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안타까운 '김영란법' 개정 무리수

국민권익위원회 박은정 위원장이 12일 오후 정부서울청사 브리핑룸에서 청탁금지법(김영란법) 시행 1년의 변화와 발전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한편 권익위는 지난 11일 전원위원회를 열어 농축수산물에 한해 선물비 상한액을 5만원에서 10만원으로 올리고, 경조사비는 10만원에서 5만원으로 내리는 내용의 청탁금지법 개정안을 가결 처리했다. (사진=황진환 기자)
결국 부정청탁금지법(일명 김영란법)이 개정되게 됐다.

국민권익위원회는 11일 전원위원회를 열어 김영란법 시행령 개정안을 의결했다.

개정안은 공직자 등에게 제공 가능한 음식물과 선물, 경조사비의 상한액으로 정한 이른바 '3·5·10' 규정을 '3·5·5+농축수산품10'으로 변경했다.

선물비 상한액은 농축수산품에 한해 현행 5만원에서 10만원으로 상향조정됐다.

경조사비는 10만원에서 5만원으로 낮춰졌고 화환조화의 경우는 현행대로 10만원까지 가능하도록 했다.

이 개정안은 2주전 전원위원회에 상정됐다가 과반의 찬성을 얻지 못해 부결됐던 안이다.

똑같은 안을 다시 올려 통과시킨 것인데, 이번에는 표결로 가지 않고 위원들의 합의로 의결했다.

전원위원회는 국회와 달라 부결된 안건을 회기 내에 재심의하는 것을 금지하는 일사부재의의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다.

그렇더라도 부결된 안건을 2주만에 그대로 다시 올려 통과시킨 것은 문제가 있다.

그것도 다른 곳이 아닌 정부기관이 한 것은 온당치 못하다.

특히 김영란법은 온 국민의 삶과 밀접히 연관돼 있는, 민감한 사안이다.

권익위가 이런 사안을, 사정이 바뀐 것이 없는데도 2주만에 다시 올려 밀어부친 것은 무리수임에 틀림없다.

이는 총리까지 나서 농축수산인과 화훼농가의 요구를 들어주도록 압력을 가한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이낙연 총리는 “늦어도 설 대목에는 농축수산인들이 실감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라며 이미 개정시한까지 못박아 놓은 상태였다.

그런만큼 권익위로서는 무리수라는 비난을 무릅쓰고서라도 강행할 수 밖에 없었겠지만 이로인해 권익위가 그동안 쌓아올린 권위는 상당히 실추되게 됐다.

청탁금지법이 3대 권익위원장의 이름을 따 일명 김영란법으로 불릴 정도로 권익위는 그동안 김영란법 제정과 시행으로 그 존재감을 확실히 드러냈고 권위도 인정받았다.

이 법으로 그동안 우리 사회에 만연된 잘못된 청탁문화를 바로 잡는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법 시행이후 공직사회가 더 청렴해지고 청탁이나 접대와 관련된 사회관행도 많이 변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의 90% 가까이가 이 법 시행에 찬성하는 이유이다.

그러나 이번 무리수로 그동안 권익위가 어렵게 쌓아올린 성과가 물거품이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시행 1년이 되는 현 시점에서 가액기준을 조정하는 것은 법 시행령상의 규정에 어긋나는 것이다.

시행령 45조에는 가액범위 조정과 관련해 “2018년 12월 31일까지 타당성을 검토하여 개선 등의 조치를 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농축수산업자 등이 매출 극감으로 극심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실을 도외시할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에 권익위 차원에서 마지못해 2주 전에 개정안을 올린 것은 이해가 간다.

하지만 그 개정안이 부결됐다면 좀더 시간을 두고 개정에 대한 공감대를 넓힐 필요성이 있었다고 본다.

이렇게 무리수를 둘 일은 아니었다.

권익위는 이번에 의결을 하면서 “청탁금지법의 안정적 정착 시까지는 가액의 추가적인 완화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부대의견을 달았다.

하지만 이러한 부대의견이 잘 지켜지리라고 기대하기는 힘들다.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가액기준 완화의 물꼬를 이미 텄기 때문이다.

정부로서는 김영란법 시행으로 마찬가지로 타격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다른 업계가 자신들의 요구를 들이밀 때 거절할 명분이 없다.

실제로 음식업계는 식사비의 가액기준도 높여달라는 자신들의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크게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소상공인엽합회는 “위축된 사회 분위기를 완화하기 위해서는 청탁금지법상 식사비 규정 등을 현실적으로 상향해야 한다”며 청탁금지법의 현실적인 재개정을 촉구했다.

농축수산인들도 이번 개정에 만족하지 않고 선물비의 상한선을 더 높여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일각에서 자칫하면 김영란법이 누더기가 되고 껍데기만 남을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이다.

앞으로 입법예고와 국무회의 등의 입법절차 과정에서 이 문제에 대한 정부의 분명한 입장과 의지 표명이 필요하다고 본다.

실시간 랭킹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