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관두면 누가 이 아이를…" 장애인 활동지원제의 그림자

#1 우리는 매일 아침 집 앞에서 만난다. 내 아이가 학교에 갈 시간이기 때문이다. 내 아이는 중증 장애인이다. 장애아를 돌보는 비용은 남편의 월급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일반적인 직장은 가질 수 없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활동보조인이다. 하지만 나는 내 아이의 활동보조인을 할 수 없다. 그래서 내 아이를 돌봐줄 다른 활동보조인을 찾았다. 중증장애인을 보조하려는 활동보조인은 드물었다. 그리고 마침내, 한 활동보조인을 만났다. 나처럼 장애아를 키우고 있는 엄마였다.

#2 '우리'는 매일 아침 집 앞에서 만난다. 차 안에는 이미 내 아이가 타고 있다. 휠체어를 들어서 옮기고, 흔들리지 않도록 고정한다. 내 아이를 위해 활동보조인 제도를 이용하려고 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중증 장애인을 맡으려는 보조인은 드물었다. 결국 나는 두 아이를 한꺼번에 돌보기로 결심했다. 물론 배로 힘이 든다. 그러나 그만둘 수 없다. 내가 그만두면 과연 어떤 활동 보조인이 선뜻 이 아이를 맡을지 걱정이 앞서는 것이다.
(실제 인터뷰를 각색한 것입니다.)


(사진=징검다리주간활동지원센터 제공)
◇ "직계가족도 장애인 활동보조인 등록 허용해달라" 국민청원

지난 11월 22일, 청와대 국민 청원 및 제안 게시판에 중증장애인 직계 가족에게 그 장애인의 활동보조인으로 활동 할 수 있게 해달라는 글이 올라왔다. 직계가족은 활동보조인 인력으로 활동할 수 없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는 직계가족이 활동보조인으로써 일을 하고 수당을 받는 것은 활동보조인의 본래 취지에 어긋난다는 입장을 유지해왔다. 장애인의 가족이 장애인 당사자를 돕지 않고 생활비 등으로 활동지원 급여를 이용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운 탓도 있다.

왜 중증장애인 가족들은 직계가족의 활동보조인 자격 허용을 바라는 것일까?

근본적인 원인은 중증장애인이 활동보조인 제도를 이용하기 쉽지 않은 데에 있다. 이에 대해 삼육대학교 정종화 교수(사회복지학)는 “발달장애인이나 정신장애인의 경우, 본인의 의지(자기 결정 능력)가 부족하기 때문에 결국 가족이 활동보조를 하고 있다” 고도 덧붙였다.

중증장애인이 활동보조인 제도를 이용하기 쉽지 않은 원인은 또 하나 있다. 활동보조인력이 중증 장애인을 기피하는 현상이다. 그러나 이 문제를 활동보조인 개인의 탓으로 돌리기는 이르다. 활동보조인이 중증 장애인을 선뜻 보조하기 어렵게 만드는 제도적인 결점이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 매일 일해도 월급이 80만원?…부실한 고용조건

가장 기본적인 문제는 급여다. 2017년 11월 기준 활동지원 등급 중 1등급에게 지원되는 기본 급여는 최대 1,091,000원이다. 이 중 수급자와 활동보조인력을 연결하는 중개기관이 25%선에서 수수료를 떼어간다.

또한 활동보조인이 개인 차량이 필요한 중증 장애인을 보조하는 경우, 차량은 활동보조인이 직접 준비하거나 수급자의 가족이 부담하는 수 밖에 없다. 결국 활동보조인이 실질적으로 받을 수 있는 급여는 매우 적다.

◇장애인 배려 없는 ‘단순한’ 급여 체계

현재 수급자의 활동지원등급은 '인정조사'를 통해 이뤄진다. 심신의 상태와 생활환경을 평가해 활동지원이 필요한 정도를 조사하는 것이다. 최종적으로 활동지원등급은 활동지원급여의 월 한도액을 결정한다.

그러나 등급별로 월 한도액에 차이가 있을지라도 활동지원인력이 시간 당 받는 금액에는 차이가 없다. 이는 중증 장애인을 보조하는 노동력과 비교적 증상이 경한 장애인을 보조하는 노동력의 가치가 같게 매겨진다는 의미다.

◇ 100명 중 2명만 남성…심각한 성별 불균형

활동보조인으로 활동 한지 2년이 되어가는 A씨는 활동보조인 교육 현장의 성별 비율을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같이 교육을 받는 100명 중 겨우 2명만이 남성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더불어민주당 권미혁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공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6년 기준 활동지원인력의 약 80%가 여성이다.

그러나 활동지원은 육체적인 노동이 필수적이다. 성인 장애인의 힘은 건장한 남성이 제압하기도 어렵다. 결국 활동지원인력은 상대적으로 보조하기 쉬운 장애인을 선호하게 된다.

◇ 가장 도움이 필요한 중증 장애인은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는 반쪽 제도

"(내가 돌보는)여자애는 조금 더 가볍기는 해도 드는 데는 (힘이) 많이 들어요. 근데 내 아들이 그런 아이(중증 장애인)이기 때문에 이 여자아이를 내가 그만둔다고 하면, 어떤 활동보조인 선생님이 얘를 선뜻 한다고 할까 이런 걱정이 먼저 생겨서, 그만둔다는 말을 못 하겠어요. 내 몸이 아파진다면 그만두겠지만. 그 이유 때문에.”

장애인 부모이자 활동보조인 A씨는 두 아이를 한꺼번에 돌본다. 힘들지만 그만 둘 수 없다. 쉽게 이동할 수 없는 중증 장애인들에게, 활동보조인의 존재가 얼마나 큰 지 경험을 통해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장애인 활동지원 제도는 혼자서 일상생활과 사회생활을 하기 어려운 중증 장애인에게 자립생활과 사회참여를 지원하고 그 가족의 부담을 줄여 장애인의 삶의 질을 증진 시키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러나 정작 가장 도움이 필요한 중증 장애인은 제대로 제도를 이용하지 못하고 있다.

A씨의 사례는 특이한 일이 아니다. 많은 활동보조인들이 열악한 조건을 감당하며 활동을 하고 있다. 개인의 선의와 희생에 기댄 채로 제도의 문제점을 외면할 수는 없다. 이제는 악순환을 끊어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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