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소재로 한 영화 두 편이 흥행에 성공했다.
1980년 5월 18일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택시운전사'와 1987년 1월 14일 박종철 고문 치사사건을 다룬 '1987'이 주인공이다.
광주민주화운동과 박종철 고문 치사사건은 우리 현대사에서 국가 권력기관의 만행을 알린 큰 이정표와 같은 사건이다. 전자는 군이었고 후자는 경찰이었다.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광주 시민들은 신군부 퇴진과 계엄령 철폐를 외치며 민주화에 헌신했다. 보안사령관이었던 전두환은 이를 막기 위해 계엄군과 함께 공수부대까지 투입했고 학생, 노인, 어린이을 막론하고 무차별적으로 학살했다. 광주민주화 운동을 광주학살로도 표현하는 이유다.
광주학살 후 보안사령관이었던 전두환은 정권을 장악한 뒤 제11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이후 군대와 정보기관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강력한 권력기관이 됐다.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중심에는 경찰이 있었다. 서울대학교 언어학과 3학년이었던 박종철은 1987년 1월 13일 하숙집에서 치안본부 대공분실 수사관에게 연행됐다. 박종철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폭행·전기·물고문을 당하다 사망했다.
경찰은 이를 은폐하기 위해 박종철을 화장할 계획이었으나 그 뜻을 결국 이루지 못했다. 경찰은 1987년 그 시절 군부와 함께 권력의 시녀 노릇을 확실하게 했다.
그리고 1991년, 검찰이 있었다.
그로부터 4년 뒤인 1991년 4월 명지대학교 강경대 학생이 경찰이 휘두른 쇠파이프에 맞아 사망했다. 이후 며칠 간격으로 경원대 천세용, 전남대 박승희, 안동대 김영균이 노태우 정권 퇴진을 외치며 분신자살 했다.
1991년 5월 8일 어버이날 아침. 전민련에서 시민사회운동을 하던 김기설도 노태우 정권 퇴진을 외치는 유서를 남기고 분신으로 목숨을 끊었다.
젊은이들이 계속해서 분신으로 권위주의 정권에 항거하자 권력은 거대한 음모를 계획한다.
바로 김기설의 죽음을 공작으로 몰아가려는 계략이다.
김기설의 분신에 배후를 밝혀내라는 권력의 지시에 시녀처럼 움직인 조직이 있었다. 바로 검찰이다. 그 때 까지 검찰 조직은 군부와 안기부(현 국정원), 경찰의 그늘에 가려져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검찰 입장에서는 유서대필의 배후를 밝혀내 청와대의 신임을 받는 것이 절실했다.
당시 법무부 장관은 검사 출신의 김기춘이었다. 법무부 지시로 검찰은 수사에 착수했고 단국대학교에 다니던 강기훈 씨를 분신의 배후로 지목했다. 이후 검찰은 강압·부실 수사 끝에 강 씨를 구속했다.
유서대필 사건으로 노태우 정권 퇴진 분위기는 사려졌고 검찰은 정권의 신임을 받게 됐다. 유서대필 사건으로 검찰은 검찰공화국으로 가는 초석을 다졌다.
반대로 운동권은 동료를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것으로 도덕성에 큰 상처를 입었고 세력을 잃어갔다.
이후 유서필사건은 강기훈 씨와 사법부의 끈질긴 싸움으로 이어졌다. 그러던 중 2012년 재심이 개시됐고 2014년 재심 무죄 선고, 2015년 대법원에서 확정 판결로 최종 무죄를 확정 받았다.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은 지금까지 공안·정치 검찰의 대표적인 과오로 회자된다.
지난 14일 청와대가 권력기관을 개혁하기 위한 칼을 빼들었다. 청와대 조국 민정수석은 경찰과 검찰, 그리고 국정원 등 권력기관 개혁에 대한 정부 공식안을 발표했다.
개혁안에는 검찰이 독점하고 있는 권한을 대폭 축소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조국 수석은 "검찰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독점하며 기득권 유지를 위해 권력을 오남용 했다"고 보았다. 아직 경찰에 대한 신뢰가 높진 않지만 그래도 계속되는 검찰의 권력 남용 문제를 바로잡을 해결책을 제한 것이다.
아직 우리 사회에서 경찰에 대한 신뢰가 높진 않다. 이를 근거로 야당에서도 검찰의 수사권 조정에 반대하고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1991년 유서대필 사건 이후 더욱더 견고하게 쌓여 있는 검찰조직의 수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도 검찰 개혁의지가 높았다. 노 전 대통령은 취임 후 법무부 장관에 처음으로 여성 장관을 임명했다. 검찰 개혁을 위해 격식을 파괴한 채 평검사들과 '검사와의 대화'도 진행했다. 하지만 검찰 조직의 반발로 개혁은 성공하지 못했다.
문재인 정부 역시 검찰 개혁 의지가 강하다. 민정수석에는 비 검사 출신인 조국 서울대 교수를 임명했다. 관행처럼 이뤄져 오던 기수문화 인사도 타파했다. 그리고 이제 다른 정권에서 하지 못했던 검찰 조직을 개혁하려고 한다.
첫술에 배부를 순 없다. 시행착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만큼은 분명하다.
이번에는 1991년 이후 계속돼 온 검찰공화국이라는 오명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