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사이' 원진아 "문수는 강한 척하지만 아프고 여렸다"

[노컷 인터뷰] '그냥 사랑하는 사이' 하문수 역 원진아 ①

지난달 30일 종영한 JTBC 월화드라마 '그냥 사랑하는 사이'에서 하문수 역을 맡은 배우 원진아 (사진=유본컴퍼니 제공)
때로는 몇 줄의 글보다 딱 떨어지는 숫자가 훨씬 눈에 들어올 때가 있다. 배우 원진아, 아직 대중에게 낯선 이름이었던 그는 '120:1'이라는 숫자로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높은 경쟁률을 뚫고 3년 만에 부활한 JTBC 월화드라마 '그냥 사랑하는 사이' 주인공 하문수 역으로 발탁된 것이다.

원진아에게 그 숫자는 잊지 못할 숫자였지만, 그는 특별히 의미 부여를 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연기자를 꿈꾸는 사람들은 언제나 많았고, 영화든 드라마든 오디션 경쟁률은 100:1을 넘나든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그 120명 중에서 자신이 가장 연기를 잘해 뽑힌 것이 아니라, '그사이'의 하문수와 닮은 점이 있어 운 좋게 드라마에 합류하게 됐다는 원진아는 드라마에서보다는 더 활기 있는 모습이었다. 특유의 낮은 목소리는 같았지만, 질문에 답할 때에 긴 머뭇거림을 허용하지 않는 시원스러움도 가지고 있었다.

지난 8일 오후, 서울 양천구 목동 CBS 사옥에서 원진아를 만났다. 40분 남짓 진행된 인터뷰는 흥미로웠다. 각자 기자와 배우라는 공식적인 위치에서 만나는 인터뷰가 조금은 더 안으로 파고들어 '대화'가 되려는 순간 아쉽게도 정해진 시간이 끝나 있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 '그냥 사랑하는 사이'가 끝났다. 첫 드라마를 끝낸 소감이 궁금하다.

아무래도 첫정이 되게 중요한 것 같다. 5개월 동안 거의 같이 살다시피 촬영을 했던 거라서, 스태프들이랑 동료들이랑 헤어지는 게 제일 서운했다. 아침부터 (다음 날) 새벽까지 계속 같이 있으니 친해질 수밖에 없었다.


▶ 촬영 기간이 어느 정도 되었나.

모자란 5개월 정도? 반 사전(제작 드라마)이었다. 한 3개월 정도는 촬영해도 방송이 안 되니까 '이게 방송되는 거 맞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웃음)

▶ 방송 전부터 120:1의 경쟁률을 뚫고 여주인공이 된 신예로 주목받았다. 어떻게 오디션에 참가하게 됐는지.

그냥 다른 작품이 그렇듯 오디션을 본 거다, 특별할 것 없이. 주인공 역할도 열려 있다고 해서 모든 경우를 열어놓고 갔었다. 그다지 크게 기대는 안 했다. 감사하게도 문수랑 좀 비슷한 점을 발견하셨는지… (붙었다) 숫자로 보니 큰 숫자지만 120:1이 그렇게 큰 건지 모르겠다. 어딜 입사한다고 해도 경쟁률은 센 것 같아서. 특히 이 분야는 경쟁률이 워낙 높다 보니 그 정도는 다들 지원하시는 것 같다. 제가 120명 중 제일 연기를 잘했다기보다, 배우의 특성과 작품의 특성과 맞았던 것 같다. 감독님이 생각하셨던 문수와 제가 비슷한 점이 있었던 것 같다.

'그냥 사랑하는 사이' 스틸 (사진=셀트리온 엔터테인먼트 제공)
▶ 오디션 이후나, 촬영 중에라도 감독에게 캐스팅한 이유를 들은 적이 있나.

설 쇤 후에 한 번 조심스레 물어보려고 한다. (웃음) '절 왜 뽑으셨어요?' 하고 물어보는 성격은 아니어서. 되게 많이 해 주신 말이 '꾸미려고 하지 말고 생각 깊게 하지 말고 네가 느끼는 대로 표현하는 대로 해'라는 것이었다. 모자라거나 넘치는 건 잡아준다고도 하셨고.

오디션 때도 연기만 보신 게 아니라 대화 위주로 흘러갔다. 저라는 사람과 (문수의) 공통점을 많이 봐 주신 것 같다. 그래서인지 연기할 때 '얘가 왜 이러지?' 하면서 납득이 안 되는 부분은 없었다. 책(대본)에서 친절하게 설명해 주신 면도 있었고. 저도 첫째 딸이어서 그런지 책임감이나 엄마와의 관계 등에서 비슷한 점이 있었다.

연기 잘하는 분들이 너무 많으시지 않나. 어느 정도 이미지가 맞는 사람 중 추리고 추린 것 같다. 감독님은 문수가 오롯이 문수로 보였으면 하길 원하셔서, 처음부터 신인을 생각하셨다고 하더라.

▶ 문수는 의젓하고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이려 애쓰는 사람이다. 건물이 무너지는 사고를 겪은 상처를 지니기도 했고. 전사가 있고 복잡한 감정을 표현해야 하는데 어떤 캐릭터라고 이해했나.

처음에 (대본을) 1, 2부를 봤다. 동네 이모들한테 하는 모습들을 보면 이 아이가 그렇게 무거운 아이만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밝게 사려는 의지도 보였고, 트라우마를 겪을 때도 (그것 때문에) 막 고통받는다기보다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캐릭터더라.

예를 들어 악몽을 꾼다고 하면 거기서 깰 때도 확 하고 놀라서 깨는 게 아니라 그냥 평소처럼 시계를 끄고 일상을 시작하는. 처음에는 살아가려는 의지가 강한 아이인가 했는데, 강두(이준호 분)를 만나고 아픔이 꺼내지다 보니 얼마나 그 아이가 힘들었을지도 같이 보였다. 강한 척을 하는 거지, 내면으로는 아프고 여린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 문수는 건축모형제작자다. 강두가 "사고 막아보려고 만드는 거냐"고 했을 때 그런 것도 있다고 답했는데, 그 장면에서 과거 사고를 피하지 않고 극복하려는 모습이 느껴졌다. 본인은 어떻게 이해했나.

'아, 열심히 살아야지' 하면서 극복하려고 하기보다는, 다른 꿈이 있었지만 죄책감에 그 일에 몰두하게 된 것 같다. 죽은 동생 연수(한서진 분)나 제가 (그곳으로) 불러서 죽은 성재(홍경 분)라든지 사람들을 잃었으니까. 나중에는 건축가라는 직업을 좋아하게 됐지만, (처음 일을 시작한 것은) 죄책감에서 온 것이었다.

문수는 동생 대신 자신이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을 안고 살아가는 인물이다. 사진은 문수가 엄마 윤옥의 차가운 말에 내가 대신 죽었으면 했느냐고 묻는 장면 (사진='그냥 사랑하는 사이' 캡처)
▶ 문수가 엄마 윤옥(윤유선 분)에게 그동안 감춰왔던 원망을 토해내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엄마는 하고 싶은 말 다 하면서 왜 나는 못 해?"라는 대사도 와 닿았고. 이 장면 찍을 때의 일화가 궁금하다.

맨 처음에 엄마가 목욕탕에 빠지는 장면부터 너무 걱정했다. 책 봤을 때부터. 이건 정말 (감정이) 우러나서 하지 않으면 누가 봐도 가짜로 보일 수밖에 없는, 너무 현실에 가까운 감정씬인 거다. (이런 느낌의 장면을 다른 드라마) 어디서 본 적이 있었는지 잘 모르겠다. 어떤 마음인지는 너무 알겠는데 연기로 표현할 때 (제가) 현장에서 못 할까 봐 걱정됐다.

갈등이 싸우고 부딪치는 게 많았다. 기본적으로 서로에 대한 사랑이 없으면 정말 큰 싸움 되는 거다. 윤유선 선배님은 (촬영 현장) 오시자마자 '문수야, 엄마 왔어' 하고 손잡고 안아주셨다. 밥도 꼭 같이 먹으려고 하시고 서로 얘기하면서 가깝게 있으려고 해 주셨다.

(극중에서는 대립하지만) 카메라 밖에서는 너무 예뻐해 주시니 싸우는 장면에서 속상한 마음이 생기는 거다. 화가 난다기보다는 가슴 아픈 느낌이 들었다. 천사 같은 모습으로 항상 배려해 주셔서 저도 잘 집중할 수 있었다.

▶ '그사이'는 명대사가 많은 작품으로도 손꼽혔다. 누구의 대사든 상관없으니 기억에 남는 것을 소개해 달라.

엄마(윤유선 분)랑 얘기하면서 '어떤 장면이 기억에 남으세요' 한 적이 있다. 선배님은 머리 말려 주면서 돌잡이 얘기하는 장면이 너무 마음 아팠다고 하셨다. 저는 제일 기억에 남는 건 나문희 선생님이 '우는 소리 크다고 더 아픈 거 아니다'라고 말씀하신 거였다. 이게 문수에게도 해당되는 말이기도 한데, 원진아라는 저한테 하는 말 같기도 했다. 저도 (감정을) 잘 표현하지 않는 편인데, 그러다 보니 (외적으로) 밝아진 면이 있다. 겉으로 보면 걱정 없이 즐겁게 산 듯이. 누가 내 삶을 들여다본 것 같은 대사였다.

(노컷 인터뷰 ② 원진아 "대사 한 마디에 창피함 사라져… 연기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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