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 당시 국정원이 2012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민간인들을 대규모로 동원해 인터넷 여론조작을 벌인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국정원 개혁발전위원회가 3일 공개한 내용은 가히 충격적이다.
원세훈 원장 시절이던 2009년부터 2012년까지 국정원은 '사이버 외곽팀' 또는 '알파팀'으로 불리는 '댓글 조직'을 비밀리에 운영했다.
조직의 운영 관리는 인터넷상에서 북한 공작에 대응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심리전단이 맡았다. 규모는 30여개 팀에 민간인 3천5백여명. 보수·친여 성향의 예비역 군인, 회사원, 주부, 학생, 자영업자들이 조직원으로 활동했다.
국정원은 이들의 인건비로 한 달에 3억 원을 지출했고, 대선이 치러진 2012년 한 해에만 30억 원의 예산을 쏟아 부었다.
'사이버 외곽팀'의 역할은 주요 포털과 트위터에 친정부 성향의 글을 잇달아 게재함으로써 국정지지 여론을 확대하는 것이었다.
동시에 정부를 비판하는 글에 대해서는 '종북(從北) 세력의 국정방해 책동'으로 규정하면서 반정부 여론을 제압하려 했다고 국정원 개혁위원회는 밝혔다.
이제야 비로소 '국정원 댓글 사건'의 성격이 명확해졌다. 박근혜 정권의 정통성 논란과 직결되는 '국정원의 불법 대선 개입 사건'으로 명명돼야 한다.
국정원은 청와대의 지시에 따라 여당의 선거승리를 위한 전략 보고서를 만들고, 야당 정치인에 대한 사찰 내용을 수시로 청와대에 보고했다.
박원순 시장이 서울시장에 당선됐던 2011년 10.26 재보선 당시 국정원이 청와대에 보고한 문건 내용을 보면 기가 막힌다. "야당 후보자와 지지자들을 대상으로만 검경지휘부에 신속하고 엄정한 수사를 독려했다"는 내용이 그것이다.
이밖에도 삭제됐다 복구된 원세훈 전 원장의 지시사항 녹취록에는 보수단체 결성과 지원, 언론보도 통제, 전교조 압박과 소속 교사 처벌 등이 포함돼 있었다.
국정원 적폐청산 태스크포스(TF) 활동을 통해 앞으로도 국정원의 추악한 민낯이 양파껍질처럼 계속 드러나겠지만 당장은 여론조작 사실과 관련한 검찰 수사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인터넷 댓글로 여론을 조작한 국정원의 '검은 손가락'은 열린 민주주의에 대한 부정이다.
이번에 드러난 국정원의 적폐는 빙산의 일각이다. 실제로 '국정원 댓글 사건'은 적폐청산 TF가 과거 국정원의 잘못된 정치개입 사건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선정한 13개 항목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국정원 적폐의 진상을 규명하고 관련자들에게 헌정 질서를 유린한 책임을 묻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보수 야당이 과거 정부에 대한 정치보복으로 규정하는 것은 본질 왜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