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장 없는 체포와 고문, 취조로 만들어진 4·3수형인들. 이들에 대한 수사 조서와 기소장, 공판조서, 판결문 등은 존재하지 않는다.
유일하게 남아있는 기록은 지난 1991년 제주4·3 진상조사특별위원회 부위원장이던 추미애 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정부기록보존소에 있던 ‘군법회의 수형인명부’를 공개한 것이 전부다.
재심은 가능할까.
◇ "재심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4·3수형인 18명은 지난 1948년 12월~1949년 7월 고등군법회의에서 내란죄와 국방경비법을 위반했다는 죄목으로 징역 1년에서 무기징역 등을 선고받고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
이번 재심 사건을 맡은 법무법인 해마루 장완익 변호사는 "재심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말한다.
국방경비법이 정부 수립 이전인 1948년도 8월 시행됐다고 나오지만, 공포된 날짜가 없기 때문이다.
장 변호사는 "국방경비법이 공포되지 않은 건 법원도 인정하는 부분"이라며 "미군정 시기에 나왔던 법인데, 군정청 관보에도 전혀 게재돼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장 변호사는 "국방경비법이 법률로써 효력을 갖지 못한다면, 이 사건은 군법회의 근거법령도 없이 설치‧운영되었기 때문에 명백히 무효"라고 말했다.
행여 국방경비법이 적용된다 하더라도, 그에 따른 소정절차가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는 점도 문제다.
장 변호사는 "수형인들이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받지 못했고, 기소사실에 대한 문서도 통보받지 못했다"며 "국방경비법의 소정절차가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단심제로 정해진 군법회의에서 공정성의 핵심으로 볼 수 있는 예심조사 절차 역시 지켜지지 않았다.
4·3수형인들은 경찰서 등에 잡혀가 취조를 받았음에도 이들에 대한 조서는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고 있다. 기소장과 공판조서, 판결문 등도 없다.
군법회의가 위법한 재판을 넘어 재판자체가 아니라는, '재판부존재' 상태에서 이뤄진
이념이 만든 초사법적 처형이었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부분이다.
수형인들의 유일한 기록은 2530명의 이름과 지번, 죄목과 언도 일자 등이 담긴 수형인 명부가 전부다.
수형인들은 조사 과정에서 취조와 고문을 받으며 짧게는 13일, 길게는 2개월 이상 구금돼 재판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법관에 의한 영장발부 등 정당한 절차를 거쳤다는 사실은 전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장 변호사는 "이러한 행위가 구형법 특별공무원 직권남용과 특별공무원 폭행, 능학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구형법 특별공무원 직권남용은 재판과 검찰, 경찰 직무를 행하는 자나 이를 보조하는 자가 직권을 남용해 사람을 체포하거나 감금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와 함께 구형법 특별공무원 폭행과 능학 또한 재판과 검찰, 경찰 직무를 행하는 자나 이를 보조하는 자가 형사피고인 등에 대해 폭행과 능학 행위를 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장 변호사는 "만약 영장이 발부되었더라도, 군정 형사소송법에 따른 사법경찰관의 구속기간 상한인 20일을 초과한 나머지 기간 동안의 구속은 위법함이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변호인 측은 형사소송법 420조 제7호와 422조에 따라 이번 사건이 성명불상의 경찰 등 공무원들이 수형인들을 불법 감금 또는 폭행함으로써 직무상 범죄를 저질렀다는 점이 확정 판결을 대신할 정도로 증명되었음에도, 법률상 장애로 확정판결을 얻을 수 없는 때에 해당한다며 재심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장 변호사는 "이번 재심청구는 제주4·3사건 희생자들의 명예를 회복시키는 매우 중요한 과정"이라며 "다시 재판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하는 것만이 대한민국이 근본이념으로 삼고 있는 법치주의에 부합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장 변호사는 또 "현재 청구인들이 90세를 전후로 한 연로한 나이"라며 "재심결정이 이루어지더라도 검찰에서 불복할 가능성이 있고, 그 경우 청구인들이 재심을 받기 위해 몇 년의 긴 시간을 더 싸워야 할지 가늠할 수 없다"며 조속한 결정을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