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은 이 차명계좌를 이용해 4년간 80여억 원을 탈세한 삼성 임직원 3명을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넘길 예정이다.
◇ 70명 계좌에서 발견된 4천억원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거액의 세금을 가로챈 혐의(특가법상 조세포탈)로 옛 미래전략실 소속이었던 삼성의 한 계열사 사장 A 씨를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할 것이라고 8일 밝혔다.
차명계좌의 주인으로 지목됐지만 현재 입원 중인 이건희 회장은 '기소중지' 의견으로 넘긴다.
A 씨는 삼성이 이 회장의 차명계좌로 지난 2007년부터 4년간 80억여 원 상당의 소득세를 탈세하도록 주도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 조사결과 A 씨는 그룹 임원 72명 명의의 차명계좌 260개에 들어있던 4천억 원가량의 돈을 관리해온 것으로 확인됐다.
A 씨와 계좌에 이름을 빌려준 임원들은 경찰 조사에서 "이 돈은 故 이병철 회장이 갖고 있던 차명자산을 상속받은 것"이라고 해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어 "분산해서 보관하고 있던 계좌 자료를 깜빡하고 2008년 당시 특검에 제출하지 못했다"며 "이후에는 엄두가 안 났다가 2011년에야 국세청에 신고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삼성 측이 탈세한 금액을 82억여 원으로 추산했다. 2008년과 2009년의 경우 탈세규모가 비교적 작아 양도소득세로는 공소시효를 맞추지 못하자 최근 판례 등을 토대로 종합소득세까지 고려한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차명계좌에 있던 돈이 이 회장의 본 재산으로 인정됐다면 당연히 냈어야 할 세금이었는데 이걸 내지 않았다"며 "A 씨 진술을 토대로 이 회장도 차명자산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고 본다"고 밝혔다.
경찰이 이번 수사에 착수한 건 서울 용산구 한남동 삼성 총수일가 주택 인테리어 공사비용으로 업체에 지급된 돈이 '수상한 자금'이었다는 의심이 나오면서부터였다.
돈을 낸 전·현직 임원 8명의 9개 계좌내역을 압수해,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다가 출처로 지목된 A 씨를 찾아 수사를 확대한 것이다.
계좌 추적 과정에서는 2008~2014년 삼성일가의 주택 인테리어비용 30여억 원이 계열사인 삼성물산 법인 돈으로 지급된 사실도 확인됐다.
당초 지난 10월 경찰이 압수수색을 위해 찾은 삼성물산 한남동사무소에는 공사 관련 자료 없이 캐비닛에 빈 바인더만 꽂혀 있었다.
하지만 한 직원의 컴퓨터에서 '문답서'라는 제목으로, 심문에 어떻게 답변해야 하는지 설명하는 지침을 담은 파일이 발견되면서 의심을 지울 수 없게 됐다.
경찰은 이에 따라 현직 삼성물산 임원 B 씨와 현장소장 C 씨를 특경법상 횡령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할 예정이며, 이후에는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넘길 계획이다.
또 이 회장의 경우 조세포탈 혐의는 관련 진술과 증거로 혐의 입증이 가능하지만, 자택공사비 횡령에 얼마나 가담했는지 규명하기 위해서는 직접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경찰은 그러나 "생존해 있지만 의사소통이 어렵다"는 의료진의 말만 듣고 조사할 수 없다고 판단해, 이 회장을 기소중지 의견으로 송치하겠다고 밝혔다.
최근 석방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별도로 조사하지 않은 이유로는 "공사비용이 비교적 적고 관련 증거가 부족해 (혐의점을) 가리기 어려웠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