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양주시 광사동의 한 건설사 사무실 앞.
인력사무소 사장과 직원 등 2명이 '일용직 근로자 인건비 떼먹지 마라, 어차피 하루살이 인생 날 죽여라'라는 현수막을 내걸고 두 달째 집회를 이어가고 있었다.
집회 초반에는 일용직 근로자들도 함께했다. 하지만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일용직 근로자들에게는 매일 집회에 나오기는 역부족이었다. 하나둘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빠지기 시작해 현재는 인력사무소만이 남게 됐다.
이들은 근로자 50여 명의 6~7월분 임금 1억 2천여만 원이 체불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이들의 임금은 하도급사로부터 불법 재하도급을 받은 목수 A 씨가 중간에 가로채 잠적했다는 것이다.
불법 재하도급으로 벌어진 일인데도 원청과 하도급사는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고 인력사무소 측은 주장했다.
인력사무소는 불법으로 재하도급을 준 혐의(건설산업기본법 위반)로 하도급사를 양주경찰서에 고발했다. A 씨에 대해서는 횡령 및 사기 혐의로 주거지 관할인 서울 강동경찰서에 고소했다.
하도급사는 피고발인 조사에 앞서 경찰에 "임금을 다 지급할 건데 서로 계산이 안 맞는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인력사무소는 추석 전날까지 집회를 이어갈 계획이다. 혹시나 자신을 비롯한 근로자들의 임금을 조금이라도 받아 명절이라도 제대로 보내게 해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실낱같은 희망 때문이다.
인력사무소 직원 김모(39) 씨는 "추석 전에 임금을 조금이라도 받아야지 명절이라도 보내지 않겠느냐"며 "고향에 가는 차비도 하고 부모님께 선물도 사주고 그래야 하는데 걱정"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목수인 엄모(43) 씨도 사정은 마찬가지.
열댓 명으로 꾸린 팀을 이끌고 일했던 엄 씨는 자신도 두 달 치 임금을 받지 못했지만, 팀장인 탓에 팀원들에게 대신 사과하며 독촉을 받고 있었다.
힘들게 꾸린 팀도 뿔뿔이 흩어졌다. 손발이 맞는 팀을 다시 짜려면 또 수개월이 걸린다.
이런 상황에서 엄 씨는 강원도 정선에 홀로 사는 80대 노모를 보러 갈 수 있을지 아직도 정하지 못했다.
엄 씨는 "여기저기서 돈을 빌려서 생활비를 쓰고 있는데 다른 곳에서 임금을 주면 계산을 해봐야 집에 가든지 안 가든지 결정이 날 것 같다"면서 "고향에 못 가면 노모가 대놓고 뭐라고 하진 않지만 분명 서운해하실 것"이라고 토로했다.
◇ 전국 21만명 임금 체불 9천억 원 신고…영세업체 심각
경기 북부지역에서는 최근 3년 간 임금 체불 신고가 매년 400억 원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의정부고용노동지청에 따르면 2014년 9천 100명의 임금 421억 원, 2015년 1만 300명의 임금 463억원, 지난해 9천 686명이 410억 원의 임금 체불 신고를 접수한 것으로 조사됐다.
올해도 지난 1월부터 8월까지 근로자 6천 891명이 254억 원의 임금을 받지 못했다고 노동청에 신고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 8월 전국 체불 임금 신고액은 8천 910억 원 상당으로, 피해 근로자는 21만 9천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 21만 4천여 명이 9천 471억 원의 임금 체불을 신고했다. 금액은 5.9% 줄었지만, 근로자 수는 2.1% 증가했다.
이 가운데 제조업 체불액은 3천 295억 원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건설업 1천 489억 원, 도소매·음식·숙박업 1천 252억 원, 금융보험·부동산·서비스업 950억 원, 운수창고·통신업 744억 원 순이다.
전국 체불액 현황을 보면 30인 미만의 사업장이 전체의 68.9%를 차지해 소규모 영세 사업장의 체불이 가장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의정부고용노동지청 관계자는 "임금 체불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노조를 통해서 사측에 한 목소리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면서도 "수시로 망하는 영세 사업장들이 많다 보니 임금 체불 신고가 큰 폭으로 떨어지지 않는 요인이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