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9대 임금인 성종이 아버지 덕종을 온문의경왕(溫文懿敬王)으로 추존하면서 만든 도장인 덕종어보는 문화재청 국립고궁박물관이 19일부터 개최하는 '다시 찾은 조선 왕실의 어보' 특별전을 통해 대중에 공개될 예정이다.
앞서 문화재청은 지난 2015년 미국 시애틀 미술관과 1년 넘는 협의 끝에 반환을 성사시켰다며 '진품' 덕종어보를 돌려받았다고 청장 명의의 보도자료까지 내며 대대적으로 홍보한 바 있다.
그러나 18일 CBS노컷뉴스의 취재 결과 덕종어보는 일제강점기였던 1924년, 친일파 이완용의 차남 이항구가 왕실 관련 사무를 담당하던 시기 분실됐다. 미 박물관 측으로부터 돌려받은 덕종어보는 재제작품, 즉 모조품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 "외형조사만 해서" 모조품 확인은 늦게
문제는 문화재청이 덕종어보가 모조품이라는 사실을 알고서도 특별전시를 강행했다는 점이다. 모조품이라는 사실 자체도 뒤늦게 파악해 놓고, 올해 특별전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내놓은 것이다. 무능한 데다 무책임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문화재청과 국립고궁박물관 측 입장을 종합하면, 문화재청이 해당 어보가 모조품이라는 사실을 파악한 것은 지난 해 12월이다. 1924년 덕종어보의 분실 사건이 담긴 당시 신문기사를 뒤늦게 확인하고 성분분석에 나섰다는 것이다. 이마저도 '진품'이라고 대대적으로 홍보한 지 2년 가까이 지난 시점이다.
김연수 관장은 "반환 당시에는 외형조사만으로 진품이라고 판단했다가 이후 기록을 보고 성분분석을 통해 가품이라는 것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 모조품을 조선왕실 '지정문화재'와 같은 급으로 전시
문화재청은 지난 1월 박물관 측으로부터 관련 사실을 보고받은 뒤에도 8개월 동안 쉬쉬했다. 여기서 더 나가 고궁박물관은 특별전시회에 해당 어보를 포함시키기까지 했다. 전시 내용에 따르면,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모조품이자 문화재도 아닌 덕종어보는 문정왕후어보 등 지정문화재와 같은 급으로 전시될 예정이다.
고궁박물관은 이번 전시를 통해, 환수한 덕종어보가 재제작품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리려 했다는 다소 황당한 입장을 내놓았다. 심지어 해당 어보가 나름의 가치가 있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마음이 아프지만 이 것도 환수 받아온 우리 유물(김 관장)"이라는 것이다.
해당 어보는 모조품이라는 것 자체부터 문제지만, 일제강점기 당시 대표적인 친일파인 이완용의 차남 이항구가 왕실 예식과장으로 재직하며 주도해 만든 것이라는게 더 큰 문제다. 그럼에도 문화재청은 당시 순종이 분실된 덕종어보 재제작을 지시했다며 모조품 덕종어보가 조선왕실이 공식 인정한 어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왕실 사무 전반을 일제가 개입했던 당시 시대상과 이 시기 만들어진 각종 제작품을 우리 고유의 문화제로 인정하지 않는 학계 전반의 분위기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자의적인 해석일 뿐이라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