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승장구하던 푸르덴셜 지점장은 왜 투신했을까

실적 평가 부당함 알리려 사장 면담 3번 요청, 번번이 묵살

특수고용직 보험설계사 노동성 인정하라고 결국 극단적 선택

지난 달 31일, 푸르덴셜생명 00지점장 양모(58) 씨는 회사 내부게시판에 마지막 글을 올렸다.

"오늘이 회사가 지정한 해촉(계약 해지) 마지막 날이네요. ...(중략) 37세의 나이에 입사해 59세가 됐으니 청춘을 온전히 푸르덴셜과 함께한 삶이었네요. 긴 세월이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참으로 빠른 세월을 살아온 것 같아 열심히 살았다는 방증이므로 저 자신에게도 위로를 해줘야 할 것 같습니다."

양 씨는 그러면서 "제가 지난번 제기한 두 가지, 1. (부당 조치로 해촉시킨) 당사자의 진정한 사과와 퇴진, 2. 00지점의 존속, 다 해결되지 않았기에 책임 규명은 계속 할 것입니다"라고 글을 마무리했다.

양 씨는 부당한 조치로 실적 평가에서 낮은 점수를 받아 해촉됐다며 회사에 시정을 요구해왔었다. 회사에 내용증명서를 보냈고, 회사 내부게시판에도 두 번이나 글을 써 문제를 알렸다.

특히 특수형태근로종사자(특수고용직)인 보험설계사의 법적 지위를 보장해 회사가 쉬운 해고를 하지 못하게 해야한다고 백방으로 알리는 중이었다.

사장에게도 연이어 면담을 요청했다. 그러나 한 번도 성사되지 않았다.

그로부터 5일 후, 양 씨는 다시 한 번 사장과 면담을 하겠다고 본사로 갔다. 양 씨는 고위 임원만 만났을 뿐, 사장과의 면담은 또 한 번 거절당했다.

양 씨는 이날 오후 1시 19분쯤 지인과 가족들에게 이름과 연락처 등이 적힌 쪽지 한 장을 사진으로 찍어 보낸 뒤 투신했다.

양 씨가 숨진 당일, 해당 총괄본부장은 00지점 지점장과 부지점장에 "동요하지 말고 각자의 일을 열심히 하라"는 내용의 문자를 보냈다. 다음 날에는 전략 발표자료를 빨리 제출하라고 닦달을 했다.

◇ 보험설계사로 출발해 지점장까지 승승장구, 그는 왜 극단적 선택을 했나

지난달 초 양씨는 00지점의 상반기 실적 평가에 크게 분노했다. 00지점의 평가가 객관적이지 않고 불공정하게 이뤄졌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푸르덴셜생명사의 각 지점 평가는 6개월 만에 한 번씩 이뤄진다. 6개월에 한 번씩 실적 평가를 한 뒤 실적이 낮으면 계약을 해지하는 식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보험사 영업사원은 원래도 실적 압박이 심한데, 이런 식으로 평가를 했다는 건 정말 최악의 상황"이라고 말했다.

각 지점 평가는 크게 ▲생산성 부분과 ▲리쿠르팅(채용) 부분으로 나뉜다. 지점 평가는 지점장의 해촉과 직결된다.

양 씨가 지점장을 맡고 있는 00지점의 생산 성과 결과는 회사 평균 이상의 실적을 달성했다. 그러나 문제는 리쿠르팅 부분의 점수였다. 신입 보험설계사를 뽑는 것도 지점장의 실적 평가 중 일부다.

그런데 00지점에서 신입 보험 설계사를 뽑아 본사에서 최종 면접을 올려 보내는 족족 다 떨어졌다. 00지점의 리쿠르팅 점수는 최하위권을 맴돌았다.

이 과정에서 양 씨는 "16년 동안 지점장을 해 왔는데 해당 본부장이 지점 평가를 무시하고, 3명의 후보자를 연달아 최종면접에서 탈락시킨 예를 본적이 없어 더욱 황당하다"며 "3명 중 1명이라도 5월이나 6월 입사가 결정됐다면 지점 평가는 문제가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본사 임원이 점수를 매긴 리쿠르팅 점수가 낮아 00지점은 합격기준70점 만점에 1.7점 모자른 점수를 받았다. 본사는 해촉을 통지했다.


이에 양 씨는 불공정하고 왜곡된 결과이므로 받아들일 수 없다며 회사에 내용 증명서를 요청했다. 이를 내부게시판에 올리며 문제를 지적하기도 했다. 사장 면담도 3번이나 신청했지만 연이어 묵살 당했다.

양 씨의 지인들은 양 씨가 지난 해에도 해당 고위 관계자에게 찍혀 해촉 당할 뻔 했는데 이번에 '당한 것'이라고 전했다. 의도적인 것이라는 주장이다.

양 씨는 본인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과거에도 이런 문제가 자행돼왔고, 앞으로도 똑같은 문제를 겪게 될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잘못을 지적하기로 결심했다. 같은 날 해촉당한 동료 A씨와 '퇴직금 반환 소송'을 제기하기로 했다.

회사 임원들 마음대로 계속해서 평가 기준과 시기 등을 바꿔 직원을 해고하는 상황을 두고 볼 수 없다는 의지였다.

특히 양 씨는 형식상 '계약직'인 개인사업자로서 '계약 해지'를 당했지만, 이 점이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실질적으로는 지점장으로서 회사 관리직 역할을 해왔고 고정급 성격의 수당을 받았기 때문에 본사 직원과 같은 '노동성'을 인정해달라고 요구했다.

보험사마다 다르지만, 대부분의 보험사는 본사 직원을 지점장으로 보내 보험설계사들을 관리한다. 그러나 푸르덴셜생명사의 경우 90년대 후반 지점장을 '개인사업자' 신분으로 바꿨다.

양 씨와 A씨는 변호사와 함께 이러한 내용을 골자로 소송을 준비하고 있었다. 지난 5일 이들은 자료를 최종 검토하기로 했다.

자료를 최종 검토하기로 한 그 날, 양씨는 다시 한 번 사장을 만나러 본사로 갔다. 사장과 임원실 등이 있는 21층까지 가서 고위 관계자는 만났지만 사장은 만나지 못했다. 양 씨는 21층에서 연결된 옥상으로 간 뒤 극단적 선택을 했다.

양 씨의 지인인 B 씨는 "양 씨가 자신이 겪은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노력했지만 번번이 가로막혔고, 이에 대한 억울함을 투신으로 밖에 알릴 수 없다고 생각해 극단적 선택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 푸르덴셜생명, 지점장 마저 '개인사업자(계약직)'로 만들어 해고 쉽게 하고 실적 압박

양 씨의 퇴직금 반환 소송을 담당하고 있는 김한나 변호사는 "외국계 회사가 우리나라로 들어와 직원으로 인정해야 할 사람들까지도 개인사업자로 만들어 해고를 너무 쉽게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4대 보험 등 직원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에 대해서도 고용자가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며 "특수노동자로서의 권리 보호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양 씨의 외침은 그가 투신하고 나서야 크게 울려 퍼졌다.

양 씨가 회사의 부당함을 알리는 글을 쓸 때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던 회사였다. 그러나 그의 죽음 이후 동료 지점장들은 향후 회사의 실적 평가 문제 등에 대해 논의하기로 했다.

한 보험설계사는 고인의 죽음을 애도하며 회사의 문제점을 공개적으로 지적했다. 이 보험설계사는 "언제부터 푸르덴셜에는 듣는 사람이 없으니 말하기도 어려워졌다"며 "내부 게시판에 글을 올리면 글을 내리라 전화가 오고, 댓글을 달면 댓글을 지우라고 하는 이상한 푸르덴셜이 우리의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이건 사람의 마음이 아니라 악마를 보았다고 해도 될 것 같은 느낌"이라고 덧붙였다.

문제가 일파만파 커지자, 커티스 장 푸르덴셜생명 대표는 직원들에게 사과문을 통해 "감사를 통해 이번 사고가 발생하게 된 경위에 대한 진상조사를 객관적이고 진실되게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진상 조사와는 별도로 해당 총괄본부장과 본부장이 도의적인 책임을 지고 스스로 모든 직책에서 물러나기로 해 대기발령 시켰다.

외국계인 푸르덴셜생명은 해외 본사에서도 감사가 나와 이 사태를 살펴보고 유족을 만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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