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기냐, 독배냐' 지도자 선동열, 부활의 갈림길에 서다

'화려한 부활 이룰까' 한국 야구 사상 첫 대표팀 전임 사령탑으로 선임된 선동열 감독은 이번이 지도자 인생의 중대한 전환점이 될 전망이다. 사진은 지난 3월 WBC를 앞두고 깊은 생각에 잠긴 모습.(자료사진=황진환 기자)
한국 야구 첫 국가대표 전임 사령탑에 선임된 선동열 감독(54). 한국야구위원회(KBO)는 24일 선 감독을 오는 2020년 도쿄올림픽까지 지휘봉을 맡기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프리미어12 등 국제대회에 맞춰 선임됐던 기존 대표팀 사령탑들과 달리 3년여 임기의 전임 감독이다. 선 감독은 오는 11월 일본 도쿄에서 열리는 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을 시작으로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 2019년 프리미어12, 2020년 도쿄올림픽까지 대표팀을 이끈다.

이번 전임 사령탑은 선 감독에게는 지도자로서 재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2014시즌 뒤 KIA를 떠난 선 감독은 그동안 야인으로 지내왔다. KIA 지휘봉을 놓게 된 과정에 잡음이 일었다. 당초 KIA는 선 감독과 2년 재계약을 발표했지만 팬들의 거센 반발에 직면했다.


결국 선 감독이 재계약 발표 일주일 만에 자진사퇴 의사를 밝혔고, 구단이 수용했다. 2012시즌부터 KIA를 맡은 선 감독은 구단 고위층의 신뢰를 받았지만 3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면서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했다. 선수 시절 해태(현 KIA)를 6번이나 정상에 올린 선 감독은 광주 출신 최고의 야구 스타로 군림했지만 지도자로서는 일단 외면을 당한 셈이었다.

더욱이 KIA는 선 감독이 떠난 이후 김기태 감독 체제 하에서 성공을 거두고 있다. 2015시즌부터 신구 조화를 기치로 내건 김 감독의 KIA는 지난해 와일드카드로 가을야구에 진출한 데 이어 올해는 정규리그 1위를 질주하고 있다. 노장에게는 다소 박했던 선 감독과는 달리 김 감독은 베테랑들을 품에 안으면서도 새 얼굴들을 발굴해 팀의 밸런스를 잡아 올해 승승장구하고 있다.

선동열 감독은 현역 시절 광주가 낳은 최고의 야구 스타로 각광을 받았지만 지도자로서 고향팀 KIA를 맡은 뒤 오히려 팬들에게 거센 비난을 받아 자진 사퇴해야 했던 아픔을 겪었다.(자료사진=KIA)
이런 상황에서 선 감독이 현장으로 복귀하는 것은 요원해보인 게 사실이었다. 선 감독의 지도자 생활 출발은 산뜻했다. 삼성 지휘봉을 잡은 2005년 역대 최초로 부임 첫 시즌 통합 우승을 이끌었고, 이듬해까지 2연패를 견인했다. 2010년에도 한국시리즈(KS)에 올랐지만 개인 사정으로 사퇴했다. 2009시즌 뒤 맺은 5년 재계약의에서 한 시즌이 흐른 뒤였다.

물론 선 감독은 2015 프리미어12와 지난 3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투수코치로 참여했다. WBC는 본선 진출에 실패했지만 프리미어12는 우승을 차지하면서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2006년 제1회 WBC에 이어 김인식 감독을 보필해 마운드 운용의 거의 전권을 받은 선 감독은 탁월한 투수 조련과 교체 타이밍으로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삼성에서 석연찮은 이유로 사퇴하고 KIA에서도 뒷맛이 씁쓸하게 물러난 선 감독이었다. 지도자로서 실력은 그동안 입증을 받았지만 강한 카리스마와 경기 외적인 부분에서 껄끄럽지 못한 부분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구단에서 영입하기에는 부담이 없지 않은 지도자로 꼽힌다는 얘기가 야구계에서 돌기도 했다.

이런 선 감독에게 국가대표 사령탑은 반등의 계기가 될 만하다. 당장 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에서 만 24세 이하 젊은 선수들을 잘 조련한다면 내년 아시안게임과 후년 WBC, 2020 도쿄올림픽까지 좋은 성적을 기대할 만하다. 일련의 국제대회를 통해 지도력을 다시 인정받는다면 상황에 따라 KBO 리그에서 러브콜이 쇄도할 수 있다.

지난 3월 WBC 서울라운드 이스라엘과 경기에서 선동열 당시 코치(오른쪽)가 6회초 교체 투수 차우찬에게 볼을 건네는 모습.(자료사진=황진환 기자)
특히 아시안게임 금메달과 WBC 4강, 올림픽 메달 등 국제대회 호성적을 일궈낸다면 그 파급력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다. 현역 KBO 사령탑에 못 미치는 대우에도 백의종군하면서 결실을 맺는다면 그동안의 다소 부정적인 이미지를 만회하기 충분하다. 더군다나 선 감독은 여전히 KBO 리그 최고의 투수로 지명도는 여전한 만큼 매력적인 지도자다.

그러나 만에 하나 선 감독이 맡은 국제대회에서 성적이 기대한 만큼 나오지 못한다면 KBO 리그 복귀도 물 건너갈 수 있다. 이른바 '독이 든 성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인식 전 WBC 감독은 잇딴 국제대회 선전으로 '국민 감독'으로 칭송받았지만 지난 3월 WBC 본선 실패로 아쉽게 지도자 생활을 마무리했다. 일각에서는 '김 감독의 노욕'이라는 과격한 표현까지 나왔다. 2003년 삿포로 아시아선수권과 2006 도하아시안게임에서 잇따라 대표팀에서 부진했던 김재박 감독이 2009년 LG를 끝으로 현장에 복귀하지 못하는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

이런 까닭에 이번 대표팀 전임 사령탑은 선 감독의 지도자 인생에 중대한 기로의 의미를 지닌다. 선수로서 한 시대를 풍미했고, 지도자로서도 성공가도를 달리다 잠시 주춤했던 선 감독. 과연 한국 야구 사상 첫 대표팀 전임 사령탑이 선 감독의 지도자 커리어를 다시 화려하게 빛낼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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