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기자·PD 267명, 제작거부 예고 "주저하지 않겠다"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본부장 성재호, 이하 새노조)의 기자·PD 267명이 14일 각각 성명을 내어 제작거부를 불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사진=김수정 기자)
지난해 국정농단 사태 당시 주요 적폐청산 대상으로 꼽힌 '언론', 특히 '공영방송'에 대한 정상화 목소리가 높아지는 가운데 KBS 기자·PD들도 '행동'에 나서겠다고 선언했다.

KBS 구성원 중 1700여 명이 속해 있는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본부장 성재호, 이하 새노조)의 기자·PD 267명이 14일 각각 성명을 내어 제작거부를 불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새노조 취재구역 기자 134명은 '더 이상 주저하지 않겠습니다'라는 성명에서 "(고대영 사장이) 버틴 힘은 두 가지였다. 줄서기에 동참한 자에게 하사하는 당근과 바른 말을 하는 사람에게 가하는 채찍. 흔히 사람이 아니라 동물을 다룰 때 쓰는 행위다. 그것이 통하던 야만의 시대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들은 "영원할 줄 알았던 채찍은 낡아 힘을 잃었다. 청와대 보도개입 침묵을 비판한 기자에게, 부당한 제작 지시를 거부한 기자들에게, 논란의 여지가 있는 취재의 경위를 물은 기자에게 내려진 징계가 모두 부당하다는 판결이 나왔다. 지난 9년 동안 채찍이 닳아 너덜너덜 해질 만큼 매질을 견뎌낸 수많은 기자들의 땀과 눈물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고 사장이 당근을 흔들어 냄새가 진동하지만 우리는 거부한다. 마이크를 잠시 내려놓고 행동에 나서겠다. 역사의 기록은 그 행위보다는 어떻게 남기느냐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라며 "굴종과 굴욕으로 점철된 지긋지긋한 역사를 단절하고 보도본부에 권위라는 것이 움트게 하겠다. 그럴 수 있어서가 아니라 그래야만 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더 이상 주저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교양·기획제작국 PD 133명은 'KBS 교양기제 PD들은 자유와 의지를 찾을 것이다'라는 성명에서 "10년 동안 교양기제 PD들은 성역에 갇힌 채 자유롭게 생각하고 말하지 못했다. 강한 의지로 끝까지 취재해도 성공을 장담하기 힘든 상황에서, 회사 안에서부터 시달리다 지치기 십상이었다"고 고백했다.

이들은 "'성역은 없다'는 간부들이 가장 교묘하게 의지를 꺾어왔다. 최소한의 책임감으로 적시에 해야 할 말을 하려하면, 정치적 색깔이 덧씌워지기 일쑤였다"며 "그 결과 지금 회사 안팎으로 누가 KBS 교양기제 PD를 믿고 존중하는가? 이제 KBS 시사 교양프로그램은 날 무딘 칼이다. 교양기제 구역은 자부심이 사라진 게토가 되었다"고 전했다.

이들은 "모든 것이 고대영 사장 때문이라고 탓할 수는 없다"면서도 "고대영 사장 퇴진이 자유와 의지를 회복하는 필요조건이다. 권력의 언론 장악 10년, 비정상 공영방송의 마지막 실체이기 때문"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이어, "스스로 싸워 얻지 않았다면, 언론인으로서의 자유와 권리는 신기루처럼 허망한 것임을 교양기제 PD들은 10년 동안 절감했다. 이제 우리의 손으로 공영방송을 바로 세울 것"이라며 "우리는 승리를 위해 노조와 함께 제작거부, 파업, 무엇이든 할 것"이라고 밝혔다.

◇ MBC 제작거부 확산, KBS도 합류할지 '주목'

직원을 등급별로 분류해 회유와 징계를 고안한 것으로 보이는 '블랙리스트' 문건이 나오고, 국 단위의 제작거부가 확산되는 탓에 현재 MBC에 높은 관심이 집중되고 있으나, KBS 역시 내부 투쟁이 진행되고 있다

지난 6월 전 직원을 대상으로 진행된 새노조의 설문조사의 응답자의 88%(2869명)가 고대영 사장의 퇴진에, 90%(2967명)가 이인호 이사장의 사퇴 혹은 KBS이사회의 해체에 동의했다.

새노조는 8주째 고대영 사장 사퇴를 촉구하는 출근길 피케팅을 벌이고 있다. 이번 기자·PD들의 성명은 제작거부 등 본격적인 행동에 나설 의지를 담은 만큼, 다른 직종·부서로도 확산될지 주목된다.

앞서 새노조 성재호 본부장은 지난 9일 열린 영화 '공범자들' 시사회에서 "조만간 저희도 집단적으로 뭔가 고민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MBC 제작거부 상황이 커지고 있는데 비슷한 시기 저희도 결심을 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빨리 이번 낙하산 사장을 쫓아내서 다시 국민의 품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전한 바 있다.

실시간 랭킹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