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도 '마음의 빚'을 넘어서는 표현이 나오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되지만, 그간 양국의 외면에 고통을 오롯이 감당해야 했던 피해자들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 위안부 합의땐 피해자가 중요하다더니
실제로 베트남정부는 가해국의 사과가 국민들을 자극해 내부갈등이 생길 경우 체제안정에 해가 될 것을 우려해 조심스러워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사과는 당국이 아니라 학살이 자행된 지 50년이 지난 현재까지 상처를 오롯이 감당하고 있는 피해 당사자를 향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베트남전쟁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TF 소속 임재성 변호사는 "피해자에게 해야 할 사과를 정부에 하려고 하니 이런 상황이 된 것"이라며 "2015년 위안부합의는 피해자가 빠졌다고 지적하면서 베트남 피해자들의 요구에는 답하지 않는 건 모순"이라고 일갈했다.
이어 "과거사 문제는 국가 간 해결해야 할 외교 쟁점이기도 하지만 피해자가 있는 인권문제기도 하다"며 "진실을 어떻게 드러내고 피해자들을 어떻게 마주해야할 지 계획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 학살 피해자 "한국정부는 뭘 하느냐"
지난 10일 학살 50주기 위령제 참석차 베트남 현지를 찾은 한국인들에게 학살 유가족 당민코아(68) 씨는 "한국정부는 도대체 뭘 하고, 당신네들이 오느냐"며 격노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런 만행을 저질러놓고 언제까지 이대로 있을 것이냐. 언제 공식적으로 사과하고 책임질 노력을 할 것이냐"며 울분을 감추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자리에 있던 김현권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제가 무릎을 꿇고 '대한민국 국회의원으로서 사과한다. 국가도 머지않은 시기에 할 것'이라고 했더니 그는 '개인에게 화낸 것이 아니다'라며 눈물을 보이셨다"고 기억했다.
김 의원은 이어 "현실적으로 베트남정부의 입장을 존중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도 "사과하고 책임지는 것은 피해자와 관련한 일이기도 하지만 대한민국의 양심과 윤리의 문제라 앞으로도 진실에 직면하기 위한 노력은 계속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베평화재단 등에 따르면 당민코아 씨는 1969년 2월 별안간 들이닥친 한국군의 총탄에 꽝남성 주이하이사에 살던 일가족 9명을 한꺼번에 잃었다. 전쟁 기간 이 마을에서는 모두 149명의 민간인이 한국군에 학살된 것으로 파악된다.
◇ '공식사죄' 요구 봇물…이번에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이와 관련한 여러 건의 청원이 올라왔고 이 가운데 "우리가 배우는 역사교과서에 그때의 일을 정확히 다룰 필요가 있다"는 청원은 3주 만에 6천 명이 동의했다.
이부영 전 국회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당연히 해야 할 일도 적시에 적당한 자리에서 해야 그 뜻이 널리 크게 전달될 수 있다"며 "서독의 빌리 브란트 총리가 폴란드의 나치 히틀러 학살 피해자 추모비 앞에서 무릎 꿇고 사죄한 사례를 따르시길 요청한다"고 적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재임 때부터 지난해 한-베정상회담에 이르기까지 그동안 '마음의 빚'에 멈춰섰던 우리 정부의 입장이, 이번에는 어느 수준까지 이를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