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간 각고의 협상끝에 '말 대 말'의 합의를 드디어 이룩하고 '행동 대 행동' 단계로 들어가기 위한 관문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9.19공동성명 이행이 BDA(방코델타아시아은행, 마카오)문제로 교착상태에 빠질 것이라 건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뜻하지 않게 놀란 건 미국도 마찬가지였다. 북한이 마카오의 한 은행에 대한 금융제재로 "금융은 피와 같다. 이것이 멈추면 심장도 멈춘다"면서 핵 협상 거부명분으로 내세울지는 미국도 미처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송민순 지음. 빙하는 흐른다)
북한은 너무 고통스럽게 반응했다. 그러자 미 행정부내 대북강경파들은 "이번엔 북한의 '목줄'을 제대로 잡았다"며 6자회담 미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차관보같은 협상파들을 고립시키는데 금융제재를 한껏 활용했다.
당시 금융제재를 주관하는 스튜어트 레비 미 재무부 차관은 '북한'에 대한 저승사자'라는 별칭까지 얻었다.
◇ 북한과 협상때마다 '저승사자' 자처하는 '미 재무부'
그로부터 13년이 흐른 2018년 1월 말. 미 재무부 의 '대북 제재파워'가 다시 한번 매우 강력하게 형성되고 있다.
미 재무부는 트럼프 행정부가 주도하는 북한에 대한 유엔안보리제재(2397호 포함)와 미국 독자제재를 사실상 모두 총괄하고 있다. 현재 대북제재는 미사일 연속발사와 핵실험으로 역대 최대최고 수준에 도달해 있다.
정부 당국자는 "유엔 안보리 제재도 원유 공급상한선을 정하는 등 역대 최고 수준이지만, 미국의 독자제재안은 매우 광범위하고 까다롭기 그지 없다"며 북한과의 인적.물적 교류는 모두 제재대상에 포함된 것으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남북 교류과정 하나하나가 모두 미국과의 조율 대상이라는 것이다.
미 재무부는 지난 25일에도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을 도왔다는 이유로 중국기업 2곳을 포함한 기관 9곳, 개인 16명, 선박 6척을 추가로 제재했다.
공교롭게도 미 재무부가 추가제재를 발표하던 날 시걸 맨델커 미 재무부 테러·금융정보부문 차관이 서울을 방문했다. 그녀는 미 재무부의 제재담당 실무 총괄자이다.
문제는 미 재무부가 대북제재를 주도하면서 미국내에서 남북 대화에 대한 견제와 경계감이 더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이 금강산 남북공동행사를 갑작스럽게 취소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금강산행사를 취소하기에 앞서 남측에서는 행사용 경유 반입과 선수단 이동을 위한 항공기 운항을 놓도 유엔 및 미국의 대북제재 위반논란이 확산됐다. 미국과의 까다로운 조율과정도 지연되고 있다.
특히 미국 내에서는 "대북제재가 '약발'을 발휘하기 시작했다"며 제재의 이행 수위를 더욱 끌어올려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당국자는 "미 재무부가 2005년처럼 다시 '저승사자'가 됐다"며 "미국내에서 대북제재가 효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는 평가가 나오면서 남북 교류과정에서 미국과의 조율이 좀 더 까다로워지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도 대북 강경 파워맨 중의 한명"이라고 말했다.
최근 펜스 부통령 등 미 행정부 관계자들의 '강성발언'도 대북제재 효과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면서 더욱 쎄지고 있다는 것이다.
미 행정명령에 따르면 북한으로 항공기 운항은 보통 까다로운 문제가 아니다.
예를들면, 북한 비행장을 사용한 항공기는 180일 동안 미국에 들어갈 수 없다. 또한 조종사나 승무원도 제재대상에 오를 수 있다. 만약 제재대상이 된다면 관련자들은 금융거래까지 통제를 받게 되므로 정상적인 금융거래를 할 수 없게 된다.
김광길 변호사는 그러나 "마식령 스키장을 방문하는 항공기는 공항 이용료를 내지 않는 것으로 남북이 합의했기때문에 제재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며 "항공기 운항에는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대북제재는 남북교류에 직접적이고 큰 영향을 미치고 파급력이 커지고 있다.
외교부는 현재 마식령 스키장 항공기 문제는 물론 응원단과 예술단, 그리고 북한 고위급 대표단의 방남과 관련된 제재문제를 미국과 포괄적으로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