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출석 당시 두터운 점퍼를 입었던 것과 달리 2차 소환 때는 정장 차림으로 나선 그가 법리적 반박을 직접 한 것이다.
안 전 지사는 19일 서울서부지검에 출석하면서 "다시 한번 모든 분께 죄송하다. 합의에 의한 관계였다고 생각하지만, 고소인들께서 아니라고 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검찰 조사를 충실히 받겠다. 그에 따른 사법 처리도 달게 받겠다"고 덧붙였다.
'죄송'과 '사과'로 시작해 '죗값을 달게 받겠다'는 말로 끝난 입장 표명이었지만, 정작 하고 싶었던 주장은 '합의된 관계'로 해석됐다.
안 전 지사가 받는 '업무상위력 등에 의한 성폭행(형법), 추행(성폭력처벌법)' 혐의는 "업무, 고용 기타 관계로 인해 자기의 보호나 감독을 받는 사람에 대해 위계 또는 위력을 행사"했을 때 적용된다.
판례를 보면, '위력'은 사람의 자유의사를 혼란하게 할 일체의 세력이다. 폭행‧협박은 물론 사회적‧경제적‧정치적 지위와 권세에 의한 압박 등이 해당한다.
김지은 씨의 경우 사건 당시 안 전 지사의 수행비서였고, 현직 정무비서 자리에서 의혹을 폭로했던 만큼 두 사람의 객관적인 고용 관계를 두고 다툼의 여지는 크지 않아 보인다.
결국 쟁점은 성적 자기결정권이 침해되는 과정에서 김 씨가 거부 의사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던 이유가 두 사람의 권력 차이였는지, 정치적 지위 등을 이용한 압박이 있었는지다.
이에 대해 김 씨의 한 변호인은 CBS노컷뉴스와의 전화 통화에서 "관련한 증거를 갖고 있다"며 "안 전 지사 측의 위계로 인해 김 씨가 오피스텔로 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안 전 지사가 관계 이후 보냈다는 '미안하다', '괘념치 말거라' 등의 메시지도 업무상 위력을 뒷받침할 근거로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김 씨 측이 제시한 상태다.
안 전 지사 변호인은 취재진과의 통화에서 이에 대한 구체적 물증이 있는지에 대해 "재판과정에서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위력은 없었다. 힘이 작용한 관계는 아니다"며 "객관적으로는 지사와 비서의 관계였지만 둘의 관계는 주관적인 다른 사유가 개입된 것"이라고 안 전 지사 변호인은 주장했다.
안 전 지사가 주도해 설립한 '더좋은민주주의연구소' 직원이었던 두 번째 피해자에 대해서는 두 사람의 관계 설정부터 쟁점이다.
안 전 지사 측은 더연을 안 전 지사가 직접 운영을 하지도, 직책을 맡고 있지도 않다고 주장하고 있다.
위계가 발생할 업무상, 고용상 관계 자체부터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맞서 두 번째 피해자의 변호를 맡은 오선희, 신윤경 변호사는 고소장 제출 뒤 "피해자는 권력으로부터 피해를 입고도 힘이 없어 말도 못했다"고 주장했다.
더연이 안 전 지사 측 싱크탱크였다는 관련자들의 증언도 많다.
대법원의 관련 판례 등을 보면, 업무상위력에 의한 성범죄에 대해 법원은 발생 장소와 시기, 피해자 진술의 일관성과 신빙성, 두 사람이 주고받은 문자와 전화, 선물 등 여러 정황과 경위를 종합적으로 검토해왔다.
검찰 관계자는 "본건은 합의 없이 물리력을 행사하는 성폭행 사건과 다르게 도지사와 비서 사이 지위의 차이, 근무 분위기나 환경이 작동해서 실제 행위에서는 합의에 의한 것으로 보이지만 위력이 있어 그 관계를 이용해 성폭행이 있었는지 등 제반 상황을 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검찰이 안 전 지사가 썼던 충남도지사실, 충남 홍성의 관사와 성폭행 장소로 지목된 서울 마포구의 오피스텔 등을 압수수색 한 이유도 이런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