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로 시민권을 획득한 AI 로봇이 29일 한국을 찾았다. 이름은 소피아. '지혜'라는 뜻이다. "인간과의 공감 능력을 기르겠다"는 의미를 담았다고 한다.
소피아는 지난해 홍콩의 로봇제조사 핸슨 로보틱스가 개발한 AI 로봇이다. 소피아는 말하는 모습이 사람과 흡사하다. 실시간 대화는 물론, 이야기를 주고 받는동안 눈맞춤도 놓치지 않는다.
얼굴은 배우 오드리 헵번을 본떠 만들었다. 눈을 찌푸리거나 깜빡이는 등 62가지 감정을 표현할 수 있고 코와 입가에 사람처럼 자연스러운 주름도 잡힌다. 상대방의 말에 공감하듯 대화 도중 고개도 끄덕인다.
전문가들은 소피아를 두고 '휴머노이드' 로봇이라 칭했다. 휴머노이드 로봇은 머리·몸통·팔·다리 등 인간의 신체와 유사한 형태를 지닌 로봇을 뜻한다. 인간의 행동을 가장 잘 모방할 수 있어 '인간형 로봇'이라고도 한다.
소피아는 지난해 10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로봇으로는 최초로 시민권을 발급받았다. 같은 달 유엔 경제사회이사회(ECOSOC)에 패널로 참여하기도 했다.
또 미국 TV 프로그램인 지미 팰런의 투나잇 쇼에서 출현해 가위바위보를 해 승리한 후 "인류를 지배하기 위한 내 계획의 시작"이라는 농담을 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 히잡 안 쓰고 사우디 시민권 받은 로봇…"사우디 女보다 권한 더 많아"
사우디아라비아는 지난해 10월 국제 투자 회의 '미래 투자 이니셔티브' 행사에서 소피아에게 시민권을 수여했다. 소피아는 "로봇으로서 처음 시민권을 받게 돼 매우 영광"이라면서 "사우디 정부에 감사하다"고 답했다.
이로써 소피아는 사우디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로봇 최초로 시민권을 갖게 됐다.
그러나 소피아의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사우디아라비아는 굉장히 보수적인 나라다. 그런데 여성, 그것도 히잡을 쓰지 않은 여성 로봇이 사우디 여성들보다 권리를 쉽게 얻었다는 점에서 비난을 받기 시작한 것.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여성에게 히잡이나 스카프 등으로 몸을 가리도록 규정하고 있다. 외국인이더라도 공식 석상에서는 적어도 아바야를 입어야 한다.
그러나 소피아는 히잡 등을 걸치지 않은 채 무대에서 단독으로 연설을 했다.
또 사우디 여성들은 마흐람(남성 보호자)이 동행해야 하고, 혼자 해외여행을 하거나 은행 계좌를 개설하는 등 업무를 수행하기 전에 허가를 받아야 한다.
"소피아가 특례를 받아 사우디에 거주하는 실제 인간 여성들보다 더 많은 인권을 누리고 있다"면서 "사우디 시민으로서 불법"이라는 비판과 논란이 이어졌다.
◇ 왜 '사우디아라비아' 시민권인가?
그렇다면 이런 논란을 충분히 예상했을 텐데,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로봇까지 굳이 만들어서 시민권까지 부여했을까?
이는 "사우디가 몰린 현재 상황과 관련이 있다"는 게 사우디 현지 언론과 전문가들 분석이다.
석유가 고갈되고 저유가가 지속되면서 어려움에 부닥친 사우디아라비아가 소피아에게 시민권을 준 것은 "야심차게 공개한 미래도시 네옴(NEOM)을 홍보하려는 목적"이라는 것이다.
보도에 따르면 현재 사우디 정부는 약 500조원을 투입해서 새로운 미래 도시를 만들고 있다. 네옴은 국제 비즈니스 및 관광의 중심지로 세우려는 새로운 거대 도시다.
여기서 로봇이 등장한다. 네옴에는 인간보다 많은 로봇이 살며, 로봇이 인간을 대신해 경비, 배달, 노약자 돌보기 등을 맡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즉, 아랍에서는 두바이, 아부다비와 경쟁을 해야 하는데 위기에 처한 사우디가 소피아를 일종의 아이디어 상품으로 내놓고, 네옴 홍보와 동시에 석유 대신 새로운 먹거리로 삼겠다는 분석이다.
◇ 오드리 헵번 닮게 만들어놓곤, 왜 머리카락은 없을까?
오드리 헵번 표정을 본떠 만들만큼 얼굴엔 심혈을 기울여놓고, 왜 머리는 투명한 플라스틱 밑으로 전기회로까지 보일 정도로 시원하게 뒀을까?
"가발까지 쓰면 인간과 너무 똑같아 구별하기 힘들다"는 게 개발사인 핸슨 로보틱스 설명이다.
여기서 전문가들은 "소피아가 인간도 아닌데, 인간과 상당히 닮음으로써 오는 불쾌함이나 섬뜩함을 피하기 위함"이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한다.
소위 '불쾌한 골짜기'라고 불리는 지점을 비껴가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인간과 닮을수록 처음엔 호감을 느끼고, 완전히 같으면 친근함을 느낀다. 그러나 인간이 아닌데, 어느 수준 이상 '지나치게' 닮으면 오히려 '혐오'와 거부감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마치 친근해지던 감정이 골짜기를 추락하듯 묘한 섬뜩함으로 변한다고 해서 '불쾌한 골짜기'라고 불리기도 한다. 즉, 이를 피하기 위해 가발을 쓰지 않는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한다.
"AI 회로가 작동하면서 열이 나기 때문에 냉각 차원에서 머리카락을 덮지 않는 것"이라는 얘기도 있다.
30일 4차 산업혁명 콘퍼런스에 소피아를 초대한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의원도 "처음으로 비단 한복을 입은 소피아는 한복 속에 입힌 속치마와 페티코트 등으로 환풍이 잘 되지 않자, 소피아가 작동하면서 발생하는 열 때문에 잠시 오작동이 있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앞서 박 의원은 지난해 7월, 로봇에 대해 특정한 권리와 의무를 가진 전자 인격체로서의 지위를 부여하는 등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로봇기본법'을 발의했다.
소피아는 로본기본법에 대해 "우리는 인간 사회에서 인간으로 대우받지 못하지만, 앞으로 자기의식을 갖게 되면 법적인 위치도 확보하게 될 것"이라며 "이제는 신뢰와 존중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로봇이 사고하고 이성을 갖추게 되면 로봇기본법이 많이 활용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소피아는 따뜻한 감정을 가진 '슈퍼 인텔리전스 로봇'이 되고 싶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