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값 비상걸린 정부… 김영록 "올리자" vs 김동연 "안된다"

쌀 10만톤 추가격리 놓고 기재부와 농식품부 의견 충돌

(사진=자료사진)
쌀값을 올릴 것이냐 말 것이냐를 놓고 기획재정부와 농림축산식품부가 서로 다른 주장을 펼치면서 부처 간 불협화음을 내고 있다.

기재부는 쌀값을 인위적으로 올리면 소비자 물가에 부담이 된다며 반대하고 있고, 농식품부는 생산자 농민을 위해 대폭 올려야 한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급기야 김동연 경제부총리와 김영록 농식품부 장관의 힘겨루기 양상으로 치달으면서 정치적 쟁점으로 확산될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 농식품부, 쌀값 인상 추진…초과생산 물량 + 10만톤 시장격리 예산 요구

농식품부는 현재 80kg 한 가마에 13만2000원까지 떨어진 산지 쌀값을 최근 10년 평균 가격인 15만원 이상으로 끌어 올리겠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올해 생산되는 쌀 가운데 적정 소비량을 초과하는 물량은 그동안 해 왔던 것처럼 우선적으로 시장격리조치하고, 여기에 추가로 쌀을 시장 격리하겠다는 방침이다. 이른바 '시장격리+α'론을 펴고 있다.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올해도 벼 작황이 좋아서 쌀 생산량이 400만톤 안팎이 될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지난해 쌀생산량 420만톤 보다는 줄어든 양이지만, 국내 적정 소비량 375만톤에 비해선 여전히 과잉 생산된 규모다.

농식품부는 이에 따라, 초과 생산된 25만톤은 선제적으로 시장격리 조치하고 여기에 10만톤을 추가 격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쌀 1만톤을 시장격리할 경우 쌀 매입비용과 관리비용 등을 감안할 때 140억원 정도가 소요된다는 점에서 추가로 10만톤을 시장격리 한다면 1400억원의 예산이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농식품부는 이와 별도로, 내년에 벼 재배면적을 5만ha 감축하는 생산조정제를 도입해 쌀 생산량을 25만 톤 정도 줄이겠다는 복안이다. 벼 대신 밭작물로 전환하는 농민들에게 지급할 예산 1368억 원도 편성해 놓았다.

결국, 쌀값을 올리기 위해 생산조정제와 추가 시장격리 비용으로 2800억 원 정도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농식품부는 이처럼 예산을 투입해 쌀값을 올리면 변동직불금 지급액이 줄어들기 때문에 오히려 재정부담이 줄어든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쌀 변동직불금은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에 따라 우리나라가 지급할 수 있는 금액이 연간 1조4900억원으로 정해져 있다. 그런데 올해 쌀 변동직불금 지급액은 1조4977억원으로 77억원은 지급하지도 못했다.

쌀 변동직불금은 실제 수확기(10~12월) 산지 쌀값이 정부가 정한 80kg당 목표가격 18만8000원 보다 떨어질 경우 차액의 85%에서 1ha당 고정직불금을 제외한 나머지를 정부가 지원하는 제도다.

따라서, 쌀값이 1000원 오르면 국내 전체적으로 변동직불금 지금액은 380여 억원이 줄어든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쌀값을 지금보다 2만원 정도 올려서 15만원이 넘어가면 변동직불금 7000억원을 절감할 수 있다"며 "쌀 생산조정제와 추가 시장격리 비용으로 2800억원을 투입해서 7000억 원을 줄일 수 있다면 재정적으로 이득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 기재부, 쌀값 인상에 부정적…추가격리 "수용할 수 없다"

하지만 기재부는 정부가 예산을 투입해 인위적으로 쌀값을 올리는 것은 시장원리에도 맞지 않고 소비자들의 부담도 늘어난다며 반대하고 있다.

실제로 산지 쌀값이 오르면 소비자 가격도 20kg 한 포대에 4만원대에서 5만원대로 인상돼 가계 부담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기재부는 또, 내년에 쌀 생산조정제 예산으로 1368억원을 책정한 상황에서 추가로 시장격리 예산을 투입해 쌀값을 올릴 경우, 농민들이 과연 벼 대신 다른 작목으로 전환하겠냐며 부정적인 입장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쌀값을 올리기 위해) 시장격리를 하는 것은 단기적으로 농민에게 유리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쌀산업의) 구조적인 문제가 될 것이다"며 "쌀값을 올려 줄테니 계속해서 농사를 지으라는 얘기밖에 더 되느냐"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쌀 생산조정제와 추가 시장격리를 동시에 하겠다는 것은 언 발에 오줌을 누는 것과 같은 정책"이라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농식품부가 우선 당장 변동직불금이 절약될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생산조정제를 통해 내년에 25만톤, 내후년에 50만톤을 줄이면 쌀값은 시장 조정에 의해 자연스럽게 오르게 된다"며 "굳이 추가격리 예산을 들여 변동직불금을 줄이겠다는 발상도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농식품부 관계자는 "생산조정제는 내년부터 적용되는 것이고 우선 당장 올해 연말이 문제"라며 "농민들이 쌀을 투매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줄 필요가 있고, 그러기 위해선 정부 차원의 격리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추가 격리를 하지 않아서 쌀값이 지금보다도 만원 정도 더 떨어진다면 변동직불금이 1조8천억원까지 늘어날 수 있는데, 정부가 지급할 수 있는 한도가 1조4900억원이기 때문에 결국 농민들이 3000억원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 온다"며 "그러면 농민들이 가만히 있겠냐"고 반문했다.

이는 쌀값 조정 문제, 특히 추가 시장격리 방안은 결국 정무적인 판단을 통해 풀 수밖에 없다는 것을 지적한 것이다.

김동연 경제부총리와 김영록 농식품부 장관 (사진=자료사진)
◇ 기재부 '김동연 역할' vs 농식품부 '정치인 김영록 장관' 정무적 판단

사실 이번 쌀값 조정을 둘러싼 기재부와 농식품부의 의견 충돌은 김동연 경제부총리와 김영록 농식품부 장관이 정치적으로 힘겨루기를 하는 양상이다.

김 부총리는 경제부처 정책과 관련해 이번 기회에 자신의 위상을 확실하게 정립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재부 관계자는 "결국 쌀 추가격리 문제는 윗분들이 협의해서 결정할 사안"이라고 잘라 말했다.

이에 대해 농식품부 관계자는 "기재부 직원들도 공공연하게 김 부총리의 역할을 내세우고 있다"며 "심지어는 김영록 장관이 면담을 요청해도 일정을 잡아주지 않다가 빠른 시일안에 만나기로 겨우 약속을 잡았다"고 전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조만간에 쌀산업 대책회의가 열리는데 농식품부는 이낙연 총리가 주재해야 한다고 제안했으나 기재부가 부총리 주재 회의로 결정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김영록 장관도 결코 물러설 뜻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국회의원 출신의 김 장관은 내년 지방선거 또는 오는 2020년 총선에 출마할 뜻이 강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정치적으로 민감한 쌀과 관련해 자신의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기재부 관계자는 "(김영록) 장관이 쌀값을 15만원 만들겠다고 들고 나온 것"이라며 "단기간에 정치적으로 풀어나가려고 하는데 정부 정책과 맞지 않는 엇박자"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더불어민주당 박완주 의원은 쌀 추가격리 물량을 아예 25만톤까지 늘려서 쌀값을 더 많이 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의원은 "변동직불금 지급액 보다 추가 격리 비용이 더 적게 들어간다"며 "추석을 앞둔 지금이 쌀값을 회복할 수 있는 적기인 만큼 정부가 빠른 시일 내에 획기적인 대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정감사와 내년도 예산안 처리를 앞두고 정치권까지 나서면서 쌀값 조정을 위한 정부 대책이 정치쟁점화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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