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는 지난 2일 '2017년 세법개정안'을 발표하면서 대기업 법인세와 초고소득자 소득세를 강화해 모두가 꺼리던 부자 고양이 목에 세금 방울 달기에 성공했다.
문제는 이번 세금 방울의 효과가 너무 작다는 점이다. 이번 세법 개정으로 인한 고소득자와 대기업의 세부담 귀착은 6조 2683억원에 달하는 반면 서민·중산층의 세부담 귀착은 8167억원이 줄어들어 연간 총 5조 5천억원의 세수 효과가 추정된다.
그런데 당장 정부가 지난달 19일 발표한 '100대 국정과제'에 필요한 재원만 178조원에 달한다.
일단 정부는 세출 절감으로 95조 4천억원을 아끼고, 세수 확대로 채울 나머지 82조 6천억원 가운데 60조원은 자연 세수증가분으로 충당되기 때문에 문제 없다는 입장이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금년 세수개편을 통해서, 또 지금까지의 세수 자연증가분까지를 감안할 때 세수측면에서 감당할 178조 부분은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며 "오히려 세출 구조조정을 우리가 얼마큼 잘해서 이것을 충당할까, 이것이 걱정"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자연 세수증가분에 기대기보다는 정부가 선도적으로 증세 논의를 펼쳐서 조세와 복지 구조의 틀 자체를 개선할 때라고 강조한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은 "OECD 평균 조세부담률은 25%대에 이르지만, 한국은 19% 수준으로 매우 부족하다"며 "5조 5천억원은 GDP 대비 0.3% 수준에 불과해 너무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또 향후 5년 간 문재인 정부의 증세 로드맵을 구상하고 실행해야 한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오 위원장은 "국민들의 문재인 정부에 대한 신뢰는 높은데, 정부가 국민을 향한 신뢰는 낮다"며 "국민들을 믿고 문 대통령이 친서민 복지정책을 국민에게 명확히 알리고, 적극적인 증세정책을 쓴다면 국민과의 조세대화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참여연대 정세은 조세재정개혁센터 소장은 "지난 2년 동안 자연 증가분이 많았고, 경기 상황상 무리한 증세는 삼가는 것도 일리가 있다"면서도 "결국 1, 2년 안에 정부가 증세 논의를 본격적으로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정 소장은 "여소야대 국면에서 야3당의 반대가 우려되는 가운데 최소한 증세 방향으로 돌리고, 국회에서 세법개정안을 통과시키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이 중요하다"며 "국민들의 지지를 쉽게 모을 수 있는 정치, 사법개혁에서 성과를 낸 뒤 그 지지 기반 위에 복지국가를 달성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이처럼 소극적인 증세에는 비단 세 부담이 늘어날 대기업 및 고소득계층의 반발 우려나 야당의 반대 입장 외에도 김 부총리의 증세 반대 입장이 어느 정도 반영된 것 아니냐는 지적도 가능하다.
김 부총리는 청문회 시기부터 명목세율을 직접 인상하기보다는 간접적으로 실효세율을 높여야 한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하지만 지난 20일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김부겸 행정자치부 장관과 추미애 여당 대표가 증세 논의를 공개적으로 거론하고, 다음날 문 대통령이 증세 기조를 뚜렷이 하면서 김 부총리도 허겁지겁 증세 준비에 나섰다.
급기야 지난 28일 세법개정안을 언론에 미리 설명하면서 "경제의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으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시장에 메시지를 주고 예측가능하게 하는 것이 중요한데, 지키지 못한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사과하기도 했다.
이러한 '경제사령탑' 김 부총리의 소극적인 증세 행보는 같은 날 발표된 '8.2 부동산 대책'과도 대조적이다.
'정권 실세'로 꼽히는 국토교통부 김현미 장관이 키를 쥐고 밀어붙인 부동산 대책에는 초유의 투기과열지구 지정은 물론,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세·중과세 카드까지 포함됐다.
증세 논란을 부르고도 '핀셋 증세'에 그친 세법개정안보다 오히려 고소득 다주택자들을 상대로 더 강력하게 세금 부담을 안기면서 김 부총리로서는 다시 한 번 체면을 구긴 꼴이 됐다.
이에 대해 오 위원장은 "김 부총리 등 관료들의 소극적인 증세 인식이 안타깝다"며 "다만 문재인 정부가 증세에 대한 장기 전략을 마련해 제시해야 관료 집단에 우왕좌왕 휘둘리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