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장의 주문, 법원장들 '권한놓기' 선회할까

재판 누구에게 맡길지 결정할 사무분담 두고 판사들 요구 수용될지 주목

김명수 대법원장(자료사진/이한형 기자)
김명수 대법원장이 8일 전국 법원장들에게 ‘사무분담’을 판사들과 협의해 결정해달라고 주문했지만, 일부 법원장이 앞서 반대 의견을 밝힌 적이 있어 입장 변화가 있을지 주목된다.

어떤 판사가 어떤 재판을 맡을지 등을 정하는 사무분담이 “법원장 권한”이라고 공개적인 입장을 내놨던 건 전국 최대 법원인 서울중앙지법의 강형주 법원장이다.

강 법원장은 지난 10월 국정감사 때 “법원장이 법관의 성향을 가려 요직에 쓴다는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는 판사회의에서 사무분담을 정하는 방안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정의당 노회찬 의원 질문을 받자 “사법행정 분야”라고 답했다.

“사법행정은 법원장의 권한이라는 이야기냐”는 질문이 이어지자 “그렇다”며 개인적 생각인지에 대해서는 “그렇게 생각하는 판사도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강 법원장은 “서울중앙지법은 판사가 너무 많아서 판사회의에서 사무분담을 할 수 없다”고도 현실적 측면을 설명했다.


법원의 재판부를 구성하고 영장 전담을 포함한 법관 배치 등을 지정하는 사무분담은 법원장의 권한이라고 법원재판사무 처리규칙은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판사들이 법원장의 눈치를 보게 되거나 관료화를 부추긴다는 지적은 끊이질 않았다.

지난 3월 국제인권법연구회가 학술대회에서 발표한 설문조사결과를 보면, 판사들은 ‘소속 법원장을 의식하느냐’는 질문에 91.8%가 ‘그렇다’고 답변하면서 67.4%가 ‘사무분담과 사건배당’(복수응답)을 이유로 꼽았다.

지난 4일 전국법관대표회의에서는 사무분담을 법원장이 독자적으로 결정하지 않고, 직급별 판사회의 등에서 선출한 3인 이상의 판사들로 구성된 사무분담위원회에서 심의를 거쳐 재판부의 신설‧폐지, 사건배당 비율을 결정하자는 요구도 나왔다.

법관회의 제도개선특위가 전국 법관 3000여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를 보면, 응답한 판사의 80%(944명)는 ‘법원장이 주도하는 현행 사무분담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했다.

법관회의에 법원행정처 인사 총괄 담당을 보내 의견을 경청했던 김 대법원장은 8일 전국 법원장회의에서 “일선 법원에서도 사무분담 등 중요한 사항에 관한 결정을 할 때는 법원구성원들과 투명한 절차를 통해 다양한 의견을 나눠달라”고 말했다.

“수평적인 패러다임에서는 일선에 있는 법원장들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 좋은 아이디어와 실천력을 기대한다”고도 인사말에서 당부했다.

이날 오후 법원장회의에서는 사무분담에 관한 일부 법원장들의 발언이 있었지만, 김 대법원장이 취임한 뒤 두 달 반 만에 전국 법원장들과 처음 대면하는 자리였고 현안이 산적한 만큼 구체적인 논의가 오간 것은 아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김 대법원장은 올해 초 춘천지법원장 때 사무분담 결정권을 판사들에게 위임한 일화가 알려져있다.

판사들을 불러모은 뒤 사무분담 안건을 상정하고선 ‘알아서 정하라’며 판사회의장을 나가버렸고, 토론을 거쳐 나온 결론을 존중했다고 한다.

판사회의가 설치된 법원에서는 사무분담 기본원칙을 심의하도록 한 판사회의 규칙이 있지만, 관행을 깬 파격 실험으로 평가됐다.

대법원장의 제왕적 권한이자 법관 통제 수단으로 지목됐던 법원장 임명 방식을 두고도 판사들은 호선제, 순번제 등에 대한 의견을 내놓고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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