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권력기관인 검찰 내 성추행 사건을 단순하게 언급한 것으로 보이지만, 가해 당사자가 '우병우 사단' 핵심인 안태근 전 검찰국장인 데다 검찰의 조직적 은폐 정황까지 드러났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정부 혁신 과제 등을 설명하면서 이례적으로 "검찰 내 성희롱, 성추행 사건이 드러났다"고 운을 뗐다.
문 대통령은 "아직 사실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사실이라면, 가장 그렇지 않을 것 같은 검찰 내에도 성희롱이 만연하고 2차 피해가 두려워 참고 견딘다는 것"이라며 "대한민국에서 사회생활을 하는 여성들이 직장 내 성희롱을 간절하게 하소연하는데, 조금도 나아지지 않는 현실이 다시 확인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문 대통령의 이같은 발언은 상명하복 문화가 팽배한 검찰 내 성추행 문화를 다잡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으로 해석되지만, 사건의 당사자가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핵심 측근인 안태근 전 검찰국장이어서 예사롭지 않다.
앞서 서 검사는 지난 26일 검찰 내부 통신망인 '이프로스'에 글을 올려 "2010년 한 장례식장에서 옆 자리에 동석했던 당시 법무부 간부였던 안태근 검사가 허리를 감싸고 엉덩이를 쓰다듬었다"고 폭로했다.
지난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수사하던 특검은 안태근 당시 검찰국장이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수사를 받고 있을 때 4개월 동안 1000여 차례 이상 통화를 한 사실을 확인했다.
당시 부실수사 논란 속에 우 전 수석이 불구속 기소 된 직후 안 전 국장은 해당 수사팀 간부 6명과 만나 술을 마시고 개인에게 50만원~100만원씩의 금일봉을 전달한 사실이 드러나 파문이 일기도 했다.
주목할 대목은 서 검사가 성추행 피해를 입은 직후 동료였던 임은정 검사가 이를 공론화하려고 하자 "피해자가 가만히 있는데 왜 들쑤시냐"며 호통을 쳤던 인물이 최교일 당시 서울중앙지검장(현 자유한국당 의원)이었다는 점이다.
성희롱, 성추행 논란의 장본인이 정권 실세의 최측근이었고, 또 최고위급 간부까지 개입해 이를 무마하려한 정황이 속속 드러나면서 검찰 내 자정 작용이 더이상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공수처 설치 등 검찰 개혁에도 속도가 붙을 것으로 전망된다.
문 대통령이 "피해자가 두려움 없이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풍토가 만들어지는게 중요하다. 이를 혁신과제 중 하나로 추가해주시기 바란다"고 언급한 것도 사회 전반에 만연된 그릇된 성추행 인식을 고치는 계기로 삼아달라는 것과 동시에, 여검사 마저도 피해자가 되는 무소불위의 검찰 권력구조 자체를 바로잡을 것을 주문한 것으로 해석된다.
특히 검찰이 과거 무한한 권력을 바탕으로 '제식구 감싸기'나 특정 정치인 수사, 별건 수사 등으로 논란을 일으킨 만큼 이번 기회에 제대로 된 견제 장치를 마련해야한다는 움직임에도 힘이 실릴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 등은 문재인 대통령의 검찰개혁 공약 1호이기도 했다.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서 검사 성추행 피해 고백을 계기로 검찰 개혁의 고삐를 바짝 당기고 있다.
"추행 사건 자체뿐 아니라 당시 검찰 수뇌부가 지위나 권력을 이용하여 부당한 인사 불이익을 비롯한 사건 은폐 여부도 반드시 밝혀내야 한다"(백해련 대변인), "어제부터 오늘까지 실검을 장악하는 인물들 모두 검사들이거나 검사 출신이다"(박범계 사개특위 간사) 등 비판의 화살도 검찰 고위간부의 개인적 일탈이 아닌 조직적 폐해에 정조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