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탈원전', 무리하게 밀어 부칠 일은 아니다

지난 13일 한수원 본사건물로 들어가려던 조성희 이사가 노조원들에게 막혀 진입을 못하고 있다.(사진=김대기 기자)
한국수력원자력이 14일 오전 기습적으로 이사회를 열고 신고리 원전 5, 6호기의 공사 일시 중단을 결정했다.

전날 노조와 지역주민들의 물리적 반발로 이사회 개최가 무산된 바 있어 어느 정도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으리라 판단된다.

정부가 이미 지난달 27일 국무회의를 통해 공사중단을 결정하고 이사회가 절차를 밟도록 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찬반 양론이 팽팽히 나뉘어져 있고 노조뿐만 아니라 지역주민들까지 나서 대대적으로 반발하고 있는 사안에 대해 이렇게 기습적으로 결정한 부분은 무리한 측면이 있다고 본다.

문재인 대통령의 '탈원전' 공약과 정책을 문제 삼는 것이 아니다.

'탈원전'은 얼마든지 대통령 공약이나 정책으로 삼을 수 있는 사안이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추진하는 것은 보다 신중했어야 한다고 본다.

원전 건설 쪽으로 가느냐 '탈원전' 쪽으로 가느냐는 쉽게 시비가 가려질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은 각자의 가치관, 세계관, 신념에 따라 입장이 다를 수 있다.

에너지 부족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비용이 적게 들고 환경오염이 적은 원전 건설이 최선일 수 있다.

반대로 사고가 나면 엄청난 인명피해를 낳게 되고 사용 후 핵폐기물도 반영구적으로 관리해야 하는 등의 문제를 보면 ‘탈원전’으로 가는 것이 맞을 수도 있다.

실제로 이러한 입장 차이에 따라 신고리 원전 5, 6호기 공사 중단 문제를 놓고 시민단체와 전문가 사이에 진영이 나뉘어져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사진=자료사진)
이런 상황에서 한국수력원자력 이사회가 기습적으로 공사 일시 중단을 결정한 것이다.

이것은 반대진영의 반발을 불러오면서 사태를 극단으로 몰고 가는 것으로 결코 바람직한 모습은 아니라고 본다.

이번 결정이 일시적인 것이고 진짜 공사중단 여부는 중립적인 공론화위원회를 거쳐 3개월 후에 결정되는 것이면 더더욱 이사회의 기습결정으로 갈 사안은 아니었다.


3개월 후 공사중단으로 가는 수순을 염두에 뒀기 때문에 무리하게 기습결정을 한 것이라는 오해의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지역민들이 자율적으로 유치해 진척률이 30% 가까이 이르고 하청업체까지 수만명의 근로자가 투입돼 있는 공사를 정부가 중단시키겠다고 나선 것부터가 무리한 것일 수 있다.

물론 '탈원전'을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된 문 대통령에게는 앞으로 새로 짓는 원전은 물론 이미 공사 중인 원전도 공사를 중단하도록 하는 것이 명분으로는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미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안전성 등에 대한 철저한 검증과 합의를 거쳐 공사에 들어간데다 여기에 수많은 사람의 이해관계가 달려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렇게 쉽게 결정할 문제는 아니었다.

원전 건설이냐 '탈원전'이냐는 국민들 사이에 의견이 팽팽히 엇갈리는 문제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문재인 정부로서는 '탈원전' 공약을, 공사중인 원전이 아닌 새로 건설되는 원전부터 적용할 생각으로 길게 보고 추진하는 것이 나았을 수 있다.

'탈원전'의 필요성을 국민에게 납득시켜 공감대를 얻어 국민들이 '탈원전'으로의 길을 선택하도록 하는 것은 상당한 시간을 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독일의 경우 이 과정이 25년이 걸렸다고 한다.

현재 국내 발전량의 30%를 담당하는 원전과 결별하려면 새로운 대체에너지를 확보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발생할 수 밖에 없는 전기요금의 불가피한 인상을 국민들이 수용해야 한다.

또 원전 에너지를 포기하려면 에너지 과소비에 길들여져 있는 우리의 문화, 경제구조, 생활습관도 과감하게 바꾸겠다는 결단이 요청된다.

국민들이 이에 대한 준비와 결단을 하는 것은 장기간을 요하는 일이다.

문재인 정부는 임기 내에 끝낸다는 조급증을 버리고 보다 길게 내다보고 국민의 공감대 속에서 탈원전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현명한 일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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