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항만 설계 용역에 자격을 갖춘 업체를 내세워 낙찰을 받은 뒤 무자격 업체가 수행하는 불법 행위가 만연한 것으로 드러나 대책 마련이 필요해 보인다.
◇ 회의석상서 불법 질책한 공무원, 뒤에서는 "술값 대신 내라"
지난 2013년 10월 28일 부산 기장군청 내에서 열린 해양 설계 관련 불법 하도급 대책 회의장.
"내가 지금 부산시에도 공문을 보낼 거예요. 법상에도 명의도용 한 거 아니야? 이게 얼마나 큰 거예요. 그거는 제가 원칙대로 하겠습니다"
담당 공무원인 조모(51·6급)씨가 무자격 업체 대표들을 불러 모아 놓고 질책에 가까운 통보를 한다.
기장군에서 발주한 해양 설계 관련 용역이 불법 하도급으로 이뤄지고 있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 담당자로서 원칙을 지키겠다는 것이다.
한달 뒤인 2013년 12월 11일 조씨와 불법 하도급 업체 직원과의 통화 내용은 앞서 회의 석상에서 했던 조씨의 발언을 무색하게 한다.
"노래방 맞아요. 결재해준다고 하면 좋다고 나오겠지. 고거만 좀 해주이소 미안하지만, 그 돈은 설계변경할 때 그냥 올려준다 아이가?"
불과 한 달 전 불법 사실을 질책하던 조씨가 노래방에서 백만 원 상당의 술을 먹고 불법 하도급 업체 직원에게 전화를 해 술값을 대납하라고 요구한 것이다.
◇ 뇌물 주고 받은 공무원과 해양 설계 불법 업자들 무더기 덜미
부산경찰청 해양범죄수사대는 17일 불법 사실을 눈감아 주거나 공사비를 부풀려주는 대가로 해양 설계 업체들로부터 금품과 향응을 받아 챙긴 혐의로 부산시 소속 공무원 조씨 구속했다고 밝혔다.
또, 조씨에게 금품이나 향응을 제공한 혐의로 무자격 해양 설계업체 대표 민모(55)씨를 구속하고 해양 설계업체 대표나 시공업체 현장소장 등 나머지 9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조씨는 해양 공사 관련 설계 사업 발주 시 실제 낙찰을 받은 업체가 불법 하도급을 줘 용역이 이뤄진다는 점을 노리고 이를 약점 잡아 금품을 받아 챙겼다.
조씨는 심지어 사업비를 정산하는 과정에서 용역비를 부풀려 지급한 뒤 차후에 일부 금액을 돌려 받기도 했다.
실제, 지난 2012년 6월 어촌정주어항 사업이 중단된 이후 조씨는 업자에게 그때까지 사용된 용역비 1억 7천만 원에다 1억 2천만 원을 추가로 지급했고, 그 대가로 2년 뒤 업자로부터 1천만 원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조씨는 또, 불법 하도급 업체 대표나 해양 공사 현장 소장 등을 수시로 회식자리에 불러 주대를 대납시키거나 고급 시계를 선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 때 조씨는 업자들에게 "추후에 사업비로 보전해주겠다"는 약속을 했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조씨는 금품을 받는 과정에서 한 복사업체 대표의 계좌를 빌려 차명으로 뇌물을 받는 치밀함을 보이기도 했다.
◇ 해양·항만 분야 설계 용역업계 불법 하도급 만연
조씨가 업체들의 약점으로 잡은 해양·항만 분야 설계 불법 하도급 행태는 업계에서 관행처럼 횡행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에 따르면 전문적인 기술을 필요로 하는 해양·항만 분야 설계의 경우 해양토목이나 항만설계 등의 자격을 갖춘 업체가 입찰에 참여할 수 있다.
하지만, 입찰 자격을 갖춘 업체가 실제 용역을 낙찰 받으면 곧장 자격이 없는 업체에 하도급을 주는 것이 관행화 되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때 최초 낙찰을 받은 업체는 용역비의 15% 가량을 떼고 불법 하도급을 주는 것으로 조사됐다.
실제, 이번에 적발된 무자격 설계 용역업체 한 곳은 2014년 사업자 등록 이후 무려 23건의 해양·항만 관련 관급 용역을 불법 하도급 받아 수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중에는 지난해 태풍 이후 올해 초 부산시에서 발주한 '마린시티 월파방지 시설 및 반파공 재해 복구공사 설계 용역' 등 시민의 안전과 직결되는 용역도 포함돼 있었다.
부산경찰청 해양범죄수사대 한강호 대장은 "무자격 업체의 불법 하도급 행태는 설계 용역 품질 저하로 이어진다"며 "이번 수사를 통해 확인된 불법 하도급 용역과 기술자격 대여행위에 대해 발부 지자체에 통보 조처할 방침"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