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다섯 살 고준희 양이 세상을 떠난 전북 완주군 봉동읍의 한 아파트. 구속된 집주인 몰래 누군가 국화 한 송이와 과자 한 봉지, 그리고 메모를 두고 갔다.
한창 엄마 아빠 품 안에서 '과자 사달라'며 응석부릴 나이에 준희 양은 의지할 곳 없이 세상을 떠나갔다.
◇ 틔우지 못한 싹…가짜 부모가 밟았다
준희 양은 숨지기 한 달여 전인 지난해 3월 친부 고모(37) 씨에게 발목을 수차례 밟혔다. 혼자 걷지 못하고 기어 다닐 정도로 크게 다쳤다.
제때 밥을 먹지 않아 내연녀의 속을 썩인다는 이유만으로 고 씨는 무차별적인 폭행을 가했다.
부기가 종아리까지 올라오고 상처엔 피고름이 흘러내렸다. 다친 부위에서 시작된 대상포진도 온몸으로 퍼져나간 지 오래였지만 병원 한 번 가지 못했다.
아버지 고 씨는 "아동학대범으로 몰릴까봐 걱정돼서 병원에 데려가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들킬까봐 두려웠다는 게 적확한 표현일 테다.
준희 양은 갑상샘 기능저하증을 안고 6개월 미숙아로 태어났다. 내연녀 이모(36) 씨는 친모가 지난해 1월 29일 아이와 함께 맡긴 한 달 분량의 약을 준희 양이 세상을 떠난 뒤 그대로 쓰레기통에 버렸다.
친부 고 씨와 내연녀 이 씨의 관계는 시작부터 잘못됐다.
이들은 지난 2014년 준희 양이 다니던 어린이집에서 학부모 대 학부모로 처음 만났다.
우연은 얼마 가지 않아 화근이 됐다. 2016년 여름께 고 씨는 가정을 떠나 이 씨와 살림을 합쳤다.
얼마 동안 친모 손에 자라던 준희 양은 지난해 1월 25일부터 전북 완주 봉동에서 친부 고 씨와 내연녀 이씨, 이 씨의 친아들(6)과 함께 살게 됐다.
그러나 가족이란 연결고리는 준희 양에게 허락되지 않았다. 준희 양은 그렇게 석 달을 버티다 외롭게 세상을 떠났다.
급기야 남은 사람들은 실종사건을 만들어냈다.
고 씨는 완주군청에 준희 양이 살아있는 것처럼 허위로 신고해 양육비를 수령했고, 한 달에 6, 70만 원 씩 내연녀의 친모인 김모(62) 씨에게 준희 양 양육비 명목으로 용돈을 보냈다. '
김 씨는 준희 없는 준희 생일파티'를 위해 미역국을 끓여 이웃과 나누기도 했다.
사랑을 가장한 공모관계는 그러나 오래지 않아 산산조각 났다.
지난해 11월 18일 크게 싸운 고 씨와 이 씨는 20일가량의 냉전 끝에 지난해 12월 8일 관계를 완전히 끝내기로 합의했다.
둘 사이에 마지막 남은 준희 양 문제를 보다 깔끔하게 '청산'하기 위해 이들은 아중지구대를 찾아 "딸을 찾아내라"며 '기절쇼'를 벌이기도 했다.
고 씨와 이 씨는 한때 진실로 사랑했지만, 결국 단 한 줄의 진실도 완성하지 못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지난해 4월 25일 준희 양의 등을 발로 차고 밟은 것은 내가 아니라 저 사람이다"며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엇갈리는 진술에만 의존할 수 없었던 경찰은 준희 양의 부러진 갈비뼈 3개가 폭행에 의한 결과인 동시에 직접적인 사망 원인이라고 판단, 준희 양 시신을 부검중인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중간 자문을 구했다.
국과수는 '폭행으로 인해 부러진 뼈가 장기 등을 찔러 외부 충격에 의한 쇼크사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뜻을 경찰에 전해왔다.
준희 양이 숨지기 전 목이 마르다며 물을 찾았다는 고 씨의 진술에 대해서도 국과수는 '장기 손상 등에 의한 내출혈 때문에 피가 부족한 경우 갈증을 느끼는 사례가 있다'고 덧붙였다.
경찰은 미필적 고의나 부작위에 의한 살인 가능성도 열어두고 있다. 다만 우선 입증할 수 있는 아동학대치사·사체유기 혐의를 이들에게 적용하기로 최종 결론을 내렸다.
5살 아이의 인생과, 그 인생을 정리한 28일간의 경찰수사는 이렇게 끝을 맺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