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 트라우마에 지친 시민들…한데 뭉쳤다

SNS 통해 자발적으로 모여 지진 원인 규명 및 안전대책 마련 촉구

지진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포항시민들의 모임인 '함께만드는포항'과 포항환경운동연합이 19일 포항시청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사진=문석준 기자)
규모 5.4의 강진이 발생한지 한 달이 지났지만 아직도 많은 포항시민들이 지진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지진의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시민들이 SNS 등을 통해 자발적으로 모여 지진 원인 규명과 안전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나서 결과가 주목된다.

포항시 북구의 한 아파트 단지에 사는 박소현(40)씨. 세 아이의 엄마이자 평범한 주부였던 박씨의 삶은 지난달 지진 이후 악몽으로 변했다.

지진으로 집에 있던 각종 가재도구가 쏟아져 집안이 엉망이 된 건 시작에 불과했다. 지진의 무서움을 느낀 아이들은 집에 머무는 것을 두려워해 차를 타고 마냥 밖을 떠돌았고, 남편이 근무 때문에 집에 돌아오지 못하는 날에는 남은 네 식구가 차에서 잤다.

지진대피소를 찾았지만 불안감은 가시지 않았고, 대피소 생활의 불편함에 결국 몇 일만에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게다가 지진 발생 한 달이 지났지만 막내딸은 아직 화장실에 혼자가지 못하고, 아이들 모두 엘리베이터 타기를 주저하고 있다.

박씨도 여진의 공포와 아이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중압감에 시달리다 약까지 먹고 있다.


박씨는 "지진대피소까지 가는 등 난민이 아닌 난민생활을 했지만 결국은 가장 안전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며 "문재인 대통령께서는 국민들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말씀하셨던 만큼 꼭 약속을 지켜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진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포항시민들의 모임인 '함께만드는포항'과 포항환경운동연합이 19일 포항시청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사진=문석준 기자)
지난달 발생한 지진 이후 박씨처럼 지진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시민들이 SNS를 통해 자발적으로 모여 정부의 안전대책 마련과 지진 발생원인 규명을 촉구하고 나섰다.

지진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포항시민들의 모임인 '함께만드는포항'과 포항환경운동연합은 19일 포항시청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지진과 관련한 정부와 포항시의 안전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이들은 "지진이 발생한지 한 달이 지났지만 당시의 공포와 불안감은 그대로 남아있다"며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 하루 빨리 대피 매뉴얼을 만들고, 안전한 대피소를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지진의 원인으로 지목받고 있는 지열발전소와 동해의 탄소포집저장시설을 당장 폐쇄하고, 활성단층지도 제작을 서둘러야 한다"고 호소했다.

주혜정(37.여)씨는 "그동안 지열발전소의 존재조차 모르고 살다 지진이 발생한 이후에야 포항시가 국비 확보에 혈안이 돼 시민들의 생명을 담보로 위험한 실험을 유치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면서 "정부와 포항시는 포항의 바다와 땅 곳곳을 들쑤시며 시민들을 마치 마루타처럼 대하고 있다. 당국은 시민들이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는 대책을 하루 빨리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포항지진범시민대책본부도 지난 16일 포항 기쁨의교회에서 지진 피해주민 500여명 등이 참석한 가운데 '포항지열발전소의 포항지진 연관 가능성에 대한 원인규명을 위한 창립총회'를 개최했다.

포항지진범시민대책본부 창립총회 모습(사진=범시민대책본부 제공)
이들은 앞으로 포항지열발전소 중단 및 폐쇄를 위한 법적 가처분 신청, 정부 조사단 구성의 투명성 요구, 유발지진이 의심되는 국책사업 유치과정 공개 및 중단 등에 나설 방침이다.

주요 사업 내용은 △11.15지진과 포항지열발전소의 연관 의혹에 대한 철저한 원인규명 △정부조사단에 시민대책본부가 추천하는 전문가 포함 △지진 피해에 대한 합리적인 재조사 및 보상 △항구적인 복구대책 마련 △포항지열발전소 사업 중단 및 관련 자료 공개 △지진이재민 즉시 이주대책 마련 △포항시는 포항지열발전소 및 이산화탄소포집시설(CCS) 등 포항시민에게 공개하지 않은 국책사업 유치과정 즉각 공개 및 유발지진이 의심되는 시설의 운영중단 및 폐쇄 등이다.

공동위원장으로 임명된 양승오 목사는 "무거운 책임감을 갖고 포항지열발전소와 이번 지진의 연관성 및 원인규명에 나서겠다"며 "시민들의 불안감을 해소하고 고통을 줄일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하겠다"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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