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도 비가 많이 내렸던 올 여름, 지난 28일 또다시 폭우가 쏟아졌다.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공생염전'에서 30년을 천일염만 생산해온 이모(62)씨는 잦은 비때문에 '두 달 째 공치고 있다'며 깊은 한 숨을 내쉬었다. 7~8월은 한 해 중 소금 생산이 가장 많은 기간이기 때문이다.
올해 경기지역에 내린 비는 평균 1천167.3㎜로, 지난해 같은 기간 775.7㎜보다 50.5%인 391.6㎜가 더 내렸다.
염전은 최소 나흘 가량은 계속해서 비가 오지 않아야 생산이 가능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씨의 말처럼 지난 두 달은 말 그대로 '개점휴업' 상태였다.
한창 소금꽃이 만발해야 할 염전은 고인 빗물과 잡풀로 뒤덮였고, 손수레와 밀대를 끌며 구슬땀을 흘리고 있을 염부들은 찾아 볼 수 없었다.
이씨는 "1년 수입이 아무리 안 되도 3천만 원은 돼야 하는데 올해는 2천만 원을 조금 넘을 것 같다"며 "인건비도 안 나온다. 며칠에 한 번씩 작업해서 인건비나 나오겠냐"며 고통을 토로했다.
자연스럽게 창고는 '텅' 비었을 거라 생각하고, "창고 안을 한 번 보여달라"는 요청에 이씨는 연신 자물쇠만 만지작 거렸다.
몇 분여의 간곡한 설득 끝에 마침내 창고 문이 열렸다. 그런데, 텅 비었을 거라 예상했던 창고안은 하얀 소금들로 가득 차 있었다.
지난 4~6월 생산한 천일염 140여톤(20㎏들이 7천 포대 분)이 팔리지 않아 그대로 쌓여 있었다.
이씨는 "(재고염이) 많이 쌓여 있는데 이곳에만 10만 포대 분이 쌓여 있다"며 "작년 수매도 얼마 안 된다. 지난해 수매된 게 880포대 정도인데, 올해는 확정된 게 하나도 없다"며 고개를 떨궜다.
소금값은 매년 하락하는데다 판매처를 확보하지 못해 재고염 소진이 더디다는 것. 더욱이 전국 평균 천일염 가격(20㎏들이 1포대 분)은 2015년 5천~6천여 원, 2016년 4천여 원, 올해 2천~4천여 원으로 하락세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재고염을 모두 판매한다 해도 올해 7~8월 생산된 천일염이 사실상 전무해 창고를 새롭게 채울 소금이 없게 됐다.
천일염 생산은 통상 9월쯤 마감된다. 재고염을 모두 팔아도 농가들은 겨울 김장철과 이듬해 설까지 생계를 유지할 7~8월분 소금 생산량이 '제로'라는 얘기다.
천일염 생산농가들은 그야말로 '죽을 맛'이다.
국내 천일염은 전남 신안에서 최다인 85%, 영광 10%, 경기도 화성과 안산 등에서 나머지 5% 가량을 생산한다.
염전 농가는 염전끼리 가격 경쟁이 붙는 탓에 소금값이 떨어지고 있다며 하소연한다.
그는 "소금생산이 많다 보니 농가에서 경쟁을 한다. 가격을 신안과 같게 하면 판로도 제자리로 돌아갈텐데… 중구난방이다"며 "저 집에서 5천 원에 팔면, 여기서 4천500원에 팔고, 그러면 또 저기서 4천 원에 파니까… 가격이 떨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두 명의 이씨는 이구동성으로 "타산이 안 맞으니 어쩔 수 없이 하는데, 집어치우려 한다. 더 하다간 사람 죽겠다. 다 때려치울 사람들이다, 다…"라며 망연자실했다.
◇ 해수부 "소비처 확대에 주력"…수매계획은 '아직'
정부라고 뾰족한 수가 있는 건 아니다.
대한염업조합은 전국에서 과잉생산되고 있는 천일염은 결국 헐값에 매각될 수밖에 없다는 설명으로, 정부 차원의 지원대책 수립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조합 관계자는 "재고가 쌓이면 유통업체가 요구하는 가격에 어쩔 수 없이 헐값에라도 파는 상황이 온다"며 "평균가 보다 훨씬 떨어지는 가격에 소금을 팔아야 하니 생계 유지가 당연히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해양수산부는 중간 유통업체를 거치지 않고 생산자와 소비처를 직거래 할 수 있는 체계를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천일염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원산지표시제'도 추진할 계획이다.
그러나 천일염 생산농가들이 절실히 바라는 정부 차원의 수매계획은 아직 수립되지 않은 실정이다.
해수부 관계자는 "수매와 관련해 지난주에 첫 논의를 했다"며 "이번주에 조합과 생산자단체가 만나 회의를 한다고 했으니 그 회의 이후 다음주쯤 다시 날을 잡을까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