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보험도 안돼" 복지 사각지대 놓인 '미등록 이주아동'

국적 없어 의료보험 등 사회안전망 보호 못 받아

미등록 이주 아동들이 그린 그림들이 경기도의 한 외국인근로자센터에 걸려있다. (사진=정석호 기자)
외국인 불법체류자 부모 사이에게서 태어난 미등록 이주 아동들이 사회안전망의 보호를 받지 못한채 방치되고 있다.

속인주의를 택하고 있는 한국 정책상 이들은 출생증명서만 있을 뿐 주민등록이나 외국인등록이 안 돼 국적이 없기 때문이다.

◇ '다쳐도 보험 안 돼'…위험에 노출된 아이들

아일린(7·가명) 양은 지난달 심한 복통을 앓아 병원에서 맹장염 진단을 받았다.

문제는 200만원에 달하는 병원비였다. 필리핀 출신 부모가 불법체류자 신분이어서 국적이 없는 탓에 의료보험에 가입이 안 된 것.

외국인 근로자끼리 겨우 모금한 공동기금으로 일부 지불해 부담을 덜었지만 앞으로가 더욱 문제였다.

가장인 아일린의 아버지가 가구공장에서 일하던 중 눈을 다쳐 앞으로 가족의 생계가 막막해졌지만 도움을 요청할 데가 없는 상황이다.

아일린처럼 국적이 없는 미등록 이주 아동들은 사회 공공서비스에서 배제돼 의료보험에 가입할 수 없다.

이 때문에 미등록 이주 아동들은 가벼운 감기에만 걸려도 병원비가 수십만원을 훌쩍 넘기 일쑤여서 아프더라도 제때 치료조차 받기 어려운 실정이다.

대안으로 '한국이주민건강협회' 주관으로 이주민들끼리 한달에 6000원씩 걷어 일종의 '비공식 의료보험'을 마련하기도 했다.

하지만 보장금액의 한도가 100만원이어서 큰 사고 등이 발생할 경우에도 별다른 도움을 기대할 수 없고, 매달 정기적인 납부가 어려운 이주민도 많아 체계적인 운용도 어려워 사회안정망으로서의 역할을 기대하기 힘들다.

이런 이유로 불법체류자 부모들은 부담을 피하기 위해 일찌감치 영아들을 본국으로 보내기도 한다는 게 경기도 소재 A 외국인 근로자 센터장의 지적이다.

센터장 B 씨는 "불법체류자 부모가 어린 아이를 본국에 보내기 위해 브로커를 거치는데 이 과정에서 아이가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며 "이를 방치하는 한국 정부는 아이들을 사실상 유기하고 학대하고 있는 상황이나 다름없다"고 강조했다.

(사진=자료사진)
◇ 정부·지자체 지원금 없어 보육시설 이용도 못해

미등록 이주 아동들은 지역 내 아동보육시설을 이용하는 데에도 제약이 따른다.

보통 이주노동 부모들은 하루에 대부분을 공장에서 일하고, 부모 중 한 명은 토요일에도 격주로 출근하는 경우가 많다.

아이를 돌봐줄 시설이 절실하지만 인근 아동보육센터는 미등록 이주 아동을 받는 것을 꺼려하는 상황이다.

시설은 이용하는 아동 수만큼 지자체로부터 지원금을 받는데, 미등록 이주 아동의 경우 국적이 없어 이들 앞으로는 지원금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시설 입장에선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구조인 것.

A 외국인 근로자 센터에서 일하는 C 씨는 "인근에 위탁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미등록 아동들이 많이 있지만 시설의 도움을 못 받고 있다"라며 "몇몇 시설들이 눈감아 주는 방식으로 일부 수용하고 있지만 많이 부족한 게 현실"이라고 전했다.

이주노동희망센터를 비롯한 시민단체들에 따르면 국내 미등록 이주 아동은 2만 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 기업후원에 의존하는 보육시설…지자체 지원 없어

지자체에서 미등록 이주 아동을 지원하지 않는 상황에서 이들을 임시로나마 수용하는 시설들은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A 외국인 근로자 센터는 원래 양육시설이 아니지만 아이들을 길거리에 방치할 수가 없어 자체적으로 보육시설을 마련했다.

문제는 재원. 지자체로부터 지원금을 전혀 받지 못해 매달 후원금으로 메워야 했다.

또, 결식아동을 위한 지자체 지원금을 미등록 이주 아동을 위한 식비로 돌려써야 하는 형국이다.

24개월에서 3세 사이의 아이들을 재우고 키우는 교사 인건비부터 교실 난방비까지 한달에 3~400씩 꼬박꼬박 나가지만 들어오는 돈은 적다.

7명의 아이들로부터 매달 각각 15만원씩 받고 있지만 백여만원의 수입만으로 시설을 유지하기엔 역부족이다.

게다가 사회복지공동모금회로부터 9년째 이어온 기업후원이 내년부터는 끊길 것으로 보여 재원조달이 막막한 상황.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엄밀히 말하면 속인주의를 택하고 있는 한국에서 미등록 이주 아동들은 '한국 국민'이라고 보기 힘든 측면이 있다"면서도 "적어도 사회의 보호가 필요한 아동에 대해선 인도적 차원에서 국가적 지원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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