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에 사는 서모씨는 최근 경기도 고양시 마두역으로 가기 위해 부평역에서 KD운송그룹(경기대원운송그룹)이 운행하는 3000번 시외버스를 타려고 했지만 정류소가 어딘지 몰라 한참을 헤매야 했다. 아무리 찾아봐도 정류소 표지판에서 3000번 노선 버스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취재 결과, 인천시(인천종합터미널)~고양시~파주시(금촌역) 구간을 운행하는 3000번 노선 26개 정류소(편도기준) 중 정류소 노선도가 아예 없는 곳은 석바위 정류소, 갈산역 정류소, 임학 정류소 등 전체의 절반 가량을 차지했다.
KD운송그룹측은 파주시 문산시외버스터미널에서 부천종합터미널까지 운행하는 5000번 노선(26개 정류소)이나 의정부버스터미널에서 인천시 남구 석바위까지 운행하는 3700번(27개 정류소) 등 정류소가 많은 나머지 6개 시외버스 노선의 경우도 상황은 비슷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정확한 현황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 KD운송그룹, "정확한 실태조차 파악조차 못해"
직원 8천여명의 KD운송그룹은 경기고속과 대원고속 등 15개 계열사(모두 비상장)를 거느리고 있으며 총 4800여대의 버스로 고속버스 23개 노선, 시외버스 250개 노선, 시내버스 797개 노선을 운영하고 있다.
시외버스 노선은 대부분은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시외버스 터미널간을 운행하고 있고, 이중 7개노선은 정류소 숫자가 20여개로 시내버스에 버금갈 정도로 많다.
3000번과 3700번, 5000번은 지난 2015년 7월 S사로부터 인수한 노선으로 지난달 승차인원만 노선별로 2만 4천명에서 10만 9천명에 달했다. 3000번 노선은 하루 이용객만 3천명에 달했다.
이렇게 많은 시민들이 이용하고 있지만 버스 정류소 표지판조차 제대로 갖추지 않고 운행하는데는 지자체의 ‘나몰라라’ 행정이 한몫을 하고 있다.
회사측은 이들 노선이 지나가는 지자체들의 무관심으로 표지판 설치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밝혔다.
◇ 각 지자체, '단지 노선만 통과하는데…우리가 왜 표지판을 설치해?'
이들 지자체는 시외버스 노선만 통과만 할 뿐 허가권자도 아니고 주사무소가 있지도 않아 표지판 설치에 소극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이들 3개 노선의 경우 인허가는 경기도에서 받았고, 주사무소는 경기도 광주시에 있다.
3000번과 5000번은 인천시~고양시~파주시를 지나고 3700번은 인천시~부천시~고양시~의정부시를 지날 뿐 정작 주사무소가 있는 광주는 지나가지 않는다.
KD운송그룹 관계자는 "이들 지자체에 노선도를 부착해 달라고 해도 잘 안해준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주민들의 민원이 들어와 지난 2015년 가을~2016년 초 인천시에 노선도 설치를 요청했지만 무산된 적이 있다"고 밝혔다.
◇ 취재 시작되자 태도 바꿔…"시민 편의 위해 표지판 설치하겠다"
인천시는 취재가 시작되자 민원이 들어올 경우 표지판을 설치해 주겠다고 밝혔다. 인천시 버스정책과 관계자는 "그 동안에 시외버스에 대해서는 관리를 안하고 있었다"며 "앞으로는 시민들의 편의를 위해서 버스정류소 대기소(셸터·shelter)에 정차할 경우 노선도를 표기해 줄 방침이라"고 밝혔다.
셸터에 정차하지 않고 별도 장소에 서는 경우, 기둥에 버스노선 번호를 부착한 지주형 정류소(표지판)를 설치해야 하는데, 이 역시 지자체의 협조가 필요하다
이처럼 정류소 표지판 설치에 비용이 들 경우, 인천시는 업체가 부담해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업체측은 인천시에서 부담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어서 여전히 갈등 소지를 안고 있다.
시외버스 업체들이 정류소에 표지판을 설치하지 않고 운행을 해도 처벌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는 것도 배짱운행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이들 시외버스에는 또한 내부에도 '노선도'가 부착돼 있지 않아 승객들은 이중으로 불편을 겪고 있다.
이에 대해 KD운송그룹 관계자는 "노선도를 부착할 공간이 마땅치 않다”며 “노선 부착은 의무사항이 아니라"고 밝혔다.
시내버스처럼 많은 곳에 정차하는 시외버스에 대해서는 버스 내부에 노선도를 부착하도록 의무화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