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위원장은 5일 대북 특사단이 평양에 도착한 지 불과 3시간여만에 접견에 나섰다.
귀환 직전에야 남측 인사를 면담하거나 아예 얼굴도 보지 않고 돌려보냈던 부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는 다른 스타일을 보여줬다.
2011년 12월 집권 이후 남한 당국자와 처음으로 만나는 자리인데다 남북 대화 및 북핵 외교 무대에 사실상 처음으로 데뷔하는 성격이어서 신중하게 접근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첫날부터 파격을 선보였다.
오후 6시부터 시작된 접견은 만찬으로 바로 이어져 밤 10시 12분까지 4시간이 넘게 진행됐다.
북한이 공개한 사진을 보면 김정은 위원장을 비롯해 참석자들이 모두 환하게 웃고 있는 등 만찬 분위기는 매우 화기애애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날 만찬에는 김 위원장의 부인인 리설주까지 참석했다. 남측 특사단에 자신의 부인까지 공개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행보다.
북측이 로동신문을 통해 공개한 사진에 따르면 리설주는 분홍색 정장 차림으로 김정은 위원장 오른쪽에 앉아 환하게 웃고 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리설주가 남측 인사들을 만난 것은 지난 2005년 인천 아시아 육상선수권대회에 응원단으로 참석한 이후 처음인 것 같다"고 전했다.
접견 장소도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김대중·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나눈 곳은 모두 백화원 초대소였고, 임동원·정동영 특사 등도 모두 백화원 초대소에서 김정일 위원장을 면담했었다.
이에따라 백화원 초대소가 유력한 장소로 꼽혔으나 김정은 위원장은 '조선로동당 당사'를 선택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접견과 만찬은 조선노동당 본관에 있는 진달래관에서 이뤄졌다"며 "남쪽 인사가 조선노동당 본관을 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통일부 인물정보 자료에 따르면 김정은 위원장의 공식 직함은 당 정치국 상무위원, 당 중앙군사위 위원장, 국무위원회 위원장 등 여러개이지만 가장 먼저 나오는 것은 '노동당 위원장'이다.
통일부 당국자는 "특사단 접견과 만찬이 진행된 조선노동당사 본관은 김정은 위원장의 집무실이 있는 건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노동당사는 김정은 위원장이 내년 신년사를 발표하는 곳으로,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우리의 청와대 성격을 가진 곳으로 볼 수 있다.
이처럼 베일에 가려진 자신의 집무실 공간이 있는 노동당사를 남측 당국자에 처음으로 공개한 것 자체가 파격 중의 파격으로 읽혀진다.
이에 앞서 대북 특사단 영접에도 장관급 인사를 비롯해 대남 실세 라인들이 총출동해 눈길을 끌었다. 우리측이 북한의 고위급 대표단을 영접했을 때와 비슷한 예우를 제공한 것으로 보인다.
특사단이 특별기를 타고 도착한 평양 순안공항에는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이 나왔고, 숙소인 고방산 초대소에는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김의겸 대변인은 "대표단 숙소인 고방산 초대소는 평양 대동강변 고급 휴양시설"이라며 "영접인사와 경호, 숙소 준비 상황 등을 볼 때 북측이 남측 대표단 환대를 위해 많은 준비를 한 것 같다고 대표단이 전해왔다"고 말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 교수는 "조선로동당사에서 접견한 적이 없었고, 외교 사절 접견에 부인 리설주가 동행한 사례도 알려지지 않았던 만큼 상당히 파격적이고 적극적인 행보임에는 분명하다"고 말했다.
양 교수는 "그만큼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의지가 강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김여정 특사단 방남때 우리가 보여준 환대에 걸맞게 예우를 하는 차원으로 이해되는 측면도 있다"고 덧붙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김여정 특사단 일행을 집무실이 있는 청와대로 불러 오찬을 했고, 또 특사단과 남북 여자아이스하키 단일팀 경기를 관람할 때 부인 김정숙 여사가 동행했는데 북한이 이에 상응하는 예우를 하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반면 북한이 대북 특사단을 기대이상으로 환대하는 것은 현재의 국제적인 고립 상황을 탈피하기 위해 기댈 수 있는 곳이 남측밖에 없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손기웅 전 통일연구원장은 "북한으로서는 핵무력 과시로 빚어진 경제난 극복을 위해서는 미국이 변화되고 대북 제재가 풀려야 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릴 수밖에 없다"며 "일단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을 챙기고, 동시에 북미관계 개선으로 가는 발판을 마련겠다는 의도가 있다"고 분석했다.
손 전 원장은 "이 때문에 김정은은 이번처럼 적극적이고 파격적이면서 통 큰 모습을 보여주면서 앞으로도 계속 대외적으로 젊고 새로운 지도자의 면모를 과시하려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