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3일 강한 어조로 공공기관 채용비리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과 민·형사상 책임까지 언급한 것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반칙을 끊어내야 한다는 절박한 당위성 때문이다.
하지만 문 대통령의 의도와 무관하게, 임기 보장을 명분으로 자리를 보전하고 있던 전 정부의 '낙하산' 공공기관장 물갈이라는 부수 효과도 얻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필요하면 전체 공공기관에 대한 전수조사를 해서라도 채용비리의 진상을 철저하게 규명해주길 바란다"며 "청탁자와 채용비리를 저지른 공공기관 임직원들에 대해서는 엄중한 민‧형사 책임과 민사상의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말했다.
확정되진 않았지만 이날 회의에서는 ▲채용비리 연루 임원 업무 배제 근거 규정 신설 ▲공공기관 임원 제재 사유에 '부정 채용지시' 등 추가 ▲기관비리 발생 시 기관장과 감사의 연대책임 근거 마련 ▲채용비리 연루 임직원에 지급된 성과급 환수 근거 신설 등도 보고된 상태다.
공공기관장을 명시적으로 겨냥하지는 않았지만 현재까지 적발된 다수의 채용비리가 공공기관장과 직‧간접적으로 연관이 됐다는 점에서 문 대통령의 이런 지시는 채용비리 엄단뿐 아니라 이미 벌어진 채용비리에 대한 공공기관장의 책임 추궁도 사실상 경고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런 이유로 기획재정부가 지난 16일부터 오는 30일까지 진행하는 공공기관 채용비리 전수조사가 공공기관장 물갈이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이후 지난 정권 때 임명된 공공기관장들에 대한 인위적인 물갈이에 대해서는 선을 그어왔다. 따라서 전임 정부의 낙하산 공공기관장들, 심지어 감사원 조사 등에서 채용비위가 적발됐음에도 불구하고 '조사의 부당성' 등을 주장하며 자리를 지켜온 공공기관장들이 적지 않았다.
감사원과 함께 올해 3월부터 산하기관에 대한 채용비리 전수조사를 진행하고 있는 산업통상자원부의 경우, 올해 상반기까지 조사를 완료한 산하기관 28곳 중 25곳에서 805명의 부정 채용자가 적발됐지만 채용비위 관련 옷을 벗은 공공기관장은 소수에 불과한 상황이다.
하지만 국민적 공분 속, 특히 대통령의 지시로 진행되는 이번 전수조사 결과 채용비리가 드러나게 된다면 사퇴 압박이 전방위적으로 이뤄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일련의 조치들이 공공기관장들의 줄 사퇴와 이에 따른 대규모 물갈이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에 무게가 실린다.
한 여권 핵심관계자는 "내부승진이나 전문성을 인정받아 인선된 공공기관장들 외에 전 정부에서 낙하산 인사로 임명된 공공기관장들이 '문재인 정부는 인위적 물갈이를 할 수 없다'며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은 눈치도 없고 염치도 없는 것"이라며 "일부 공공기관장들의 경우 채용비위가 적발됐음에도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데, 최근 공공기관 채용비리 사태 등을 계기로 이들에 대한 사퇴 압박이 더욱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청와대는 채용비리 척결조치를 '사정정국 조성'으로 확대해석하는 것은 경계하면서도, 이번 조사 결과 문제가 있는 공공기관에 대해서는 신속한 수사가 이어질 수 있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전수조사'라는 어감이 사정의 회오리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일련의 조치는) 사정과는 관계가 없다"며 "대통령의 지시로 기재부가 진행하는 공공기관 채용비리 실태조사가 확대되지도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 관계자는 다만 "(조사결과 채용비위 등이 적발 될 경우) '반부패관계기관협의회'라는 틀이 있기 때문에 그 안에서 공공기관 채용비리를 종합적으로 연계해서 다룰 것"이라며 조사결과 문제가 발생할 경우 수사기관 등에서 신속하게 관련 수사를 착수할 것임을 내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