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리그 샐러리캡 논쟁,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

상대적으로 불리한 여자부의 경기 배정, 다음 시즌부터 개정 논의

양효진과 함께 V-리그 여자부에서 가장 많은 연봉을 받는 김희진(가운데)은 2018~2019시즌 새롭게 도입되는 '25%룰'에 따라 향후 3년은 최고 연봉이 3억5000만원으로 제한된다.(사진=한국배구연맹)
2017~2018시즌 V-리그는 정규리그를 마치고 ‘봄 배구’만을 남겼다. 챔피언결정전의 치열한 경쟁 만큼이나 코트 밖에서도 V-리그는 ‘뜨거운 감자’다. 다음 시즌부터 한국배구연맹(KOVO)이 V-리그 여자부에 도입하는 1인 연봉 최고액 제한 때문이다.

KOVO는 지난 5일 제14기 6차 이사회 및 임시총회를 열고 남녀부 샐러리캡의 인상을 의결했다. 이에 따라 남자부는 다음 시즌부터 3년간 매년 1억원씩 인상한다. 현재 24억원인 샐러리캡은 2020~2021시즌 27억원까지 확대 운영된다. 여자부는 다음 시즌 14억원으로 1억원을 인상한 뒤 이후 2시즌 간 샐러리캡을 동결한다.

샐러리캡 인상과는 별도로 여자부는 남자부와 달리 선수 1명의 연봉이 전체 샐러리캡의 25%를 초과할 수 없도록 하는 규정을 신설했다. 이로 인해 다음 시즌부터 여자부 최고연봉은 3억5000만원을 넘지 못한다. 올 시즌 여자부 최고 연봉은 양효진(현대건설)과 김희진(IBK기업은행)의 3억원이다.

그러자 한국 여자배구의 최고스타 김연경(상하이)이 반기를 들었다. 김연경은 지난 11일 자신의 SNS를 통해 KOVO의 이 같은 결정을 강하게 반발했다. 남녀부의 현실적인 금액 차를 지적하며 여자부는 선수 1명의 연봉이 샐러리캡 25%를 넘을 수 없다는 점도 불만을 드러냈다. 이런 제도라면 자신은 한국에 복귀하지 못하고 해외리그에서 은퇴해야 한다고 말해 많은 배구팬을 들끓게 했다.

여기에 정치권과 정부에서도 이를 남녀 차별적인 규정으로 인식하며 관심을 보였다. 바른미래당 지상욱 정책위원회 의장은 최근 당 최고위원회 회의에서 V-리그 여자부의 샐러리캡 상한선 조항의 폐지를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 여성가족부는 KOVO에 해당 규정의 수정을 요청하는 등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V-리그 여자부 6개 팀은 매년 꾸준하게 유망주가 프로의 문을 두드리는 남자부와 달리 프로배구선수를 꿈꾸는 여자 유망주의 절대적인 수가 줄고 있다는 점에서 위기를 느끼고 있다. 실제로 V-리그 여자부는 신인 드래프트에 2~3년을 주기로 스타급 선수가 문을 두드린다는 평가를 받는다.(사진=한국배구연맹)
◇ 샐러리캡의 도입은 ‘공정한 경쟁’을 위해서다

하지만 이는 표면적인 해석이다. 실제 V-리그 남녀부가 처한 현실을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15일 현재 V-리그에 등록된 선수는 수련선수를 포함해 남자부 130명, 여자부 100명으로 각 팀에 평균 남자는 19명, 여자는 17명이 소속되어 있다. V-리그 선수 정원은 최소 14명, 최대 18명이다.


V-리그 선수들의 올 시즌 평균 연봉은 남자 선수가 1억2620만원, 여자가 7440만원을 받는다. 단순 계산으로만 비교해도 남자부는 선수 연봉으로 약 24억원을, 여자부는 약 13억원을 쓴다. 남녀부 모두 올 시즌 샐러리캡을 가까스로 맞추고 있다는 계산이다.

그러나 단순 계산이 아닌 실제 각 팀의 선수 몸값 지출은 평균치와 다르다. 남자부 7개 팀은 모든 팀이 샐러리캡을 거의 소진했지만 여자부는 절반 정도만 샐러리캡을 100% 가까이 충족하고 있다. 나머지 팀 중 일부는 KOVO가 정해놓은 최저 연봉 소진 기준인 70%를 가까스로 넘기는 수준이다. 실제로 2018~2019시즌 샐러리캡 1억 상승 후 2시즌 간 동결은 KOVO가 아닌 V-리그 여자부 팀이 뜻을 모아 만든 규정이다.

샐러리캡은 특정 팀이 우수한 선수를 싹쓸이하는 것을 방지하는 동시에 리그에 참여하는 모든 팀이 비슷한 규모의 연봉으로 비슷한 수준의 선수단을 구성해 비슷한 전력으로 공정한 경쟁을 하자는 목적에서 시작된 규정이다. 신인 드래프트도 비슷한 의도를 가진 제도로 리그의 재미를 위해 ‘1강’을 두지 말자는 의미다.

단체 스포츠인 배구는 특별한 재능을 가진 선수 1명에 의해 승패가 좌지우지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코트에 나서는 6명을 포함해 전체 팀이 하나가 되어 경쟁하는 종목이다. 이 때문에 특정 선수가 과도하게 많은 연봉을 받는 경우 실제로 조직력에 문제를 보였던 사례가 많았다. 이 때문에 여자부 각 팀은 이 문제를 우려해 특정 1명의 연봉이 샐러리캡의 25%를 초과하는 사례를 두지 않기로 했다.

2017~2018시즌 V-리그 여자부 정규리그 우승팀 한국도로공사의 연고지 김천은 화성과 함께 여자부의 구름 관중 몰이를 쌍끌이했다.(사진=한국배구연맹)
◇ 진짜 문제는 샐러리캡 아닌 남녀부의 '동등한 경쟁' 논의

여자부 6개 팀이 남자부 못지않은 대우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진짜 이유는 V-리그가 ‘프라임 타임’을 남자부에 모아주고 있기 때문이다. 남자부는 평일 오후 7시, 주말 오후 2시에 대부분 일정을 소화한다. 하지만 여자부는 평일 오후 5시, 주말 오후 4시로 상대적으로 TV시청률 또는 관중 수익 부문에서 불이익이 따르는 실정이다.

실제로 2005년 V-리그가 출범할 당시부터 남자부가 중심이었다. 이러한 경향이 10년 넘게 리그 운영의 전반에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최근 들어 여자 배구가 크게 인기를 끌며 서서히 KOVO를 비롯한 V-리그 구성원의 인식이 변화하고 있다.

2012~2013시즌 V-리그 남자부가 약 25만명의 관중을 모은 반면, 여자부는 7만명 수준에 그쳤다. 하지만 남녀부가 분리운영한 올 시즌은 남자부가 30만명, 여자부가 18만명 수준으로 집계됐다. 경기수의 차이를 고려하더라도 여자부의 성장은 분명 두드러진다. 실제 TV중계도 남자부는 0.9%, 여자부는 0.7%로 격차가 크게 줄었다.

이 때문에 KOVO는 시청률 저하를 우려하는 TV중계 방송사의 반대도 무릅쓰고 2018~2019시즌에는 남녀부의 경기 일정을 최대한 균등하게 운영하는 일정을 논의할 계획이다. 이 경우 최대한 남녀부 일정이 분리돼 평일 오후 7시, 주말 오후 2시의 프라임 타임에 남녀부 경기가 대등하게 분할될 수 있도록 한다는 구상이다.

여자부 한 구단 관계자는 “최근 한두 시즌을 놓고 남녀부의 관중이나 TV시청률의 격차가 줄었다고 판단하는 것은 다소 성급하다"면서 "남녀부의 출발부터 달랐던 만큼 꾸준하게 결과가 누적된 뒤 판단해야 한다. 남자부와 여자부는 경쟁이 아니라 공생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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