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 일 동안 반박의 재반박, 재재반박 등 진실 공방을 거친 결과다. 이 과정에서 피해를 주장한 여성에 대해 '음모론'이 제기되기도 했고, 보도를 한 해당 언론사를 상대로 고소가 진행되기도 했다.
사건발생 장소로 지목된 여의도 렉싱턴 호텔에 간 적이 없다며 '성추행 의혹'을 부인했던 정 전 의원은 카드결제 내역이 나오자, "2011년 12월 23일 오후 6시 43분 렉싱턴 호텔에서 결제한 내역을 찾아냈다"며 "당일 제가 렉싱턴 호텔에 갔다는 사실이 객관적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결국 정 전 의원은 언론사와 증거 공방에서 이기기 위해 제시한 780여장의 사진과 논리의 덫에 걸려 잘못을 '시인 한 꼴'이 됐다.
행위에 대한 부정보다는 '그 시간, 그 곳에 없었다'에 방점을 맞추고 증거를 제시했던 정 전 의원이 스스로 인정 했다라기 보다는 '시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는 얘기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이 과정에서도 정 전 의원은 끝까지 '성추행 혹은 호텔에 간 사실'은 인정하지는 않았고 피해를 주장한 여성에 대한 사과도 없었다. 그러면서 "여전히 변명처럼 들리겠지만 이 사건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다"며 "기억이 없는 것도 제 자신의 불찰이라고 판단했다"고 덧붙였다.
'그 곳에 간 기억이 없다'는 기존의 주장을 재확인하며 정당화한 것이다. 호텔에 갔는지 (성추행을 했는지) 여부 또한 '불완전한 기억'의 탓으로 온전히 돌린 셈이다.
BBK 저격수로 지지를 받던 정 전 의원에게 대중이, 정치권이 기대했던 태도는 이런 모습은 아닐 것이다.
사면 복권과 동시에 정치권에서는 서울시장 후보로 거론될 정도로 대중의 이목이 집중됐다.
2011년 당시로 돌아갈 수 없다면, 현재 제기된 의혹에 대해 진지하게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를 했다면' 이렇게까지 대중의 분노를 사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정치공작에 맞서 싸우는 '정의의 사도'를 자처했고, 그 과정에서 'BBK 사건'과 관련해 자신에게 가해졌던 명예훼손 혐의를 피해자에게 씌우며 2차 가해를 했다.
보도를 한 언론을 사이비 언론으로 몰아가며 '언론과의 전쟁'을 불사하기도 했다. 그 당당함에 일부 여론은 의혹을 제기한 여성과 언론을 향해 거친 비판을 쏟아냈다.
'끝까지 갈 줄 알았던 싸움'도 정 전 의원의 주장을 뒤집는 증거가 나오자 허무할 정도로 순식간에 끝이 났다. 정 전 의원은 즉각 언론에 제기했던 고소를 취하했고, 정계 은퇴도 선언했다.
20여일 동안 여러 명의 피해자를 낳은 진흙탕 싸움을 하고서도 정계 은퇴를 선언하면 모든게 끝이 나는 건지 되묻고 싶다. 또 ‘호텔에 갔지만 기억은 없다’는 해명은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을 하지 않았다’는 변명과 뭐가 다른지도 묻고 싶다.
정 전 의원이 밝혔듯 ‘10년 통한의 겨울을 뚫고 찾아온 봄날’이었지만 본인 스스로 봄날같이 다가온 정치생명을 끊어버린 꼴이 됐다. 이제는 진실 여부와 관계없이 그의 정치인생도 끝났고 나꼼수 팬들의 기대도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