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 최초 '인공지능 복지챗봇' 실상은?

인공지능 요소 하나도 없어 "전시성 행정"

지난해 8월 은평구는 인공지능 복지챗봇을 개발한다며 보도자료를 냈다. 하지만 실제 개발된 챗봇엔 인공지능 요소가 하나도 없었다. (사진=은평구청 보도자료 캡처)
지난해 8월 서울 은평구는 전국 최초로 인공지능 복지 챗봇을 개발한다며 대대적으로 홍보한 바 있다. 그런데, 개발된 챗봇을 뜯어보니 인공지능은 전혀 없었다. 결국 시민의 혈세를 들여 전시성 행정을 벌인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 지자체 최초 인공지능 복지챗봇 실상은 'ARS'


챗봇(Chat+Robot)은 채팅과 로봇의 합성어로 이용자가 시스템을 통해 말을 걸면, 챗봇이 이를 분석해 이용자가 원하는 적절한 서비스를 찾아주는 기계를 뜻한다.

과거에는 미리 시스템에 입력된 키워드에만 답변을 내놓았기 때문에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한계가 있었으나 지금은 챗봇이 이용자의 질문 의도를 분석하고, 스스로 데이터를 축적하는 등의 인공지능 기술이 가미돼 정확도가 높아지고 있다.

애플의 시리(Siri)나 구글이 개발한 알로(Allo) 등이 대표적인 예시다. 날씨나 맛집 추천부터 금융거래 등 점차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은평구는 지난 8월 2일 '은평구, 전국 최초로 복지 챗봇 개발' 이라는 보도자료를 내고, "주민의 상황에 맞는 복지서비스를 맞춤형으로 안내하는 인공지능 챗봇을 전국 지자체 최초로 개발한다"고 밝혔다.

보도자료에서는 "은평구청을 카카오톡 플러스친구로 등록한 후 자신의 상황에 맞는 키워드를 클릭 또는 입력하면 은평 복지 챗봇이 자동 맞춤형으로 1:1 실시간 답변하는 시스템"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시범서비스 중이고, 1월 중에 정식 출시될 예정이지만, 은평구청을 카카오톡 플러스친구로 등록하면 지금도 이용할 수 있다.

CBS노컷뉴스 취재진이 실제로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 알아보기 위해 '내 집 마련'이라는 검색어를 통해 복지 챗봇을 시연해봤다.

우선 챗봇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대화가 전혀 불가능했다. 화면을 넘겨가며 원하는 버튼을 누르는 방식에 불과했다. '내 집 마련'이라고 채팅을 하면 "목록에는 없는 번호입니다"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대화를 시도하면 목록에 없는 번호라며 답변을 거부당하고(좌), 번호를 누르면 결국엔 담당부서 내선번호가 나온 뒤 안내가 종료된다(우).
1:1 맞춤형 서비스나 인공지능도 찾아볼 수 없었다. '영유아', '아동·청소년', '청년', '중장년', '노년' 등 계층별로 나뉜 메뉴에서 '청년'을 누르면, 복지사업 안내라며 '교육', '고용', '주거' 등 7개로 분류된 카테고리가 나타난다.

다시 '주거' 버튼을 클릭하면, 화면 상에 무려 18가지의 복지 서비스 이름이 나열된다. 하나하나 읽어보더라도 어떤 서비스가 이용자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아 '전세임대주택'의 번호인 '10'을 눌러 보았다.

결과는 '전세 임대 주택과 관련해 안내해 드리겠습니다'라며 생활복지과 내선번호가 나온 뒤 안내가 종료된다.

인공지능이며, 실시간 맞춤형 서비스라는 말이 무색한 상황이었다. 시연을 부탁한 업계 관계자들도 마찬가지 반응이었다.

한 챗봇 업계 관계자는 "번호와 버튼으로만 돼 있어 홈페이지와 다를 게 없어 보인다"며 "사람의 말을 분석하는 자연어 처리나, 데이터를 축적하고 분석하는 딥러닝·머신러닝 등 인공지능 요소는 없다"고 평가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도 "ARS처럼 번호 누르면 해당하는 정보를 줘 대답하는 식이므로 챗봇이라 볼 수는 있을지 몰라도 인공지능 챗봇이라 보기는 어렵다"고 평했다.

◇ 개발업체마저 '못 넣는다'는데 홍보는 '인공지능 복지챗봇'

은평구는 한 챗봇 개발업체에 위탁해 지난해 8월부터 3개월 간 2000만원의 예산을 투입해 챗봇을 만들었다.

해당 업체는 개발 초기부터 구청에 인공지능을 넣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고 한다. 현실적으로 2000만원으로는 인공지능을 구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뜻을 분명히 전달했다는 것. 업체 관계자는 "홍보차원에서 구청이 그렇게 말하는 것 같은데, 분명히 인공지능 챗봇은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이에 대해 은평구청 관계자는 "개발을 하다 보니 개인정보 보호 문제도 있고, 기술적 한계 때문에 인공지능을 넣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인공지능이라는 수식이 붙은 이유는 "챗봇이 원래 인공지능이 있다고 홍보가 됐기에 차용했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결국 이렇게 개발된 챗봇은 인공지능은커녕 맞춤형 복지서비스 제공도 불가능하다.

한국인공지능협회 정우식 기술이사는 "이미 전 세계적으로 이용자의 의도를 분석하는 인공지능 챗봇이 일반화돼 있어 개발할 수 있음에도, 인공지능 요소가 전혀 없는 챗봇이 탄생해 본래 의도한 맞춤형 서비스를 달성할 수 없게 됐다"며 "결국 홍보용에 그치는 측면으로 해석된다"라고 평가했다.

실시간 랭킹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