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단 설립과정에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구체적인 지시가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지만 기존에 언론에 보도된 내용 외에 특별히 새로운 성과는 없었다. 재단 해산은 당분간 불투명할 전망이다.
◇ "절차상 위법 드러나지 않았다"
여가부는 법무감사담당관을 중심으로 한 태스크포스(TF)팀에서 지난 5개월간 화해·치유재단 설립과정과 운영실태 등을 점검한 결과를 27일 발표했다.
조사 결과 재단의 법인 설립과정에서 절차상 위법사항은 드러나지 않았다. 여가부가 재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서류를 살펴보니 날인이나 대표자 인적사항 등이 누락 없이 기재돼 있는 등 서류상 하자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여가부는 평균 20일쯤 걸리는 설립 허가가 이례적으로 닷새 만에 진행됐다는 점과 담당 공무원이 사무실 임대차 계약을 대리로 체결했다는 사실 정도만 지적했다. 다만 법률 위반이 있었는지는 추가 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 "받을 건 받아야죠" 녹취 확인하고도
재단 측의 피해자면담 '조사왜곡' 의혹에 대해서는 일부 부적절한 발언을 확인하고도 "현금 수령을 강요하는 내용은 확인할 수 없었다"고 일축했다.
여가부가 확보한 영상과 녹취록에 따르면 재단 관계자들은 할머니들에게 "받을 건 받아야죠. 돌아가시고 난 다음엔 해주지도 않아요"라며 현금 수령을 적극적으로 권유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이, 그 전에는 일본군이 관여했다는 것을 인정 안 했어요. 이번 합의에서는 일본군이 관여했다는 것도 인정하고…"라며 한·일합의를 긍정적으로 부각하기도 했다.
이번에 공개된 발언은 모두 앞서 CBS노컷뉴스 등 언론과 국회 국정감사 등을 통해 이미 알려졌던 내용이었다. (관련 기사 : 16. 9. 19. "손잡아주고 안아드리는게 면담"…위안부재단 조사왜곡 의혹)
이에 대해 여가부 측은 "할머니 뜻을 완전히 배제한 것이 아니고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를 수 있기 때문에 별다른 조처는 없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또 지급신청서 대필논란, 현금 지급방식 역시 법령상 하자가 없었다고 덧붙였다.
이밖에 재단 운영비와 인건비 전액이 전례 없이 국고보조금에서 지원된 사실에 대해서도 "부적정한 집행으로 판단되지 않는다"고 결론 내렸다. 공무원 파견이나 직원 채용 등 재단의 인력운용에 대해서도 특이사항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 박근혜 전 대통령 '지시사항' 거론
"절차상 위법이 없었다"면서도 이처럼 재단 설립이 졸속으로 이뤄진 배경에 대해 여가부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지시 때문이었다고 토로했다.
아울러 해당 문서에는 유네스코 기록문화유산 등재사업에 "인권진흥원(한국여성인권진흥원)이 관여 말고, 추진 과정에서 정부 색을 없앨 것"이라고 써진 부분도 나온 것으로 확인됐다. 인권진흥원에서 기록문화유산 등재사업을 추진해왔던 점은 앞서 한·일 합의 전부터 일본 정부가 문제 제기해온 사안이었다.
여가부는 "당시 청와대 여성가족비서관실에서 '유네스코 등재 정부 지원은 한일 합의 취지에 어긋난다'고 압박했다"면서 "그런 과정에서 아쉬움이 있다"고 해명했다.
◇ 맥 빠진 결과에 재단 해산 불투명
여가부 윤효식 기획조정실장은 "재단설립과 운영과정에서 피해자 할머니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지 못했고, 현금 지급사업 집행과정에서도 할머니들께 갈등과 심적인 고통을 드린 데 대해 깊이 사죄드린다"고 말했다.
그러나 후속조치 등에 있어 평창올림픽 유치를 앞두고 일본 정부의 눈치를 보는 게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서는 "향후 관계기관과 협의해 나갈 계획"이라는 다소 어정쩡한 입장을 남겼다.
결과 발표 이후 해산 수순을 밟을 것으로 전망됐던 재단 측은 당분간 그 명맥을 유지하게 됐다. 지난 7월 시작돼 8월 말쯤 발표하기로 계획됐던 결과 발표를 넉 달 뒤에나 받아본 시민사회단체는 '맥이 빠진다'는 반응이다.
당장 위안부 피해자를 지원하는 한국정신대문제 대책협의회(정대협) 등 시민사회단체는 이날 오후 정부서울청사 별관 앞에서 '재단 해산' 등을 주장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