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살은 NO, 8살은 OK' 아동 못 받는 지역아동센터

'미취학 아동과 고등학생 이용 불가' 규정이 돌봄 사각지대 만들어

지역아동센터에서 활동하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 (사진=한국지역아동센터연합회 제공)
#1. 전북의 한 지역에서 싱글대디로 딸 둘을 양육하고 있는 박모(49) 씨는 생계를 꾸리느라 아이를 돌볼 시간이 부족하다. 해당 지역의 어린이집과 유치원은 저녁까지 아이를 돌보지 않아 초등학교 3학년 딸은 인근의 지역아동센터에 보내고 있다. 문제는 손길이 더 필요한 7살 딸이 미취학이라는 이유로 '규정 상' 센터에 다닐 수 없다는 것이다.

박 씨는 "대단한 서비스를 바라는 것도 아니고, 내가 돌볼 수 있는 여건이 안 되니 단지 자매가 함께 있기를 바랄 뿐"이라며 "아동복지법은 18세 미만은 모두 아동이라고 정하고 있는데, 무슨 기준으로 규정을 이렇게 만든 것인지 이해가 안 된다"고 토로했다.

#2. 청각장애를 앓는 부모 밑에서 자란 A(17) 양은 중학생 때까지 센터에 다니다 고등학교 입학과 함께 퇴소했다 재입소를 희망했다. 집과 학원 모두 여건이 안돼 공부할 공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자체는 받아줄 수 없다고 판단했다. 중학교 때부터 '끊지 않고' 지역아동센터에 계속 다녔다면 이용할 수 있지만, 탈퇴했다 신규로 들어오는 고등학생은 받지 말라는 규정 때문이었다.

A양은 "어린 시절부터 쭉 다녔던 공간이고, 편하게 공부할 수 있어 좋은데 못 다닐 처지에 놓였을 때 굉장히 허무했다"고 말했다.

돌봄이 필요한 아동들을 위해 전국 각지에 지역아동센터가 설치돼 있지만, 복지부 규정은 미취학 아동과 고등학생을 센터 이용에서 배제하고 있다. 지역아동센터가 '초중등생의 방과 후 돌범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이기 때문이라는 게 복지부 측 설명이다.

◇ 꽉막힌 규정에 배제된 아동들


지원대상에 '방과후'라는 규정 때문에 미취학 아동은 지역아동센터에 다닐 수 없다. (자료=보건복지부 2017년 지역아동센터 지원사업 안내 캡처)
복지부의 '2017 지역아동센터 지원사업 안내'에 따르면, 지역아동센터를 이용할 수 있는 대상은 '지역사회 내 방과후 돌봄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18세 미만의 아동'으로 한정돼 있다.

박씨의 자녀처럼 아직 초등학교에 입학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센터를 이용할 수 없는 이유는, 여기 '방과후'라는 규정 때문이다. 복지부는 초등학생, 중학생 중심으로 대상자를 선정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고등학생의 경우 중학생 때부터 센터를 이용해 왔던 아동만 입소가 가능하기 때문에 A양처럼 재입소를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복지부 관계자는 "미취학 아동은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 연장 보육을 실시하는 것이 맞고, 고등학생은 사실상 센터에서 도움을 받을 여지가 크지 않아 제한하는 것"이라며 "미취학 아동과 초중등생의 욕구가 다른데, 지역아동센터가 모든 것을 감당하라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밝혔다.

예외규정으로 불가피하게 돌봄이 필요한 아동의 사례를 규정하고는 있지만, 지자체가 직권으로 판단하게 돼 있어 실제 돌봄이 필요한 아동이 배제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한국지역아동센터연합회의 옥경원 대표는 "지역마다 편차도 크고, 담당 공무원이 규정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게 되면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아이들을 어떻게 방치하나' 결국 편법·불법 돌봄

지역아동센터에서 활동하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 (사진=한국지역아동센터연합회 제공)
상황이 이렇다보니 지자체의 묵인 하에 아동을 몰래 돌봐주거나, 외부 후원을 활용해 규정을 우회하는 편법을 쓰는 센터들이 상당수다. 복지부의 단속에 걸릴까 노심초사 해야 하고, 후원 기간이 끝나면 아동을 지원할 방법이 없는 임시방편일 뿐이다. 사고라도 발생하면, 센터 차원에서 해당 아동을 보호해 줄 수단도 없다.

한 센터장은 "우리 지역엔 저녁 늦게까지 운영되는 돌봄 시설이 없다"며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을 방치할 수 없어 몰래 돌봐주고 있긴 하지만, 혹시라도 사고가 날까 걱정되고, 지도처분이 들어와 아이들을 내쫓으라고 할까봐 항상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아동복지법이 18세 미만을 아동으로 정하고 있고 지역아동센터의 취지 자체가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지만, 규정에 얽매인 행정은 보호가 필요한 아동의 권리를 침해하는 게 현실이다.

울산대 사회복지학과 오승환 교수는 "농촌과 같은 지역은 보육시설이 없는 곳도 존재한다"며 "예외적으로 보호가 필요한 아동에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융통성을 발휘해야 한다"고 말했다.

용인대 사회복지학과 임정기 교수는 "지역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사회서비스는 지역의 특성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한다"며 "규정의 경직성으로 인한 돌봄의 사각지대에 놓인 아동에 대한 추가지원을 전제로 유연성 있는 이용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