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아들의 하나은행 특혜채용에 연루됐다는 의혹이 확산되면서 최흥식 금융감독원장이 결국 사의를 표명했다. 최 원장은 "불법적인 행위를 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지만 친구의 아들을 추천한 것 자체가 특혜라는 지적에 고개를 숙인 것으로 보인다.
하나은행은 채용공고를 낼 때 은행 홈페이지 등을 통한 공식 공고와는 별도로 행내 게시판을 통해 별도의 공고를 낸다. 은행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우수인재를 추천하라는 것이다. 은행 임직원과 고객, 거래처의 자녀 중 입사지원자가 추천 대상이다. 지난해와 올해 은행 채용 비리 문제가 불거지기 전까지 이같은 사실은 공채 지원자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다.
우수인재로 추천을 받으면 서류전형을 자동으로 통과한다. 대개 하나은행 입사 전형은 서류전형과 필기전형, 1·2면접으로 이루어지는데 이 중 첫 번째 관문을 부모 덕에 통과하는 셈이다. 2016년 전형 결과를 보면 이렇게 추천을 받은 입사지원자가 55명인데 이들은 서류전형을 모두 통과했다.
하나은행은 이같은 추천제도를 채택한 이유로 서류전형의 한계를 꼽고 있다. 서류전형은 자기소개서 대필과 도용, 유사한 경험 사례의 나열 등으로 객관성과 변별력이 부족하고 1만명 이상인 지원자의 자기소개서를 세밀하게 평가하기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최 원장의 친구 아들이 지원한 2013년 하나은행 하반기 공채에는 1만3400여명이 지원했다. 이들 지원자들이 제출한 서류의 내용이 대동소이하고 분량도 많아 일일이 확인할 수 없으니 추천받은 입사지원자를 우선 통과시켰다는 것이다.
은행의 채용 비리 문제가 불거진 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정의당 심상정 의원은 이처럼 추천만으로 서류전형을 면제해주는 것이 "공개채용 원칙을 위배하는 것이 아니냐"고 지난달 하나은행에 물었다. 그러자 하나은행은 "특혜나 채용 비리는 아니다"면서도 "일부 문제점을 인정한다"고 답했다.
하나은행의 이같은 채용 방식에 2013년 당시 최흥식 금융감독원장이 무슨 역할을 했는지를 대입해 보면 특혜인지 아닌지 판단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된다.
2013년 하나금융지주 사장이었던 최 원장은 대학 친구의 아들이 하나은행에 입사 지원을 하자 이를 해당 부서에 알렸다. 임직원의 우수인재 내부 추천에 해당하는 대목이다. 그 뒤 최 원장의 친구 아들은 하나은행에 합격해 현재 영업점에 근무 중이다.
이에 대해 최 원장은 지난 10일 "하나금융지주 사장으로 있을 때 외부에서 채용과 관련한 연락이 와서 단순히 이를 전달했을 뿐 채용과정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추천만 했을 뿐 합격 여부는 자신과 무관하다는 것이다.
금감원도 거들고 나섰다. 금감원은 지난 1월 하나은행에 대한 채용실태 검사에서 내부 추천을 통해 서류전형을 통과한 55명의 명단, 이른바 'VIP명단'을 찾아냈으나 이 가운데 6명만 검찰에 통보했다.
금감원은 면접 점수가 조작된 것으로 확인되거나 채용요건에 부합하지 않는데도 기준 신설 등을 통해 부당하게 합격시킨 사례가 이 6명이라고 밝혔다. 단순히 추천자 명단에 올랐다는 사실만으로 부정채용으로 본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최 원장이 추천을 했더라도 점수조작 등이 발견되지 않는 이상 부정채용은 아니라는 뜻이다.
최 원장은 12일 임직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자신의 채용 연루 의혹을 규명하는 특별검사단을 구성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특별검사단 조사 결과 본인이 책임 질 사안이 있으면 응분의 책임을 지겠다"고 말했다. 금감원은 전날 최 원장 친구 아들이 채용됐을 당시 점수 조작이나 채용기준 변경이 있었는지 확인해 달라고 요구했다.
최 원장과 금감원이 이처럼 적극적인 반박을 시도했지만 금감원은 과거 추천을 특혜라고 규정한 바 있다. 금감원은 지난 1월 26일 은행권 채용 비리 검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채용 추천 대상자를 임의로 서류전형에서 통과시키는 것을 "특혜를 부여하는 것"이라고 명시한 뒤 채용절차의 대표적인 미흡사례 중 하나라고 지적한 바 있다.
이같은 점을 의식한 듯 최 원장을 사의를 밝히면서 "당시 행위가 현재의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을 수 있다"고 인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