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셀프 연임' 문제와 '관치금융'의 흑역사

최종구 금융위원장 (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CEO(최고경영자)의 '셀프 연임' 문제가 금융권의 핫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달 29일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금융지주사 CEO의 '셀프 연임' 행태를 강하게 비판한 뒤부터다.

최종구 위원장은 "금융지주사는 특정 대주주가 없어 CEO가 본인의 연임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또 "만약 자기와 경쟁할 사람을 인사 조치해 자기 혼자 계속할 수밖에 없다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게 사실이라면 CEO로서 중대한 책무를 유기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흥식 금감원장도 여기에 가세해 '셀프 연임'에 대해 연일 비판공세를 이어가고 있다.

최 원장은 19일 기자간담회에서는 금융회사의 경영승계 절차를 점검한 결과를 공개했다.

"현직 CEO의 영향력 아래서 후보추천위원회 구성과 선임 절차가 진행되도록 설계된데다 후계자 육성 프로그램이 실질적으로 운영되지 않아 절차적 정당성이 결여됐다"는 것이다.

이들 금융감독 수장이 구체적으로 특정 금융회사를 지칭한 것은 아니지만 금융권에서는 KB금융지주나 하나금융지주를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KB금융지주는 최근 자체 경영승계 프로그램을 가동해 윤종규 회장이 연임에 성공했다. 하나금융지주는 내년 3월 회장선임을 앞두고, 김정태 회장의 3연임이 유력시 되고 있는 국면이다.

이 가운데 크게 부담을 느끼면서 전전긍긍하고 있는 쪽은 하나금융이다. 앞으로 본격적으로 회장 선임절차를 밟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나금융측은 금융당국이 직접 자신을 겨냥한 것으로 보고 있다.

특정 대주주가 없는 금융지주회사의 CEO가 자신의 연임을 위한 경영승계 구조를 만들어 놓고 그에 따라 셀프연임을 했거나 시도한다면 그것은 큰 문제다. 금융당국이 그에 대해 시정지시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다.

하지만 금융지주회사가 현재 운영중인 경영승계 프로그램은 법과 규정에 따라 마련된 것이고 금융당국이 승인한 것이다.

금융지주회사가 당국으로부터 승인받은 적법한 프로그램에 따라 후보추천위원회를 구성하고 CEO 선임절차를 진행했다면 그것을 문제삼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현재 금융당국의 간섭에 대해 ‘관치금융’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이유이다.


윤종남 하나금융지주 이사회 의장은 "현재 하나금융의 사외이사 구성이나 운영은 다른 어느 금융회사보다 균형 잡혀 있고 공정하게 돌아가고 있다고 판단한다"며 "간섭이 지나치면 과거 관치 금융이 되살아날 우려가 크다"고 비판했다.

또 "한국 금융회사 경쟁력이 아프리카 국가 수준으로 혹평받는 건 지나친 규제와 관치 때문"이라며 "위법 행위를 하면 혹독한 책임을 져야 하지만 금융당국이 감 놔라 배 놔라 하면 금융회사가 발전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관치금융'이라는 비판에 대해 금융당국은 억울해 할 수도 있다. 반발하는 하나금융에 대해서도 괘씸죄를 발동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대응할 일은 아니다.

과거 정부 아래서 금융당국은 금융회사의 경영 승계 과정에 개입하고 트집을 잡으면서 결국 자신들이 세운 인사를 CEO로 앉혀온 흑역사를 갖고 있다.

이번 금융당국의 셀프 연임 비판에 대해서도 그러한 전철을 밟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는 이유이다.

과거 정권의 적폐청산을 기치로 내건 새 정부가 그러한 전철을 밟을 수는 없다.

금융회사 CEO의 연임에 대해서는 보다 열린 마음이 필요하다. 현직 CEO가 연임을 시도한다고 해서 무조건 색안경을 쓰고 부정적으로 볼 일은 아닌 것이다.

능력있고 경영실적이 뛰어나면 연임의 길은 열려있어야 한다. 다만 그 과정이 법과 규정에 따라 공개적이고 투명하게 진행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금융회사가 법과 규정에 어긋나는 행위를 했을 때 시정조치를 내리고 제재를 가하는 것은 금융당국의 마땅한 책무다.

'셀프 연임'도 법과 규정에 어긋난 것이라면 제재를 가하는 것이 옳다. 하지만 그것이 금융당국이 승인한 규정에 따라 이뤄진 것이라면 금융당국도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이 때는 금융당국이 규정의 미비점을 보완한 뒤 그에따라 금융회사가 자율적으로 선임절차를 밟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이야말로 우리 금융이 관치의 흑역사에서 벗어나 선진금융으로 가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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