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KBS에서 방송한 '푸른 눈의 목격자'라는 다큐멘터리 속에는 1980년 5월 광주에서 벌어진 학살을 가감없이 담아낸 장면이 나열된다. 총상을 입어 거리에 쓰러진 시민들, 병원에서 오열하는 유가족들, 전두환 정권의 야만성을 비판하는 청년들. 짙은 잔상을 남기고 스쳐 지나가는 그 필름은 당시 누구도 알지 못했던 광주의 진실이었다.
영화 '택시운전사'는 바로 이 목격자였던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와 그와 모든 이동을 함께 한 택시운전사 김사복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의 비극을 다룬 영화로 우리가 가장 먼저 떠올리는 작품은 아마도 '화려한 휴가'일 것이다. '화려한 휴가'의 서사는 광주 시민과 그들을 진압한 계엄군의 시선으로 전개된다. 자연스럽게 관객은 광주 시민이 '직접' 겪은 비극적 감정을 내면화하게 된다.
이와 다르게 '택시운전사'는 5.18 광주 민주화 운동과 한 발자국 떨어져 이를 관찰자 위치에서 지켜보는 영화다. 시위라면 지긋지긋한 택시운전사 김만섭(송강호 분)은 처음 광주 시민들이 이야기하는 '잔혹한 사실'을 '괴담'으로 치부해 버린다. 그를 각성하게 하는 촉매제는 광주의 실태를 취재하기 위해 몰래 잠입한 위르겐 힌츠페터(토마스 크레취만 분)다.
광주 도청을 비롯해 그의 모든 취재현장에서 김만섭은 믿기지 않는 국가의 학살을 마주한다. 목숨을 부지하기도 어려운 '전쟁통' 속에서 자신의 가족을 지키기 위해 나선 시민들은 뉴스를 통해 '폭도'로 둔갑당한다. 그가 믿고 있던 국가에 대한 모든 상식이 뒤집히는 순간이다. '고지전' 등 영화에서 실감나는 전투 장면을 재현했던 장훈 감독은 이번에 계엄군에 의한 시민 살상의 순간을 느린 호흡으로 담아내 더욱 그 질감을 뚜렷하게 만들었다.
금지된 필름을 소지한 외국인 손님과 함께 이미 계엄군이 폐쇄한 광주를 빠져 나가기란 쉽지 않다. 사복 경찰들은 광주에 기자가 잠입했다는 것을 알고 그를 쫓기 시작했다. 우리는 이미 그 결과를 알고 있다. 위르겐 힌츠페터가 출국에 성공해 일본으로 가서 이 영상을 뉴스로 보도한다는 것을. 그럼에도 영화는 그 긴장감을 늦추지 않는다.
위기의 순간에서 택시 기사들이 벌이는 자동차 추격신은 다소 뜬금없을지언정 진실에 목마른 광주 시민들의 처절한 마음이 느껴진다. 실제 위르겐 힌츠페터의 증언에 따라 재현된 예상 외의 지원군은 우리에게 '시대'가 만들어낸 또 다른 희생자들의 일면을 떠오르게 한다.
영화는 광주의 비극을 '비극' 그 자체만으로 조명하지 않는다. 비극의 현장을 마주한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어떤 선택을 하고, 그에 투쟁하는지 이야기한다. 부상자들을 나르는 광주 택시기사, 모범 시민인 서울 택시기사, 가수를 꿈꾸는 대학생, 보도될 수
없는 취재를 계속하는 기자, 그리고 애도의 눈물 대신 카메라를 선택한 외국인. 각기 다른 세상에서 살아 온 이들은 광주의 '비극' 앞에서 '진실'이라는 하나의 희망을 쟁취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언어 장벽에도 불구하고, 송강호와 토마스 크레취만은 베테랑다운 연기를 펼친다. 토마스 크레취만은 절제된 연기로 극을 지탱하고, 송강호는 평범한 택시기사가 기자의 조력자로 거듭나는 흐름을 매끄럽게 구성하며 또 한 번 '시대의 얼굴'로 변신했다.
'택시운전사'의 사람들이 밝히고자 한 진실은 끝나지 않았다. 아직 광주 시민을 향해 최초 발포 명령을 내린 이가 밝혀지지 않았고, 헬기 동원 총격에 대한 의혹이 남아 있다. 설상가상, 지난 정권 동안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은 끊임없는 왜곡과 비하에 시달려야 했다. 이제 우리는 '진실' 앞에 뒤돌지 않는 또 다른 '택시운전사'를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