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127회 최다참가자, 지금은 뭐할까?

<최다 참여자 이민주 씨>
- 80세 노모 "이런 세상 볼 수 있어 꿈같다"
- 그 겨울, 따뜻하고 행복했던 '광장'
- 일생에 잊을 수 없는 역사적인 경험

<차벽 꽃 스티커 이강훈 씨>
- 시민·경찰 사이 긴장감, 꽃으로 녹여
- 아이들 손에 꽃스티커, 제일 인상적
- 투표 독려 포스터 등 '소셜아트'

■ 방송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FM 98.1 (07:3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촛불집회 최다 참여자 이민주 씨, 차벽 꽃 스티커 이강훈 씨

이게 나라냐란 외침으로 자그마치 20주 동안 희망의 목소리를 밝혀왔던 1700만 개의 촛불들. 그 첫 촛불이 밝혀지던 날이 바로 내일 모레죠? 10월 29일입니다. 그래서 오늘 첫 순서는 벌써 1년이 된 그날의 기억들을 떠올려보려고 합니다. 사실 촛불의 주체는 평범한 시민들이었죠. 조직적인 모집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나오면 보상이 따르는 것도 아니었는데 시민들은 남녀노소 심지어 유모차까지 끌고 광장으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래서 촛불 1주년을 맞아 마련한 뉴스쇼의 인터뷰는 어떤 정치인도 어떤 유명인도 아니라 촛불의 주인. 시민 두 분을 만나보려고 합니다. 먼저 촛불집회 최다 참가자로 화제가 됐던 분이세요. 시민 이민주 씨 연결을 해 보죠. 이민주 씨, 안녕하세요.



◆ 이민주> 안녕하세요.

◇ 김현정> 얼마나 평범한 시민이신가 자기소개를 직접 해 주시죠.

2016년 10월 29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모이자! 분노하자! 내려와라 박근혜’ 촛불집회 참석자들이 촛불을 들고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외치고 있다. (사진=이한형 기자)
◆ 이민주> 저는 딸 둘 있고 남편 있는 직장인이에요.

◇ 김현정> 딸 둘 있는 평범한 직장인. 진짜 평범한 시민 맞으시네요.

◆ 이민주> 네.

◇ 김현정> 제가 최다 참가자라고 소개를 했는데 몇 번 참가하셨던 거죠?

◆ 이민주> 주변 분들이 세주셨어요, 127번이라고 그러십니다.

◇ 김현정> 그런데 촛불집회는 20주 동안 열렸는데 어떻게 127회를 가셨어요?

◆ 이민주> 매일매일 다녔거든요.

◇ 김현정> 그러니까 주말 촛불집회는 23회였지만 사실은 매일매일 사람 수는 적었지만 있었거든요. 퇴근하고 가신 거예요, 평일에?

◆ 이민주> 네.

◇ 김현정> 대단하십니다. 그게 첫 시작이 10월 29일이었는데 그 첫 번째 촛불집회도 가셨어요?

◆ 이민주> 그럼요. 그전부터 갔었어요, 바로 전에 평일에도 갔었어요.

◇ 김현정> 그 첫 번째 주말 촛불집회, 대대적인 촛불집회를 참여하면서 이게 그렇게 오래 갈 거라고 예상하셨습니까?

◆ 이민주> 그때는 아무런 생각도 없었어요. 그냥 막막해서 나갔었어요. 이게 돌아가는 상황이 말도 안 되게 돌아갔기 때문에 어디 울분을 표출할 수 없었고 정말 이게 나라냐 이런 생각에 너무 막막했어요. 나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 김현정> 떠올려보면 그 많은 기간 동안 여러 가지 기억나는 장면들 고비 고비가 있을 텐데 제일 기억나는 장면은 어떤 거세요?

◆ 이민주> 어린아이가 목에 팻말을 들고 여기 따뜻한 차 있어요라고 돌아다녔어요. 엄마는 뒤에서 커다란 주전자 가지고 종이컵이랑 같이 가지고 다니면서 앉아 있는 사람들 나눠주고. 몽글몽글한 게 너무너무 많죠. 그런 얘기하면 눈물 날 정도로.

◇ 김현정> 그러니까 팔러 다닌 게 아니라 그냥 나눠주러 다닌... 지난 겨울에 유독 춥지 않았습니까?

◆ 이민주> 엄청 추웠죠. 너무 추웠어요, 정말.

◇ 김현정> 내복 몇 개나 껴입고 가셨어요?

◆ 이민주> 내복... 외투를 2개씩 입고 다닐 때도 있었어요.

◇ 김현정> 코트도. 내복만으로는 안 돼서.

◆ 이민주> 그럼요.

◇ 김현정> 정말 추웠습니다. 그때 우리가 따뜻하게 견딜 수 있었던 건 서로의 체온 그리고 뭔가 똑같은 것을 희망한다는 그 열정, 열망. 이런 것들이 몸을 녹였던 것 같아요.

◆ 이민주> 맞아요.

◇ 김현정> 맞아요, 맞아요.

◆ 이민주> 정말 따뜻하고 행복했어요, 광장에 나가면.

◇ 김현정> 오히려. 희망이 보이니까. 이민주 씨는 제가 그 당시 연결했던 기억이 나는데 여든의 친정어머님도 모시고 나간다는 말씀을 하셨거든요. 어머님 건강하세요, 안녕하세요?

◆ 이민주> 네, 아주 건강하시고 요즘도 바삐 열심히 공부도 하시고.

◇ 김현정> 촛불이 1주년 됐다 이거 알고는 뭐라고 그러세요?

◆ 이민주> 꿈같다고 그러시죠.

◇ 김현정> 꿈같다?

◆ 이민주> 네.

◇ 김현정> 왜 그러실까요?

◆ 이민주> 앞으로 살 만한 세상이 되겠구나. 이런 세상도 내가 보고 내 일생을 마치겠구나라는 그런 생각을 가지고 계신 것 같아요.

촛불집회 127회 개근상 시민 이민주 씨(오른쪽, 사진=본인 제공)
◇ 김현정> 그래요. 촛불 전과 후 이민주 씨의 삶은 뭐가 달라졌습니까, 어떻습니까?

◆ 이민주> 많이 달라졌죠. 제 목소리도 굉장히 좀 좋아 보이지 않아요?

◇ 김현정> 목소리가 굉장히 윤기가 흐르세요, 지금.

◆ 이민주> 맞아요.

◇ 김현정> 왜 그런 거예요?

◆ 이민주> 그전에는 무기력하고 좀 시큰둥했었거든요. 지금은 국민의 힘으로 뭔가가 조금은 이렇게 조금씩 조금씩 변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아주 긍정적이고 활기찬 생활로 바뀌었어요. 제 일생에 이런 경험해서 너무너무 행복해요. 아이들하고 남편하고도 자주 이야기를 해요. 이런 걸 보는 것 자체가 역사상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아느냐고.

◇ 김현정> 아니, 그 후에 혹시 또 시민들의 목소리를 내야 하는 현장으로 가기도 하세요, 종종?

◆ 이민주> 이제는 가죠. 그 전에는 안 갔었어요.

◇ 김현정> 어디어디 가셨어요?

◆ 이민주> 요즘 KBS, MBC 언론노조.

◇ 김현정> 그 현장도?

◆ 이민주> 파업 현장에. 그거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을 했거든요. 정말 국민들이 언론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야 되겠다는 생각으로 친구들 데리고 다 제가 막 공범자들 보러 가자 그래서.

◇ 김현정> 이번에는 친구들을 포섭해서 다니시는군요.

◆ 이민주> 네.

◇ 김현정> 그래요. 이민주 씨. 사실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나랏일을 이렇게 적극적으로. 자신의 일도 있는데 나랏일을 적극적으로 감시하고 의사표현 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닌데 참 제가 여러 시민들을 대신해서 감사드리고요. 계속 그 열정 잃지 않고 나라가 잘 돌아가고 있는지 지켜봐주시기 바랍니다.

◆ 이민주> 네, 감사합니다.

◇ 김현정> 고맙습니다, 건강하세요.

◆ 이민주> 안녕히 계세요.

◇ 김현정> 지난 겨울 촛불집회 최다 참가자였습니다. 시민 이민주 씨 먼저 만나봤습니다. 이어서 촛불집회 떠올리면 아마 이 장면 기억나는 분들도 계실 거예요. 시민들을 막아서고 있는 거대한 차벽이 있었는데, 경찰 차벽. 이 차벽에 꽃 스티커를 붙이던. 차벽을 꽃벽으로 뒤덮는 퍼포먼스를 벌였던 미술가가 있었습니다. 기억하시죠? 저희 뉴스쇼와도 인터뷰를 했었는데 1년이 지난 지금 그분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요? 만나보죠. 차벽을 꽃벽으로의 이강훈 작가 연결이 돼 있습니다. 이강훈 작가님, 안녕하세요.

◆ 이강훈> 안녕하세요.

◇ 김현정>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어요?

◆ 이강훈> 별다른 일 없이 잘 지내고 있습니다.

◇ 김현정> 별다른 일 없이 잘 지내고 계세요. 그 평범한 일상이 가장 좋죠. 이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오신 건데 1년 지났답니다. 소감이 어떠세요?

2016년 11월19일 광화문 광장 일대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퇴진 요구 제4차 촛불집회에서 경찰의 차벽에 박근혜 대통령 퇴진과 평화를 상징하는 꽃 등의 수많은 스티커가 붙어있다. (사진=윤창원 기자)
◆ 이강훈> 벌써 1년이네요.

◇ 김현정> 벌써 1년.

◆ 이강훈> 그런데 뭐 많은 시민들이 광장에서 고생을 그렇게 하고 보람 있으니까 굉장히 좋죠.


◇ 김현정> 그래요. 특히 우리 작가님은 작년 이맘때였어요. 경찰 차벽에다가 꽃 스티커를 붙이는 퍼포먼스. 그러니까 이게 작가 혼자 막 붙인 게 아니라 시민들한테 그 스티커를 주면서 붙이십시오. 시민들이 다 달라붙어서 그 삭막한 차벽을 꽃벽으로 만드는 퍼포먼스를 한 것 때문에 굉장한 화제가 됐었고 저랑 인터뷰도 하셨어요, 작가님. 그랬어요. 그때는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꽃벽 퍼포먼스를 시작하셨던 거죠?

◆ 이강훈> 2차 집회 때부터 참석을 하면서 경찰이랑 시민들이 차벽을 사이에 두고 계속 조금 아슬아슬한 광경들이 자주 펼쳐졌었는데 그걸 보면서 뭔가 폭력적인 방향으로 갈 가능성도 있을 것 같다는 불안감이 생기면서 그걸 바꿀 수 있는 뭔가가 없을까 생각을 하다가 그런 아이디어를 처음 떠올렸죠.

◇ 김현정> 맞아요. 그때 그 사진 장면이 저는 아직도 생생해요. 아이들까지 차벽에다가 꽃을 붙이고 있는.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다툼이 일어나겠습니까? 어떻게 폭력이 벌어지겠습니까? 그 기조가 끝까지 간 거 아니에요.

◆ 이강훈> 네, 그렇죠. 그렇게 평화적으로 끝까지 갈 수 있었던 데 조금의 일조를 하지 않았나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 김현정> 그 퍼포먼스에 참여했던 많은 시민들 중에 혹시 작가의 눈에 가장 기억에 남는 분은 누구일까요?

◆ 이강훈> 어린아이들이 부모님 손에 이끌려서 차벽 앞으로 가서 직접 손에 든 스티커를 붙이는 장면들은 볼 때마다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그 아이들이 당장은 자기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중에 내가 그때 그 자리에서 이걸 했었다는 걸 알게 됐을 때 굉장히 그게 의미 있는 기억으로 남지 않을까 생각을 하고요. 그리고 나중에 조금씩 시간이 지나면서 시민들이 처음에는 굉장히 머뭇거리고 또 부정적으로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셨는데 나중에는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스티커를 받아들면 바로 차벽으로 가서 붙이고 하는 장면이 저는 그게 굉장히 보람 있었죠.

◇ 김현정> 뭉클뭉클 하셨겠는데요, 그럴 때는. 그렇죠?

◆ 이강훈> 그렇죠.

◇ 김현정> 아까 별일 없이 평화롭게 평범하게 지냅니다 그러셨는데 보니까 아주 평범하신 거 아니고 지금 꽃벽 퍼포먼스, 그 꽃벽 퍼포먼스가 계기가 돼서 영향을 받으셨다면서요.

◆ 이강훈> 물론이죠. 퍼블릭아트, 소셜아트.

◇ 김현정> 퍼블릭아트, 소셜아트. 어떤 거 하세요, 예를 들어서?

◆ 이강훈> 지난번에 대선 전에는 투표 독려 포스터를 만들어서 또 뿌렸어요. 최근에는 제주시의 아라동이라는 곳에서 거기 어린이들과 함께 낙서를 테마로 해서 작업을 했었어요.

◇ 김현정> 낙서는 왜요?

◆ 이강훈> 꽃벽이랑 비슷한 맥락인데요. 낙서라는 것도 사실 굉장히 당연하게 아이들이 할 수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어디 공공장소에서 낙서를 하는 것은 당연히 또.

◇ 김현정> 큰일 나죠, 그렇게 하면. 얼른 달려가서 말리죠.

◆ 이강훈> 그걸 직접 한번 해 볼 수 있게끔 하는 작업을 해 봤어요, 자유롭게. 처음에는 애들도 굉장히 머뭇머뭇했었는데 나중에는 굉장히 신나게 낙서를 했어요. 당분간 그런 작업들을 조금 더 고민해 보려고 하고 있습니다.

◇ 김현정> 조금 전에 만난 시민 이민주 씨, 평범한 시민 이민주 씨도 그렇고 이강훈 작가도 그렇고 이 촛불의 경험이 삶을 참 많이 바꿔놨다 이런 생각이 드네요. 이강훈 작가님 앞으로도 좋은 작업 많이 해 주시고요. 우리 사회가 더 아름다워지는 데 더 희망차지는 데 계속 일조해 주시기를 부탁드리겠습니다.

◆ 이강훈> 감사합니다.

◇ 김현정> 고맙습니다. 꽃벽 퍼포먼스를 벌였던 그 작가 이강훈 씨까지 만나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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