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인에게 맞춰진 대피 매뉴얼은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에게 소용이 없었고, 매트리스 등 가연소재로 둘러쌓인 병원의 방염처리를 제한하는 소방법은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다.
화재에 취약한 병원에 대해 세밀한 대응책이 마련돼 있지 않아 비극을 키웠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 세종병원, 거동 불편한 환자들은 일반 화재처럼 대응 못 해
우선 다수의 환자가 머무는 병원의 특성상 일반적인 화재 대응 매뉴얼에 걸맞게 행동할 수 없었다는 배경이 지적된다.
김유식 한국국제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일반적으로 화재가 발생하면 자세를 낮추고 입과 코를 헝겊으로 막은 뒤 신속히 대피하는 것이 정석"이라고 말했다.
화재로 인한 연기가 위에서부터 아래로 내려오기 때문에 자세를 낮출수록 흡입하는 연기의 양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김 교수는 "그러나 정상적으로 자력 이동이 힘든 환자들은 연기를 피해 빠르게 몸을 낮추기 힘들다"며 "높이 60㎝가 훌쩍 넘는 병원 침대 위에서 고스란히 유독가스에 노출되기 시작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 방염처리 규정 있어도 병원과는 동떨어져
김 교수에 따르면 현행법상 일반 다중이용업소의 커튼과 카펫, 벽의 합판 등 불이 붙을만한 곳들엔 방염처리가 의무적으로 규정돼있다. 다중이용업소 중에서도 화재가 자주 발생했던 노래방이나 유흥업소 등에 맞춰 법이 강화된 덕이다.
그러나 병원의 경우 이러한 세부적인 규제를 받지 않는 상황이다. 김 교수는 "병원엔 거즈부터 시트, 침대 매트리스 등 가연성 소재들이 많지만, 소방법상 방염처리 등의 제한을 받지 않는다"며 "그간 화재 사고가 자주 발생했던 지하 노래방 등에선 법적 장치가 많이 강화됐지만, 병원은 그에 상당한 화재가 잦지 않았던 탓에 이런 규제가 미비하다"고 밝혔다.
◇ 설치 의무조차 없는 스프링클러…"개선 논의하겠다"는 당국
최만우 밀양소방서장은 "지하층이나, 무창층, 4층 이상의 중에서 한 층의 바닥 면적이 1000㎡ 이상일 경우 스프링클러를 갖춰야 하지만 세종병원은 바닥면적은 224㎡에 불과해 이에 해당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병원'이란 특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면적 등만을 기준으로 설치 규정이 마련돼 있었단 것이다.
김 교수는 "우리 사회가 고령화하고 있는 만큼 요양병원 등 병원 시설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다"며 "이에 걸맞은 안전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오후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은 관계기관 합동 브리핑에서 고개를 숙였다. 그는 "여러 가연성 물질과 스프링클러 설치 등에 관한 기준에 대해 보건복지부 등 관계 부처와 논의해 결정하겠다"며 "철저히 배우고 제도를 고쳐 안전한 나라를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