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에 마련된 빈소를 찾은 수많은 국내외 팬들은, 길게 늘어선 행렬에도 불구하고 숙연하면서도 질서정연하게 조문에 임했다. 인근 카페에 삼삼오오 둘러앉아 고인을 추억하며 눈물짓는 팬들도 있었다.
최명기 청담하버드심리센터 연구소장(정신과 전문의)은 조문 현장에서 함께 고인을 애도하고 서로를 위로한 팬들에 대해 "(스타를 떠나보낸) 상처를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스스로 높였다"고 봤다.
다만 "평소 삶에 회의감을 느껴 온 이들의 경우 일상으로 돌아가 홀로 남았을 때 우울한 감정이 더 심해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사실 이른바 '베르테르 효과'(유명인 등의 극단적인 선택을 모방하려는 현상)는 다소 과장된 측면이 없지 않다. 평소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지 않던 사람이, 본인의 우상을 따라 극단적인 선택을 해야겠다고 마음먹는 경우는 드물다."
최명기 소장은 "그런데 평소 우울증 등으로 인해, 또는 삶이 너무 힘들어서 극단적인 선택에 대해 생각해 왔던 사람의 경우 스스로 '용기가 없어서 못했다'고 합리화할 여지는 있다"며 "즉, 일정 부분 우울감을 느끼던 사람에게는 그 강도가 더해질 가능성이 있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보통 극단적인 선택에 대한 시도는 연말에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 더욱이 겉으로 봤을 때 성공한, 행복해 보이는 사람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것을 보면서 '나도 이러면 어떨까'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번 사건을 겪으면서 그러한 시도가 통계적으로 많아질 수는 있겠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분명 줄어들 것이다."
그는 "인간의 극단적인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개인의 마음가짐도 있지만, 가장 큰 것은 환경"이라며 설명을 이어갔다.
"예전의 대가족 시대에 자살률이 낮았던 이유는 그 공동체 안에서 따뜻함을 느꼈기 때문이 아니라, 본의 아니게 보는 눈이 많다보니 극단적인 선택을 할 여지가 줄어든 측면이 강하다. 높은 성장세를 이어오던 국가에서 저성장 흐름이 지속되면 공동체가 와해되고 이혼율 등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소외되고 홀로 남겨진 노인·청소년의 극단적인 선택도 증가하는 것이다."
◇ '주변의 관심'이라는 신화에 발목 잡힌 대한민국
"주변에서 '이러한 자세를 갖자' '생각을 바꾸자'고 하는 것은 오히려 아픈 당사자에게 커다란 압박으로 작용해, 스스로를 더욱 나약한 사람으로 인지하도록 만든다"는 데 그 이유가 있다.
"극단적인 선택의 원인은 대부분 우울증이다. 흔히 '주변의 관심이 이러한 선택으로부터 사람을 구한다'는 말은 우리가 만들어낸 신화다. 주변의 관심은 사실 우울증 치료에 별 도움이 안 된다. '다 잘 될 거야'라는 식의 말은 실패를 계속 겪어 온 그들의 자존감을 낮추고 부담을 가중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기 쉽기 때문이다."
그는 "'햇볕을 자주 쬐고 운동도 해봐라' '내가 뭘 해 줄까' 등의 관심은 결국 잔소리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며 "우울증에 걸리면 누가 말을 거는 게 제일 싫다. 그렇기 때문에 관심보다는 '관찰'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주변에서 환자에게 감정 섞인 부정적인 말은 절대 하지 말아야 한다. 환자가 싫어하는 것을 하지 않고, 환자가 원할 때 원하는 형태로 도움을 주려는 자세가 중요하다. 극단적인 선택의 상당수는 술을 마시고 이뤄지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한 조절도 도움이 될 것이다."
결국 "주변에서 봤을 때, 극단적인 선택을 할 의사가 명확하다고 판단되면 입원치료를 해야 한다. 그것이 비극을 막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최 소장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울증 치료를 받기 꺼리는 이유를 보면 취업 등 사회 활동에 불이익이 있다는 인식의 영향이 크다"며 "치료를 받기 힘들도록 만드는 사회 인식, 장벽을 없애주는 정책적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해 보인다"고 강조했다.
"그 장벽을 없애주는 것은 제도적으로 가능하다. 당장에 오늘 대통령이 '우울증으로 치료를 받더라도 공무원 채용 과정에서 전혀 불이익이 없도록 하겠다' '우울증 치료 이력을 이유로 기업 취업에 불이익이 있었다면 책임지겠다'고 공언하는 것도 그 초석이 될 것이다."
그는 "인간은 스스로 '불행하다'는 생각이 커질수록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싶은 마음도 커진다"며 "결국 자살률을 낮추기 위해서는 절대 가난, 절대 불행에 빠질 수 있는 사회 환경을 국가가 나서서 줄여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자살률만을 낮출 목적으로 벌인 정책이 성공한 사례는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없다. 출산율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사실 뾰족한 수는 없어 보인다. 다만 다수의 국민, 소외된 이들이 보다 나은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돕는 현실적인 정책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