접근 권한도 민간에 없고요.
◇ 박민> 진실화해위원회 활동이 다시 필요하다?
◆ 정찬대> 네, 그러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박민> 앞으로 취재 계획에 대해서 한 말씀해주시죠?
◆ 정찬대> 지난해 호남·제주편이 나왔었는데 올해는 <민간인 학살의 기록, 영남편>이 출간될 예정이고요. 이후에 충청편도 집필할 생각입니다.
◇ 박민> 네, 여기까지 말씀 들어야겠네요.
◆ 정찬대> 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