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 발전법의 취지를 훼손하고, 오히려 기사들의 부담이 더 늘고 있지만, 정부와 지자체에서 뾰족한 수를 찾지 못해 기사들의 한숨 소리만 커지고 있다.
'택시발전법이 시행되면 형편이 좀 나아질까.' 의정부에서 택시를 모는 기사 A(51)씨가 품었던 기대는 한순간에 무너졌다.
기사들에게 큰 부담이었던 각종 전가 비용이 없어지면 소득이 올라갈 것으로 기대했던 A씨는 지난달 말 회사에 공지된 공고문을 보고 할 말을 잃었다. 임단협 결과 9월 1일부터 사납금을 3만 5천원씩 올린다는 통보였다.
월 기본 급여도 함께 올랐지만, 사납금 인상 폭이 워낙 컸다. 계산기를 두드려 보니 형편이 나아지기는커녕 월 소득이 15∼17만원 줄었다.
3일 의정부시와 민주택시 의정부 공동대책위원회 등에 따르면 의정부시 15개 택시 업체의 위임을 받은 11개 업체 노사 측 공동 대표들은 9월 1일부터 사납금을 3만5천원 인상한다는 교섭안을 통과시켰다.
이러한 결정에 택시기사들은 분통을 터뜨렸다. A씨는 "택시발전법이 시행되며 사측이 부담할 비용을 고스란히 기사들에게 넘기는 것"이라며 "사측 친화적인 노조 간부들이 임단협으로 사납금을 올리는 것을 기사들은 전혀 모르고 있다가 뒤통수를 맞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기사들은 꼼짝없이 사납금 인상 결정을 따라야 한다. 형식상 노사가 사납금 인상에 합의했기 때문이다.
국토부에서도 올해 초 '운송비용 상승에 운송수입금(사납금)을 인상하는 것은 노사 간 협의 사안으로 법 위반이 아니다'며 유권해석을 내놓은 바 있다.
민주택시 의정부 공동대책위 관계자는 "의정부시 택시 업계 주류 노조의 특성과 관행을 고려해 봤을 때 형식상 노사 협의를 했을 뿐 사실상 사측이 원하는 바가 이뤄진 것"이라고 비판했다.
택시 발전법이 사납금 인상으로 이어져 오히려 기사들의 부담을 올릴 수 있다는 우려는 이미 올해 초 예고됐다.
법이 1년 먼저 시행된 서울시에서는 올해 3월 서울 택시 노사가 사납금을 하루 5천원씩 인상하는 내용의 임단협을 체결했다. 의정부의 사례처럼 기사들 처우를 개선하는 법 때문에 비용부담이 늘었다는 이유였다.
이에 대해 서울시가 택시발전법 취지에 맞지 않는다며 택시 노사에 강력 유감을 표명해 서울시와 택시 업계 간의 갈등이 빚어지기도 했다.
기사들의 부담이 커지자 민주택시 의정부 공동대책위는 지난달 의정부시에 업체들에 대한 관리 감독을 요청했다.
이에 대해 의정부시 관계자는 "4일부터 실시되는 도내 법인택시 업체 택시운송비용 전가 금지 이행 실태 점검 때 해당 사안에 대해 살필 예정"이라며 "하지만, 노사 간 협의 사항이기 때문에 지자체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지는 회의적이다"며 조심스러운 입장을 내놨다.
택시 운송비용 전가 금지는 택시회사가 신차 구입비, 유류비, 세차비, 사고 처리비 등을 택시기사에게 전가하지 못하도록 한다. 지난해 10월 서울을 비롯한 전국 7대 도시에서 시행됐고, 올해 10월부터 시 단위 도시에 확대 시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