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CBS노컷뉴스 취재결과 문화재청이 미국 시애틀 박물관으로부터 환수했다며 다음 날부터 특별전시에 포함시킨 덕종어보(德宗御寶)는 모조품일 뿐만 아니라 일본인이 운영한 제작소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드러났다.
조선 9대 임금인 성종이 아버지 덕종을 온문의경왕으로 추존하면서 만든 '진짜' 덕종어보는 1924년 분실됐으며 이번에 전시되는 짝퉁 덕종어보는 친일파 이완용의 차남 이항구가 왕실 관련 사무를 담당하던 시기 만들어졌다.
◇ 가짜 덕종어보, 일본인 주도 '상업활동' 하던 제작소가 만든 모조품
재제작품, 즉 모조품은 당시 일본인이 운영주체였던 '조선미술품제작소'에서 만들었다.
대통령령에 근거해 정부의 행정적·재정적 출판 지원을 받는 한국민족대백과사전에 따르면, 이 제작소는 1908년에 전통수공업체제의 붕괴와 기계제 생산으로 인한 공예품의 질적 저하 현상 속에서 ‘조선의 전통적 공예미술의 진작’을 취지로 '한성미술품제작소'라는 이름으로 설립됐다.
이후 1911년 '이왕직미술품제작소'였다가 1922년부터는 '주식회사 조선미술품제작소'로 명칭과 함께 운영주체가 일본인으로 바뀌었다. 또 친일반민족행위자였던 김갑순 등이 조선미술품제작소에 주주로 참여했다.
한성미술품제작소 시기에는 어느 정도 운영상의 자율성을 유지하면서 이전까지의 왕실공예의 전통을 충실히 계승했다. 하지만 이왕직미술품제작소 시절에는 일본인이 운영에 개입하면서, 일본인의 취향을 의식한 중국 고동기 모양의 기형을 대량으로 제작하는 등 성격이 달라졌다.
특히 1922년부터는 제작품 양식이 일본화돼 제작물에 일본의 전통문양인 오동잎 문양이 나타나는 등 애초 설립 때와는 성격이 완전히 바뀌어 버렸다. 조선미술품제작소는 기념품, 트로피 등의 상품을 만드는 데 주력하는 등 일본인의 이국취향에 맞춰 전통 공예 발달을 왜곡했다.
실제로 일본강점기에 제작된 유물은 제작 주체 등의 문제 때문에 문화재적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고종실록과 순종실록 등이 이 시기 작성됐다는 이유로 학계에서 인정받지 못할 뿐 아니라 지정문화재로 등록되지 못하는 게 대표적이다.
그럼에도 당국은 가짜 덕종어보 논란과 관련해 "마음이 아프지만 이 것도 환수 받아온 우리 유물(김연수 국립고궁박물관장)"이라는 궤변을 펼치고 있다. 지정문화재 등록 원칙과도 배치되는 주장이다보니, 덕종어보 논란에 대한 책임을 피하기 위해 당국이 모조품에 무리하게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모조품을 조선왕실 '지정문화재'와 같은 급으로 전시
구진영 문화재제자리찾기 연구원은 "덕종어보를 재제작한 제작소는 1922년 일본인에 의해 조선미술품제작소가 된 곳이고, 그래서 당시 조선인 제작기술자들로부터 상당한 반감을 샀다"며 "그런 곳에서 만든 덕종어보의 가치를 인정하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