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난민 아동 '금전적' 지원 열심히 했더니 자격 박탈...단체 생존 위협"
이웃을 돌아볼 기회가 많은 연말은 보통 후원금이 몰리는 기간이지만, 난민인권센터(난센)는 설립 이래 최악의 연말을 보내고 있다. 어금니아빠 이영학 사건을 계기로 후원금 전반에 대한 인식이 나빠진 상태에서 최근에는 기부금영수증을 발급할 수 있는 '민간기부금단체' 자격을 잃었기 때문이다.
김성인 사무국장은 "회원 분들이 당연히 연말정산에서 기부금 공제를 기대하고 후원을 해주시는 것은 아니지만, 영향이 아예 없다고 할 수는 없다"며 "작은 단체 입장에서 지정기부금 단체 자격 여부는 '생존의 문제'"라고 하소연 했다. 후원자 김모(33) 씨는 "연말정산이 안 되면 아무래도 기부할 때 좀 꺼려지는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2012년부터는 국제아동구호개발 단체인 세이브더칠드런과 난민 아동에 대한 지원 사업을 협력하고 있다. 세이브더칠드런은 구호 대상 아동 중 난민 지위를 가진 아동에 대해, 더 전문성이 있는 난센이 접촉하기를 바랐고 난센 역시 이를 받아들였다.
◇대부분 난민 아동에게 전달되는 후원금...단체 간 협력 자체가 문제돼
실제 난민 아동들에 대한 지원은 난센이 맡고, 대신 규모가 크고 후원금이 많은 세이브더칠드런이 난센에 후원금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두 단체가 협력이 이뤄졌다. 이렇게 들어온 후원금은 15%의 행정비용을 제외하고 모두 어린이집과 학원 등 아동들에 대한 지원금으로 쓰인다.
기획재정부 시행규칙에 따르면 민간기부금단체는 개인 회비 및 후원금이 차지하는 비율이 단체 전체 수입의 50%를 넘어야 한다. 시민단체가 기업이나 권력기관 등 단체의 지원을 받을 경우 독립성과 자율성을 침해받을 수 있다는 판단 때문에 생긴 조항이다. 난센의 경우 정치적 색채가 없는 아동구호단체로부터 후원금을 받았음에도 시행규칙을 어기게 된 셈이다. 민간기부금단체 지정에서 탈락한 배경이다.
◇돈 계산만 하는 기재부 "법이 그렇다"..."단체 활동, 기초적 이해부터 부족"
난센 측은 당초 법 취지에 어긋나는 상황이 아니라며 기재부에 수 차례 문제제기를 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법이 이렇다"는 답변 뿐이었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난센이 향후 관련 프로그램을 수행하는 것은 물론, 분화하고 전문화하면서 연대 활동이 잦아지는 시민단체 전반의 분위기를 감안할 때 시행규칙 변경이 필요하다는 입장도 전했다.
시행규칙이 장관 개정 사항으로 기재부 내에서 할 수 있는 일이지만, 담당 부서는 진지한 검토 계획조차 없다. 기재부 관계자는 "난센이 세이브더칠드런의 사업을 대신 운영하는 식인데, 시행규칙 취지와 맞지 않는다"며 "해당 프로그램이 난센 사업에서 너무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고 말했다.
이같은 태도는 시민단체의 분화와 단체 간 연대활동이 확대되는 현실, 무엇보다 시민단체의 활동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데서 오는 것이라고 단체 활동가들은 입을 모은다. 기재부의 경우 특히 '돈 계산' 차원에서 사안을 바라보기 때문에 사업 비용에만 집중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 "정부가 해야 할 공익 활동 대신한 결과가 이 건가"
실제 이 단체의 경우 세이브더칠드런과 함께 하는 난민아동 지원사업 외에 비용이 많이 요구되는 프로그램 자체가 없다. 주로 상담과 캠페인을 하기 때문에 소수의 활동가 인건비가 나갈 뿐이고, 이에 비해 지원사업 비용 규모는 상대적으로 크다. 소수자 지원 단체 상당수가 이런 체제다.
'돈 계산' 이상의 비전을 가지고 시민단체의 활동 현실을 반영할 만한 정부 주체가 명확하지 않은 것도 문제다. 난센 측은 관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민신문고 등을 찾았지만 "담당은 기재부"라며 다시 기재부 앞으로 돌아와야 했다.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를 지내는 등 관련 현실에 대한 이해가 깊은 정춘숙 민주당 의원은 "자율성과 독립성을 보장하는 당초 시행규칙의 취지는 당연히 살려야 하지만 현실에서 시민단체 간 연대를 가로 막는 일이 발생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면서 "다른 비영리단체로부터 업무협약을 맺고 받는 비용 같은 부분에 대해 예외규정을 두면 되는 방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