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물차 무한경쟁 "가족 생각에 졸려도 운전대"

생계 위한 위험한 질주…위험 부담은 시민 몫

'13.6시간'

지난 2014년 한국교통연구원이 발표한 5톤 이상 트럭 운전자의 하루 평균 근무 시간이다. 생계 전선에 나선 화물차 운전자들은 치열한 경쟁 속 낮은 운임에 장시간 운전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 1일 화물노동자들이 노동기본권 보장과 표준운임제 도입을 요구하는 결의대회를 열었다. (사진=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제공)
◇ "더 많이, 더 멀리" 자발적 위험 운송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는 지난 2015년 5t 이상 화물차의 운전행태 2000건을 분석했는데, 이에 따르면 고속도로에서 일 평균 8시간 이상 운전하는 화물차 운전자의 비율이 36.6%에 달했다.

대다수 화물차 운전자들이 상·하역 등 운전 이외 업무도 병행하는 것을 고려하면 이들이 피로에 시달린 채로 운전하는 것이 현실이다.

화물차 운전자들은 화주들이 정한 시간 안에 도착하기 위해 중간에 제대로 쉬지도 못한다. 고속도로 위에서 4시간 이상 장시간 주행하는 운전자 역시 22.6%로 나타났다.

이들이 장시간 운전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생계 때문이다. 경기가 나빠지고 치열한 경쟁이 반복되는 상황에서 대기업과 화주들은 '밑바닥 운임'을 책정하고 있다.

14t 트럭을 운전하는 유모(46) 씨는 "지금 운임비가 20년 전보다 못하다"며 "내 차가 아니어도 다른 화물차가 많다는 기업과 화주의 횡포에 어쩔 수 없이 낮은 운임에도 운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더 자주, 더 멀리, 더 많이 실어 날라야 하기에 근무시간은 길어질 수밖에 없다.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정찬무 조직국장은 "운전자들이 어쩔 수 없이 자발적으로 위험한 운송 업무에 종사하는 꼴"이라며 우려를 표했다.

그는 "운임이 낮다보니까 과적이라든지 심야운전, 장시간 운전과 같은 위험 운송이 빈번한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연평균 고속국도를 이용한 화물차 수는 약 15만대. 하루 평균 400대 가량의 화물차가 열악한 환경에서 질주하고 있다.

사업용 화물차를 포함해 전체 화물차 사고로 사망하는 사람들은 연평균 1200여 명. 화물 운송 산업의 구조적 문제에 따른 사고 위험은 모든 시민이 분담하고 있는 현실이다.

◇ 휴게시간 단속한다지만 실효성은 의문…결국 정부가 방치했다는 지적

국토교통부는 지난 1월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 시행규칙'을 개정해 화물차 운전자가 4시간 운전 시 30분 휴식을 보장하도록 만들었다. 이를 위반하는 경우 최대 180만원의 과징금이 부과된다.

이에 대한 단속은 오는 18일부터 시작된다. 이마저도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한 눈에 모든 화물차의 운전 행태를 분석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따라서 각 화물차에 부착된 운행기록장치를 직접 확인해 몇 시간을 운전했는지 직접 확인해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방법은 인력과 예산의 한계 때문에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 조직국장은 "지금 횡행하고 있는 과적 차량에 대한 단속도 부실한 상황인데 철저한 단속이 가능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에 근본적으로 '표준운임제'를 도입해 운전자들의 기본 생계를 보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차량의 종류, 운전 거리 등에 비례해 최소한의 운임 기준을 국가가 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표준운임제 논의는 2009년 이명박 정부 때부터 법제화 논의가 있었으나 현재까지 도입되지는 않았다. 문재인 정부도 대선 공약으로 표준운임제 추진을 내세운 바 있다. 화물 운송 산업의 구조적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도입될 필요성이 높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시립대 이수범 교통공학과 교수는 "휴식시간을 단속한다는 생각은 미봉책에 불과하다"며 "장시간 노동을 강요하는 현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국가가 운임 기준을 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공운수노조 화물본부 수열 대외협력국장은 "졸음운전 등으로 일어나는 대형차 사고를 단순히 기사의 일탈로 봐서는 안 된다"며 "표준운임제 도입은 화물노동자의 권리를 넘어 국민들의 안전까지 보장하는 방식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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