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 장르를 탈피한 범죄 스릴러 드라마들이 두각을 나타내면서 이 같은 장르물 드라마들이 방송가에서 완전히 정착하는 모양새다. 영화만의 영역으로 취급되거나 실험적 시도로 여겨졌던 분위기는 찾아보기 어렵다.
장르물 마니아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탄 tvN 주말드라마 '비밀의 숲'은 줄곧 호평 세례 속에서 거침없는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종방을 남겨둔 현재 시청률은 5%(닐슨코리아 전국 기준)를 넘겼을 뿐이지만 '비밀의 숲'이 보여준 파급력과 화제성은 여느 드라마보다 막강하다.
'비밀의 숲'은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검사 황시목(조승우 분)이, 정의롭고 따뜻한 형사 한여진(배두나 분)과 함께 검찰 스폰서 살인사건과 그 이면에 숨겨진 진실을 파헤치는 추적극이다. 검찰 내부를 배경으로 한 만큼, 대본 또한 현실에 가까운 철저한 자료 조사를 바탕으로 쓰여졌다.
'리얼리티'를 강조하면서도 추적극 특유의 긴장감을 놓치지 않은 탄탄한 대본이 '비밀의 숲' 입소문의 원인이었다. 빈틈없는 전개와 각종 사회 문제들을 유연하게 다루는 통찰력에 집필을 맡은 이수연 작가를 두고 '입봉작인 것이 믿기지 않는다'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비밀의 숲' 신드롬의 가장 큰 이유는 이 드라마가 한국 드라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캐릭터나 연출 방식을 답습하지 않는다는데 있다. '비밀의 숲' 제작진들은 기존 한국 드라마에 녹아 있는 고정된 성역할이나 약자들을 공격하는 불편한 대사들에 대한 문제점을 정확히 직시하고, 이런 '전형성' 없이도 사랑받는 장르물을 만드는데 성공했다.
'조작'은 첫 방송부터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여러 분야 사건들을 떠올리게 했다. 비자금 의혹에 휩싸인 한 기업 회장의 의문사 이야기는 '성완종 리스트'를, 억울하게 약물 파문에 휘말린 주인공 박무영(남궁민 분)의 이야기는 수영선수 박태환의 도핑 스캔들을 연상시켰다.
'조작'에 가장 기대하는 부분은 과연 믿고 보는 배우 남궁민과 유준상이 적폐가 쌓인 언론 생태계를 어떻게 표현해 낼 것인가다. 기자 역을 얼마나 현실성 있게 그려낼 것인가도 관건이다.
지금까지 다양한 장르물에서 활약해왔던 엄지원은 이번에 다시 한 번 검사 권소라 역을 맡아 극에 풍성함을 더한다. 그가 대표적으로 활약하는 검찰 내부 세계 역시 여러 가지 이해 관계와 셈법이 얽힌 곳이다.
연출을 맡은 이정흠 PD는 앞선 제작발표회에서 '조작'의 기획의도를 "국민들이 청산하고 싶어 하는 2대 적폐세력이 제 기능을 했을 때 세상이 얼마나 상식적으로 돌아갈 수 있는지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이 PD의 기획의도처럼 앞으로 '조작'이 사회 부조리를 통쾌하게 밝혀내고 청산해 시청자들에게 얼마나 카타르시스를 줄 수 있을지 주목된다.
호불호는 갈리지만 tvN의 한국판 '크리미널 마인드' 또한 장르물 기대작에 이름을 올렸다.
미국판 '크리미널 마인드'가 워낙 탄탄한 이야기 전개와 연출로 13년 째 인기를 끌고 있기 때문에 한국판 '크리미널 마인드'에 대한 시청자들의 기대도 컸다.
'크리미널 마인드'에는 장르물 대표 배우 손현주가 주연으로 활약하고, 여기에 이준기, 문채원 등 탄탄하게 연기력을 다진 배우들도 함께한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기존 장르물의 화법을 탈피하지 못했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프로파일러'라는 독특한 소재를 잘 이용하지 못하고, 시청자들의 눈높이에 맞지 않는 컴퓨터 그래픽(CG)을 선보여 혹평을 받았다. 연쇄 살인 대상을 여성 캐릭터로 설정하고 자극적인 장면을 연출해 낸 것 또한 불편함을 자아냈다.
그러나 아직 반등의 기회는 남아 있다. 지금까지 '시그널', '비밀의 숲' 등 장르물로 호평 받아온 tvN인만큼, 시청자들 반응을 즉각 받아들여 부족한 부분을 메울 수 있는 여지 또한 있는 것이다. 가장 비극적인 결말은 원작과의 차별성을 꾀하지 못해 결국 방영 전 유명세가 전부인 상황이다. 이제 제작진들에게는 미국판 '크리미널 마인드'를 '한국판'으로 리메이크했을 때 가져올 수 있는 최대한의 효과를 어떻게 구체화시킬 것인지 커다란 과제가 뒤따르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