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연쇄성폭행 사건 "그놈을 반드시 잡아야했다"

[사건&사람 ②] 과학수사계 현흥익 팀장 "빈손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하루에도 수많은 사건사고가 쏟아진다. 현장엔 사건에 얽힌 자와 진실을 찾는 사람, 언론이 뒤섞인다. 제주CBS 노컷뉴스는 [사건&사람]을 통해 제주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사건사고와 이슈를 심층 취재하고 현장에 있는 사람들을 인터뷰해 소개한다.

[사건&사람]
① 헬멧이 밝힌 진실…제주 화가 변사 사건의 전말
② 과학수사계 현흥익 팀장 "빈손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계속)


(사진=자료사진)
"놈은 강했다. 피해자는 반항조차 못했고, 장소엔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 혼자 사는 여성만을 노린 치밀한 녀석. 제주에서 벌어진 연쇄 성폭행 사건의 범인을, 나는 반드시 잡아야 했다."

제주 연쇄 성폭행 사건은 지난 2009년 중순부터 시작됐다. 놈은 제주시내 주택에 홀로 사는 여성들을 성폭행하고 돈을 빼앗았다. 현장엔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

그해 7월과 12월 제주시 용담동과 도남동에서 홀로 살던 20대 여성들이 차례로 당했다. 수법은 동일했다. 놈은 집에 몰래 들어가 여자의 목을 힘껏 누른 뒤 저항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휴대폰으로 나체 사진을 찍어 협박했고, 범행이 끝나면 피해자에게 이불을 덮게 한 뒤 숫자를 세도록 해 도주했다. 유일한 단서는 놈이 범행을 저지를 때마다 '장갑을 끼고 있었다'는 피해자들의 증언이었다.

범행은 그렇게 1년여 동안 계속됐다. 6번의 동일 사건, 7명의 피해자가 발생했다. 심지어 한 집에 살던 20대 자매가 유린당하기도 했다.

경찰은 대대적인 수사에 나섰지만 놈의 뒤꽁무니도 잡을 수 없었다. CCTV도, 블랙박스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던 시기였다.


◇ 드디어 발견된 '놈의 흔적'

2010년 6월 25일.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날. 또 다시 놈이 나타났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장소는 20대 여성이 혼자 살던 제주시내 모 고등학교 인근 1층 주택이었다.

당시 제주동부경찰서 과학수사팀장으로 현장에 나갔던 현흥익 경위는 "어떻게든 놈을 잡아야 했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제주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계 현흥익 팀장 (사진=문준영 기자)
"놈은 홀로 있는 여성만을 상대로 범행을 저질렀다. 어떻게 여성 혼자 살고 있는 걸 알았을까 고민했다. 분명히 어딘가에서 피해자들을 지켜봤을 거라 생각했다. 외부에는 흔적이 있을 거라 직감했다."

당시 피해 여성은 집에 와서 샤워를 했다고 진술했다. 현 팀장은 화장실에 들어가 밖과 연결된 방범용 창문을 확인하고 곧바로 주택 밖으로 나갔다.

"밖에 나가보니 우산이 있었다. '놈의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하지만 비에 젖은 우산에서 지문은 나오지 않았다. 화장실과 연결된 방범용 창문을 확인했다. 어른 키보다 높았는데, 여기에 매달려 여성이 혼자 있는지를 파악했을 거라고 추정했다. 바로 그곳에서 놈의 지문이 나왔다. 그렇게 놈을 특정하고 검거했다."

범인은 과거 전과가 있는 30대 직장인 남성 A 씨로 드러났다.

"놈은 여성들은 단번에 제압했다. 완강히 저항하는 여성을 어떻게 제압했는지 직접 물어봤다. 범인은 교도소에서 범행 수법을 배웠다고 말했다. 한 번에 목을 세게 졸라 피해자가 아무런 반응도 할 수 없도록 만든 것이다. 도내 외곽지에 살던 A씨는 제주시내로 와서 범행을 저질렀다. 차량을 범행 장소 인근에 세운 뒤 곧바로 도망가도록 도주로를 확보했고, 신고를 못하도록 사진을 찍기도 했다."

A씨는 범행 때마다 장갑을 꼈다. 주로 어두운 방에서 범행을 저질러 얼굴을 특정할 수 없었고, 제주시 동지역을 옮겨가며 범행을 일삼았다. 지문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더 많은 피해자가 양산될 수 있었다. 과학수사가 잡은 범인이었다.

◇ "빈손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현흥익 경위(현 제주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계)는 자신의 스크랩북에 있는 '제주 연쇄 성폭행 사건' 신문기사를 가리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 1987년 경찰에 입문해 1998년 당시 감식요원으로 과학수사에 첫발을 내디딘 현 경위. 올해 20년째 과학수사만 담당하는 그의 좌우명은 '빈손으로 돌아오지 않는다'이다.

전문수사관 자격을 취득한 제주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계 현흥익 팀장 (사진=문준영 기자)
"옛날 과학수사요원은 누가 알아주지 않았다. 요즘은 과학 수사가 발전하고 많이 알려지니까 좋게 봐주는데, 처음에는 일반인과 경찰 내부에서도 편견들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장의사라는 비아냥과 기피부서라는 인식이 심했다. 집사람의 격려가 많은 힘이 됐다."

현 경위는 현장에서 아무것도 나오지 않을 때 가장 힘들다고 말했다. 그래서 항상 팀원들에게 강조한다.

"3일만 우리가 현장에서 고생하자. 그러면 형사·수사력 30일을 절약할 수 있다. 우리의 밑받침이 그만큼 중요하다. 범인들은 증거가 없으면 자백하지 않는다. 형사와 수사에서 범인을 검거할 수 있도록 필사적으로 도와주는 게 우리 업무다."

현 경위는 연쇄 성폭행 사건을 비롯해 제주 한경면 저지리 암매장 사건 등 굵직한 사건을 해결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아는 게 있어야 많이 보인다'는 그의 말처럼 꾸준한 공부와 노력이 뒤따랐기 때문에 이뤄낸 결과다.

실제로 그는 지난 2005년 경찰청 전문수사관으로 선발, 2010년에는 마스터 자격을 얻었다. 화재 예방 감식 전문 자격증도 취득하는 등 여전히 배움에 열심이다.

제주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계 현흥익 팀장 (사진=문준영 기자)
그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일하는 과수 요원들에 대한 격려를 당부했다.

"책에서 읽은 말인데요. 과수요원은 땅 속에 묻힌 건물의 기둥 같은 존재라는 말이 있어요. 꼭 필요하지만 보이지 않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오늘도, 지금도 현장에서 고생하고 있는 과수 요원들에게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빈 손으로 돌아오지 않는 과학수사요원'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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